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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분노청년이 자국 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변혁의 주체로 나서려 했다면,

중국 분노청년은

오직 중국의 적이라고 생각되는 집단에만 분노한다.


- 김인희,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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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동성애를 반대하실까? 질문 시리즈
샘 올베리 지음, 홍병룡 옮김 / 아바서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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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세대들이 ‘동성애’라고 불렸던 심리적 상태를 요새는 다양한 영문 이니셜로 표시하는 것이 유행이다. LGBT에 요새는 Q까지 더하고, 심지어 여기에 몇 개의 알파벳을 더 붙이거나 앞으로 누군가 주장할 다양한 성적 지향에 열려 있다는 의미의 +를 붙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자신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인 “성적소수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그 종류는 이쪽이 훨씬 더 다양한 것 같다.


사실 이들이 자신들을 무엇이라고 부르던 외부인들이 뭐라고 할 이유는 없다. 다만 문제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갖고 있는 중요한 기준이나 원칙들마저 자신들의 주장에 맞춰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속적) 학계의 지지를 받아 이들의 주장은 어느 샌가 “보편성”, 혹은 “인권”이라는 포장지에 싸여서 우리 삶 깊숙한 곳까지 밀고 들어와 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이런 도전이 더욱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성경의 곳곳에는 동성애를 명백히 죄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을 약자와 소수자로, 핍박받는 이들로 포지셔닝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잘못을 주장하는 것이 마치 약자에 대한 공격으로만 여겨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앞서 말한 보편적 인권 문제로 이 상황을 정의하는 점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주제에 관해 적어도 당사자성을 갖고 한 마디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 그는 동성애적 지향을(책에서는 “동성간 끌림" same-sex attraction, SSA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갖고 있는 성공회 사제이다.


저자의 접근은 모든 사람이 용서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회개하고 천국을 받으라. 이것이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이다. 이건 이성애자들만이 아니라 동성애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요청이다. 오늘날 많은 성소수자들은 마치 자신들의 성적 지향이 자신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비슷한 착각은 페미니스트들에게서도 자주 나타난다).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의 성적 지향은 우선 그를 구성하는 여러 종류의 특징 중 하나일 뿐이고, 나아가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반드시 만족시켜야 할 핵심이 아니다.


오늘날 일부 신학자들은 성경 속 동성애 정죄를 다양한 논리로 약화시키거나 해체하려고까지 시도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온갖 종류의 (아마 성경 시대에는 없었을=성경의 저자들은 생각하지 않았을) 다양한 논리적 기교가 필요하다. 이에 반해 저자는 동성애에 관한 성경의 진술을 좀 더 문법적이고 문화적이며, 분명한 방식으로 읽어낸다. 성경은 분명 그런 행위를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건 단지 부가적인 명령이 아니라 그리스도인(하나님 백성)의 삶의 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경고다.


이 두 가지 기초 아래 저자는 빙빙 돌리지 않고 분명하게 이 문제에 관한 입장을 밝힌다. SSA가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심리적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것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충동은 우리를 죄로 이끈다(그런 충동이 생기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SSA를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이건 기독교에서 성과 관련되어 우리에게 허락하는 것이 두 가지 상태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는 결혼 관계 속에서 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신으로 절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부분에 관해 분명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 설명의 과정이 억압이나 강요의 성격이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SSA를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을 모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의를 진전시키는 것과는 상관없다. 우리는 그들 또한 우리처럼 온갖 유혹에 시달리고 있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당연히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문제를 가지고 대화할 자리는 언젠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에 관한 성경의 바른 가르침을 우리가 제대로 아는 것이고, 단순히 그건 잘못 됐다고 외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보통 그런 식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법은 거의 없다), 우리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그들의 동료이자 친구로서 성경적 조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의 이런 조언은 개인적 관계로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SSA를 지닌 이들을 만날 때 취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좋다고 본다. 다만 이 문제가 개인 사이의 관계를 넘어 한 사회의 제도나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는 이런 수동적인 포지션으로 충분할까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책이 아주 콤팩트 하다. 때문에 아주 깊은 논의까지 들어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주제에 관해서 담아야 할 내용은 충분히 담아낸 것 같다. 어차피 학문적 접근이 목적이 아닌 이상은 이 정도 내용이면 충분히 교회 안에서 대화와 공부에 사용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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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최초의 인간은 종교적인 의식을 가진 최초의 존재,

신이 무엇인지를 묻고 도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최초의 존재였다.

그런데 이 경우에 하나님이 아담과 언약을 맺은 것은

문자 그대로 아담이 인간이 되는 과정의 최후 단계였다.

종교적 의식을 품을 수 있는 역량이 아담 안에 나타났을 때,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냄으로써 그 의식을 발동시켰고,

그러한 행동이 아담을 완전한 인간(즉, 종교적 존재)으로 만들었다.

종교적 의식이 출현하는 데 어떤 사전 과정들이 있었는지,

또는 그 과정을 거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에 대해서는

창세기가 침묵하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최초의 종교적 존재의 출현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그런 존재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 하나님의 행위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한순간에는 땅에 인간이 없었다가 다음 순간에는 존재하게 된 것이다.


- 로이 클라우저, 『종교적 중립성의 신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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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 -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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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두꺼운 책 중 하나가 『총, 균, 쇠』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책을 쓴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새로 쓴 국가 위기 대처 방법에 관한 책이다.


