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문자를 찾아서 - 문자 덕후의 발랄한 세계 문자 안내서
마쓰 구쓰타로 지음, 박성민 옮김 / 눌와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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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날 거의 70억 명에 달하는 전 세계 인구들은 약 6천 가지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그 중 현재 사용되고 있는 문자는 채 100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그 절반쯤 된다고 한다). 그래도 적지 않은 수이다 보니 우리가 평소에 접하기 힘든 문자들도 많다. 이 책은 그런 세계의 여러 문자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보면 굉장히 어렵고 딱딱한 책일 것 같지만, 막상 읽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너무 가벼운 느낌마저 줄 정도. 그건 저자가 책에서 문자를 소개하는 방식에서 바로 알 수 있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주로 관심을 보이는 부분은 글자의 “모양”이다. 어떤 문자에 직선이 많은지, 곡선이 많은지, 특징적인 가로선이 있는 인도 쪽 문자들이나 마치 무슨 그림 같은 마야 문자 등등. 거의 모든 항목을 그 문자가 가진 모양에서 받는 인상을 풀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 모양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도 무슨 학술적인 근거가 있고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저자의 개인적인 느낌과 감상뿐이다. 예를 들면 왠지 날카롭게 생긴 티베트문자는 뾰족뾰족해서 위험하다거나, 캄보디아에서 사용하는 크메르문자의 모양이 왠지 빨래를 널어놓은 것 같다는 식.


아, 방금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을 설명했는데, 저자가 말 그대로 유머에 대한 강박증이라도 있었는지, 모든 항목에 이런 식의 아재 개그를 넣고 있다는 점이다. 아재요, 유머 그렇게 쓰는 거 아니에요.





너무 책에 대한 혹평만 했나 싶어 그래도 이 책의 장점을 하나 꼽아 보자면, 전 세계의 독특하고 다양한 문자들을 한 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평소에 이런 생소한 문자들을 애써 주의를 기울여 보지 않았던 차에, 서로 영향을 준 비슷한 문자들을 모아 볼 수도 있었고.


당연히 한글에 대해서는 어떻게 써놨을까 궁금해 가장 먼저 찾아봤는데, 간략한 사실에 대한 서술 말고 별다른 감상도 없다. 이쪽은 드디어 아재개그가 다 떨어진 걸까. 반면 일본 문자인 가나에 대해서는 굉장한 찬사를 붙이고는, 막판에는 문자가 없는 민족들에게 그들의 말을 적을 수 있는 문자로 가나를 추천하자는 말까지 (물론 반쯤은 장난으로 유쾌하게) 덧붙인다. 근데 가나는 모음 표현이 너무 부족해서 힘들 거예요.



성인보다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에게, 세계의 다양한 문자들을 가볍게 소개하는 책이라고 보면 또 뭐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개중에 문자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은 좀 더 전문적인 책을 찾아보면 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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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읽고 있는 책 중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어 옮겨 본다.

폴 우드러프가 쓴 "최초의 민주주의"라는 책이다.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다음의 징후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경계해야 하며, 우리의 자유에 치명상을 입힐 흑사병이 진행 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1. 참주가 정치적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하며, 이 두려움이 그의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2. 참주가 종종 말로만 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제 통치함에 있어서 자신을 법 위에 세우려 한다.

  3. 참주가 비판을 수용하지 못한다.

  4. 참주가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책임을 추궁받지 않으려 한다.

  5. 참주가 자신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는 자로부터는 어떤 조언이나 충고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비록 그가 자신의 친구라도 할지라도.

  6. 참주가 자신과 의견을 같이하지 않는 자가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응? 이거 2023년 대한민국의 그분을 가리키는 건가?

우린 민주정이 아니라 참주정 체제 아래서 살고 있었던 건가.

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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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아나 크리스티나 에레로스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 외 옮김 / 오후의소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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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제목이 흥미로워서 뽑아든 책이다. 큰 판형의 그림책이어서 선 자리에서 금세 다 읽어버렸다.



