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의 이름을 빌린 책이 한 권 또 새로 나왔다. 당연히 내 레이더망에 걸렸고, 결국 구입했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이 흥미롭다. 루이스의 이름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어령 교수의 이름까지 더해져있다. 그것도 마치 친근하게 이어령 교수가 루이스를 부르는 것처럼.
이 책은 실제로는 만난 적이 없었던 이 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대화를 한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다. 두 분의 생몰연도를 계산하면 스무 몇 해쯤 함께 살아계시던 기간이 있었지만, 이어령이 오랫동안 무신론자였다가 노년에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굳이 찾아가서 만났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뭐 상상이니까. 상상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난다면 어떤 대화를 할까 고민해 보는 건 즐거운 일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그 작업을 했는데, 물론 두 사람의 대화는 완전 임의로 만들어 낸 건 아니고, 그들의 저서에서 뽑아낸 주제들을 배열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와 비슷한 책은 여러 권 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도 『C. S. 루이스와 점심을 먹는다면』이라는 책에서 자신과 대화하는 루이스를 쓰기도 했고, 피터 크리프트가 쓴 『C. S. 루이스 천국에 가다』라는 책에서는 루이스와 존 F. 케네디, 그리고 올더스 헉슬리가 천국에서 만나 서로 대화하는 그림을 만들어 낸다.
직접적인 대화의 형식은 아니라도, 루이스와 또 다른 인물을 함께 비교, 대조하는 책으로는 스콧 버슨과 제리 월즈가 쓴 『루이스와 쉐퍼의 대화』, 우리나라 저자인 김병제가 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이 책에서는 필립 얀시가 소개된다), 아맨드 M. 니콜라이의 『루이스 vs. 프로이트』, 그리고 콜린 듀리에즈가 쓴 『루이스와 톨킨』 등이 보인다. (와, 쓰고 보니 이런 정보는 어디 다른 데서 듣기 힘들지 않을까?)
이 책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될 듯하다. 그리고 루이스와 비교되는 인물로 우리나라 학자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점도 있고. 이런 종류의 책은 소개하는 인물의 저작을 얼마나 충실하게 요약, 또는 발췌해서 소개하느냐에 그 완성도가 달려있는 법이다. 워낙에 훌륭한 인물들을 가지고 왔으니 사실 정리만 잘 해도 어느 정도 기본을 먹고 들어갈 수 있으니.
이번 책의 경우에는 크게 나쁘지 않다. 몇 가지 주제에 따라 두 사람의 책에서 주요 문장들을 가져와 정리했고, 크게 틀렸다고 생각되는 묘사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주 깊게 까지 들어가지는 않지만, 오히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정도의 쉬운 설명이 좀 더 와 닿을 수도 있겠다 싶다.
다만 중간에 저자 자신이 또 하나의 캐릭터로 등장해서 일종의 사회자 비슷한 역할을 맡는데, 종종 사회자를 넘어 대화의 참가자로 등장해 자신의 말을 너무 길게 늘어놓는다는 게 살짝 아쉽다. 물론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책 제목도 그렇고 독자가 관심을 갖는 건, C. S. 루이스와 이어령의 생각이었으니까.
기독교 교리보다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게 권해 줄만한 책.
이 책의 작가인 이와이 슌지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아는 경우가 좀 있을 것 같다. 나름 여러 편의 영화를 찍어 우리나라에도 개봉했던 일본 영화감독이다. 이 책은 그가 틈틈이 영화를 한 편 찍고 편집하는 와중에 한 잡지에 기고한 영화 소개 칼럼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책 제목인 “쓰레기통 극장”이 독특해서, 칼럼 제목들 중에 하나인가 싶었는데 그렇진 않다. 아마도 이 책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 그저 소소하게 자신에게 의미있는 영화들을 소개한 작지만 소중한 책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이건 첫 번째에 배치되어 있는, 작가의 어린 시절 텔레비전 영화 속 드라큘라에 관한 추억을 떠올리는 데서도 살짝 느껴진다.
