2024년이 다 끝나가는 상황에서 마지막 알라딘 이달의 리뷰에 뽑혔다.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한 가운데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내용의 책 "대변동"의 리뷰다.
제목이 파격적(?)이다. “똥 싸면서 읽는 이야기”라니... 여기에 붙는 게 기독교(1권), 예수님(2권), 우리들(3권)이다. 흔히 생각하는 기독교 책하면 떠오르는 거룩한 오라가 여기에는 붙어 있지 않다. 아마도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이름이리라. 고상한 체, 거룩한 체, 엄숙한 체 하느라 가까이 가는 것 자체가 무슨 관광지의 유적을 방문하는 것처럼 거슬리고 어색해져버린 교회의 이야기를 기름기를 쏙 빼고 담백하게 말해 보겠다는.
세 권의 책이지만 각 권에 담긴 글자 수 자체가 적다. 대신 감각적이면서도 잘 어울리는 삽화가 매 페이지마다 담겨 있어서 읽는 데 즐거움을 더해준다(대신 이 한 권, 한 권을 읽은 책으로 계산하기는 뭐해서 그냥 세 권을 합쳐 한 권 읽은 것으로 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적은 수의 글자로도 저자는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을 훌륭히 잘 해 냈다.
1권에서 저자는 우리가 왜 기독교를 믿어야 하는가에 관해 말한다. 그 중심에는 죄가 가져온 비참함과 죽음이라는 최종적인 결말이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행복을 찾아다니지만 모두 이 종착역을 벗어날 수 없다. 온갖 철학자들이 이 두려운 현실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지만, 정말로 그런 식으로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없음을, 그리고 이 문제의 유일한 해법이 기독교임을 보여준다.
2권은 그 해답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다. 그분은 십자가라는 엄청난 사건을 기꺼이 감당하시면서, 죄가 우리에게 가져온 비참한 결말로부터의 구원을 이루셨다. 그분의 놀라운 사랑이 우리의 종착지를 바꾸어 내셨다.
3권은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 즉 교회에 관한 이야기다. 교회는 여전히 죄 안에 머물러 있는 세상으로부터의 피난처이자, 그런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곳이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이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간다. 이 사랑은 단지 동료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라 그들을 핍박하는 저 세상까지도 포함한다.
요약해 적어놓고 보면 무슨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관건은 이 이야기를 짧은 문장으로 풀어나가는 저자의 터치, 그리고 앞서도 말했던 내용의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 주면서도 동시에 핵심에 집중하게 만드는 일러스트다. 둘 다 훌륭하다.
저자는 신학적인 논리 전개만이 아니라, 대체로 일상언어를 사용해 기독교 신앙적 배경이 없는 사람들이 이해할 법한 용어와 논리로 이 문제를 풀어나간다. 사실 책의 내용도, 구성도 기독교에 대해 좀 안다는 사람보다는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물론 좀 아는 사람이 읽어도 좋다)
교회와 사회가 분리되어 있다는 가장 중요한 표지 중 하나는 교회에서만 사용하는 용어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대충 이해하지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감도 안 잡히는 그런 단어들이 많아지는 건 분명 교회의 위기 요인이다. 그래서 C. S. 루이스는 목사시험에 번역시험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던 것이다. 성경의 용어를 일상의 말로, 시장의 대화로 옮겨낼 수 있어야한다는 말.
어렵지 않은 말로,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식으로 기교의 중요한 메시지를 훌륭하게 설명해 낸 책이다. 작은 볼륨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다. 가능하다면 기독교의 다른 교리들은 어떻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책.
중세 신학자들이 비난한 가장 추악한 이 교만 죄가
현대 ‘휴머니스트들’의 갈채를 받아왔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율적 개인주의는 세속 사상가들이 그토록 빈번히 제창한
‘인권’ 운동의 비옥한 토양이었지만,
결국 합리화된 교만에 지나지 않는다.
- 제라드 리드, 『C. S. 루이스를 통해 본 일곱가지 치명적인 죄악과 도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