이야기는 깔끔한 한 쥐를 주인공으로 한다. 어느 날 청소를 하던 중 동전을 발견한 쥐는 그 동전으로 양배추를 구입해 작고 예쁜 집을 마련한다. 그러자 많은 동물들이 쥐에게 청혼을 했고, 번번이 거절을 하던 쥐는 하필 노래를 잘 한다는 이유로 작고 약한 고양이와 결혼을 한다.


문제는 그 이후 발생한다.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상처를 입은 쥐를 위해, 상처를 꿰맬 실을 구하러 떠난 고양이는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거대한 고양이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아내의 입에 난 상처의 피를 핥는 순간... 너무 맛있었다.





결말이 약간 끔찍하다. 옛날이야기들 중에는(이 동화는 스페인의 오래된 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 의외로 이런 잔인한 면이 있다. 오래된 이야기들에는 각각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의 의도가 어느 정도 개입되기 마련이다. 한때 이 이야기는 순종적인 여성을 길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원래 이야기에는 ‘잘난 체 하는 쥐’가 주인공이었고, 주인공의 그 잘난 체가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라는 명확한 스토리.


그런데 이 책의 작가는 이 옛 이야기에 살짝 각색을 더한다. 잘난 체 하던 쥐는 깔끔하고 청결한 쥐로 바뀌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라졌고, 자신을 깔끔하게 가꾸면서 집까지 마련한 능력 있는 존재로 바뀐다. 이야기 속에서 그 쥐가 했던 유일한 잘못은 나중에 자신을 잡아먹을 고양이를 남편으로 선택한 것 뿐. 결국 이야기는 남편의 폭력에 희생된 여성의 구도를 띤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 하는 건, 책에도 실려 있는 작가와 그림작가의 말이다. “고양이 발톱 사이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모든 쥐들에게”(글 작가), “이것은 사랑, 학대, 젠더, 사회, 폭력에 관한 이야기다.”(그림 작가) 대충 느껴지지만 작가들은 완전한 페미니즘 동화로 원래의 이야기를 바꿔놓은 셈이다.



다만 이야기가 충분히 잘 바뀌었는지는 확실치 않은데, 여전히 쥐가 남편을 선택한 어리석은 기준(노래를 잘하는 것)을 정하는 데는 누구의 강요나 영향 없이 본인이 정한 것이었다. 또,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건 본성이지 교화의 차원이 될 수도 없는 부분이다. 호랑이에게 토끼와 사이좋기 지내야 하니 풀만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또 다른 폭력인 것처럼.


원래 존재하던 이야기에 어떤 의도를 갖고 지나친 윤색을 가해 원작을 훼손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최근 디즈니에서 만든 인어공주 실사영화를 둘러싼 논란에서 충분히 드러나기도 했다. 젠더와 사회, 폭력과 학대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면(이런 주제는 충분히 다룰만 하다), 좀 더 신선한 새로운 이야기를 잘 만들어서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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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 탈교회인 8인 인터뷰집
이혜성 인터뷰어 / 북오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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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은 좀 무겁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고, 내용은 더더욱 그랬다. 이 책은 한때 교회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떠나 있는 여덟 명의 인터뷰이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인터뷰어이자 편집자는 최소한의 질문으로 인터뷰이들의 의견이 충분히 제시되도록 애쓰고 있다.



여덟 명의 인터뷰이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는 대체로 비슷했다. 대개 교회가 보여주는 “덕스럽지 못한 모습들”이 그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렇게 하나둘 쌓인 짐들은 결국 그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냈다.


물론 개별적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다들 조금씩 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맨 처음 배치되어 있는, 한 때 서울의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까지 했으나 지금은 무신론자가 되었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양한 신학적 난제들에 대해 교회가 올바른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교회와 성경에 관한 신뢰를 갖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런 상태로 계속 담임목사직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사임을 했던 것 같다. 이후 그런 회의감이 점점 심해졌고, 결국 신앙을 완고하게 부정하는 단계까지 가게 되었다는 것.