책은 영화를 소개하지만, 단순히 영화만 소개하는 게 아니라 작가 자신의 추억 이야기를 함께 풀어놓는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주인 것 같고, 영화는 대충 가져다 붙인 것 같을 때도 있고..ㅋ
영화 소개 칼럼 뒤에는 그걸 쓰고 있는 작가의 지금 상황에 관한 글이 주절주절이어진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짬을 내 글을 쓰고 있기도 하고, 미국까지 넘어가서 편집과 후반작업을 하는 중이기도 하고, 영화가 완성되어 시사회가 시작되었지만, 정작 감독 자신은 또 다른 작품을 찍는 중이라 첫 상영을 지켜보지 못했다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뭔가 소소하고,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영화 감독의 이야기를 살짝 엿보는 것 같아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이 두 번째 부분의 편집을 왜 이 모양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본문보다 글씨체도 훨씬 작고, 눈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폰트를 사용했다. 뭔가 덜 정형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나 보다 싶지만, 폼을 내더라도 책은 읽는 사람 눈이 편하게 하는 게 가장 기본이다. 내가 편집장이었다면 이런 편집은 무조건 반대했을 듯.
아무래도 연배가 나보다 높은 감독인지라, 익숙하지 않은 영화도 많다. 하지만 최신의 책이 늘 좋은 게 아니듯, 오래된 영화들 중에서도 고전처럼 좋은 영화들은 늘 있는 법이니까. 영화에 관심이 좀 있다면 즐겁게 볼 수 있을 만한 책.
제목이 흥미롭다. 루터는 종교개혁자이고, 미켈란젤로는 유명한 화가이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떡하니 붙여놓고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책의 부제는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이다. 이것까지 보면 이 책이 무슨 16세기 유럽의 종교나 신학적 문제를 다루는 책처럼 보이지만, 그러면 미켈란젤로가 등장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루터에 상응하는 가톨릭교회 측 인물이 나와야지.
실은 이 책은 종교개혁 시기의 유럽 미술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이고. 다만 당시 유럽의 미술을 비록한 예술은 교회와 떼어 놓고 말할 수 없었다는 걸 안다면 저자의 의도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저자는 당시의 예술을 종교적 상황과 관련지어서 설명하고자 했던 거다.
종교개혁이 한창일 당시, 개혁자들은 교회의 미술이 오용되는 모습에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뭐든지 종교개혁 세력이 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을 능사로 여겼던, 그래서 한때 “반(反) 종교개혁”(Counter Reformati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의는 가톨릭교회와 교황권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자연이 이런 분위기는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분야에도 영향을 끼쳤고, 이것이 당시 활동했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에도 반영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논지다. 애초에 공의회는 사실적인 것과 성경과 전통에 부합하는 내용만 그릴 수 있다는 교시를 통해 미술에도 영향을 끼치려고 했다.
많은 예술가들도 하는 수 없이(당시 교회는 예술품의 주요 주문자들 중 하나였다) 이런 지시에 따른 작품들을 제작하지만, 예술가란 사람들이 누군가. 누가 그렇게 강하게 통제 드라이브를 걸려고 하면 더 멀리, 교묘하게 튀어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들은 가톨릭교회의 엄격한 규정을 조금씩 벗어나면서도, 오히려 가톨릭교회의 뜻을 잘 반영하는 작품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책에는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가들(티치아노, 틴토레토, 카라바조, 루벤스 등등)의 작품을 컬러 도판과 함께 해설되어 있다. 약간은 기괴할 정도로 역동적인 모습으로 인물을 그렸던 매너리즘 화풍이 어떻게 바로크 양식으로 넘어가는지, 저자의 설명과 함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눈에 확 들어온다. 좋은 설명이라는 뜻.
물론 이쪽이 워낙 아는 만큼 보이는 부분인지라 크게 흥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이게 예술 작품인 동시에 성경 속 여러 인물들을 그린 종교화이기도 해서 그쪽의 관심사가 있다면 또 볼만한 포인트일 것 같다.
그리고 흥미로운 건, 결국 미술에 집중하고 있는 책이면서도, 당시 개신교회와 가톨릭교회 사이의 사상적 투장에 관해 꽤 자세하면서도 좋은 분석과 정리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나처럼) 미술에 영 조예가 없더라도, 이 책의 1부만으로도 한번쯤 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는 유흥업소에서
빈번하게 성매매를 알선하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는 유흥업소에서 성매매가 종식되도록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남성 손님의 안전한 성구매를 위해
여성 종사자의 신체를 관리하는 방법을 택했다.
유흥종사자는 주기적으로 성병 검사를 받아야 유흥주점에서 일할 수 있다.
- 황유나, 『남자들의 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