책은 일곱 개의 나라들―핀란드,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미국―이 역사 속에서 겪었던 위기들과 그것들을 극복해 내는 과정에서 했던 선택과 변화에 관한 내용을 짧게 정리하는 내용이다. 각각의 나라들이 경험했던 위기의 성격은 모두 달랐지만, 저자는 이를 정리하기 위해 국가적 위기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관련된 열두 가지 요인들을 짚고, 이에 따라 각각의 위기들을 분석한다.


저자가 만든 척도는 다음과 같다.


1.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국민적 합의

2.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국가적 책임의 수용

3. 울타리 세우기. 해결해야 할 국가적 문제를 규정하기 위한 조건

4. 다른 국가의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지원

5. 문제 해결 방법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국가의 사례

6. 국가 정체성

7. 국가의 위치에 대한 정직한 자기평가

8. 역사적으로 과거에 경험한 국가 위기

9. 국가의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

10.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국가의 능력

11. 국가의 핵심 가치

12. 지정학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물론 이 척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 수는 늘 수도 있고, 더 적게 꼽을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 만들던 기준이란 항상 부족한 법이니까. 저자도 이런 부분은 인식하고 있고, 너무 많거나 적은 기준을 만들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고려해 이렇게 정리했다고 한다. 중요한 건 이런 척도들을 가지고 제대로 실제 문제를 분석하고, 또 그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예측해 도움을 줄 수 있느냐 일게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사례로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도 꽤나 역동적인 근대사를 경험한 나라인데 말이다. 일본의 강제 병합을 극복해 내고, 6.25라는 내전을 경험하고, 군부 쿠테타와 민주화, 이런 과정들을 통과하며 한 때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세계 수위권에 드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겨우 100여 년 동안 수많은 위기들을 맞이해 나름 극복하고 변화를 해 오지 않았던가.(물론 국민들이 꽤 자주 멍청한 투표를 해서 무능한 대통령들이 주기적으로 출현하기도 하고 있지만)





책에 언급된 여러 나라들의 사례들이 다 재미있었지만, 그 중에서 우리와 가까운 일본의 예가 특히 눈에 들어온다. 저자가 이 책에서 꼽은 일본의 위기는 1853년 페리호의 입항으로 시작된 강제 개항이었다. 비슷한 시기 아시아 각국에서 이루어진 서구에 의한 개항이 대체로 식민지화를 불러왔음을 생각해 보면, 이 시기 일본은 이 불평등조약을 발판으로 메이지 유신이라고 불리는 근대화에 성공하고, 20세기 초 주변국들을 침략해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정도의 제국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되었으니 확실히 성공적인 위기 대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앞선 기준들 중 여러 항목에서 성공적인 선택을 했다고 평가한다. 우선 근대화 과정에서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와 미국 등 선진국들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했고(항목 5), 미국 군함에 의한 처절한 패배를 단순히 운이 없음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들의 국력 부족 때문이었다는 냉철한 판단도 했다(항목 7). 또, 개혁에 관한 전반적인 국민적 합의(항목 1)나, 모든 것을 때려 부수는 대신 울타리를 세워 선택적인 변화만을 받아들임으로써(항목 3),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면서(항목 6) 변화를 이루어 냈다.


책의 3부에서는 2부에서 언급한 몇 개의 나라들 중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미래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일본이 가진 장점들을 언급하면서도 동시에 미래를 어둡게 볼 수 있는 요인들도 몇 개 꼽는다. 그 중 하나가 일본 특유의 자연 자원에 대한 남용으로, 이는 지속 가능한 자연 자원 이용을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반하는 태도다.(대표적으로 일본 어민들이 여전히 저지르고 있는 포경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하게 꼽는 것이 인근의 가까운 나라인 한국과 중국 등에 끼친 일제의 만행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또 하나의 문제고. 저자는 간략하게 훑고 넘어가고 있지만, 이런 요인들은 일본이 미래에 크게 발전하기 어려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들이라고 본다.





물론 어떤 사회학 이론도 100%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하나의 이론에는 수많은 가설들과 임의적인 기준 설정 등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그렇게 세운 이론이 현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느냐이고, 이 점에서 다이아몬드의 이론은 꽤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책에서 주로 말하고 있는 건 국가 규모의 위기 대처 방식이지만, 비슷한 내용을 기업이라든지, 지자체가 다양한 모임들, 혹은 개인의 삶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와 대응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최근 온갖 물의를 일으켜 주목을 받고 있는 축구협회의 경우 위기에 빠졌다는 자각 자체도 없을뿐더러(항목1) 무엇인가를 할 생각도 없고(항목2),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나라의 협회나 우리나라의 다른 기관들로부터 배울 자세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항목5). 여기에 대한민국 축구행정 전체를 발전시키겠다는 사명감이나 정체성보다는(항목6) 그저 협회를 이용해 개인적인 이득만 취하려는 기생충들만 잔뜩 달라붙어 있으니 향후에도 제대로 운영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열두 가지 항목을 다시 종합해 보자면, 위기에 닥쳤을 때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연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그저 고집 때문에, 혹은 자존심이나 관성으로 인해 그냥 해 왔던 대로만 밀어 붙이다가 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건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에도, 문화에도 다 통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물론 닥치고 새로운 것만 하자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겠지만, 위기라는 높은 변동성을 마주하는 상황에서조차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만 외치고 있다면 그 끝은 뻔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 사회는 당면한 위기를 적절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을까? 자꾸만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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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4-11-27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저도 한국이 모델에서 빠진것이 좀 이상하네요.한국처럼 식민지를 거치고 전쟁의 포화를 겪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단기간에 올라선 나라가 없을텐데 말이죠.

노란가방 2024-11-27 21:3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