사실 다른 사례들에 비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과정이었지만, 동시에 적어도 자신의 지적 사고에 솔직하긴 했다는 느낌을 주는 사례였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다른 목적으로 계속 목회직을 맡고 있는 목사들도 많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외에도 한 여성 사역자는 교회 내 강압적인 분위기와 여성 교역자가 갖는 한계에 지쳐서, 또 다른 이는 교회 내 분쟁에 치여서, 또는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교회에 실망해서 교회를 떠나왔다.





비판적으로 보면 이들 중 일부는 자신들이 바라는 이상을 모두 교회에 투영해서, 그 이상적인 모델에 이르지 못하면 다 교회가 문제인 것처럼 보고 있다. 다시 지역교회로 돌아갈 생각이 있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이들은 자신의 이상이 온전히 실현되는 공동체라면 모르겠다고 대답하는데, 사실 이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또, 몇몇은 지나치게 “큰”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결정을 설명하는데,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건 발을 딛고 사는 여기지 않던가.


다만, 그들에게 교회에 대한 이런 기대를 품게 한 것 또한 교회라는 걸 생각해 보면, 분명 교회도 비판을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 있다.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이상주의는 사람들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겨줄 수밖에 없으니까. 교회가 먼저 자신이 직접 실천하지도 못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남발했다는 말이다. 말만이 아니라 진리에 입각한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솔직히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또, 책은 개별적인 인터뷰이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서 산발적인 교회 비판에 머문다. 아무래도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경험의 양과 질은 한계가 있을 테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결과적으로 근본적인 해결법보다는 개인적인 대책(여기에선 교회를 떠나는 것)이 유일한 대안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물론 교회에 속한 개개인이 전체 문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를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회는 바로 그들이 아니던가. 누군가 나타나서 완벽한 해결책을 던져주기를 바라는 영웅주의적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만두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일까.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인터뷰이들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반대로 절박해 보이는 그들의 호소에 교회가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공감되어서다. 대형교회들은 수평이동의 착시현상에 빠져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고, 각 교단의 수뇌부는 대체로 무능하고 위기의식이 없기에 무슨 대책을 세울 것 같지도 않다.


이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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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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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었던 다른 책에서 이 책이 언급되기에 손에 들게 되었다. 가끔은 이런 식으로 하나의 책이 다른 책을 소개해주는 안내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그 원래의 책이 꽤 좋은 느낌으로 와 닿았다면 그 책이 소개해주는 또 다른 책도 좋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이런 식의 독서법은 제법 괜찮은 기회다.


이 책은 겨우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암으로 죽음을 맞이한 폴 칼라니티가 쓴 일종의 회고록이다. 돈과 명성 같은 목표를 잡기 위해 몰두하던 동기들과 달리 그는 일찍부터 뭔가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이런저런 탐색 끝에 그가 발견한 건 의사라는 일이었고, 그는 정말로 진지하게, 자신의 일을 일종의 소명처럼(당시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해냈다.


오랜 레지던트 생활을 거의 끝내고, 그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이제 안정적인 직장과 보수,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시기가 가까이 왔을 때, 그는 갑작스런 통증과 함께 예상치 못했던 암 진단을 받게 된다. 그리고 시작된 투병생활. 중병에 걸린 환자들에게서 가끔 나타나는 초반의 기적적인 회복기를 맞으며 몇 개월간 의사로의 복귀까지 시도했지만, 결국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버린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은 많다. 질병은 어느 정도 인과요인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발적인 사건인지라,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중병에 걸려 삶의 마지막을 기록으로 남기곤 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을 읽어볼 만한 이유를 꼽자면, 역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사실 죽음을 가까이에 둔 사람들에게서는 의외로 삶에 대한 특별한 통찰이 자주 발견되곤 한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인간은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삶에 대해 좀 더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존재인가 보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단지 암 선고 이후에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닌 것 같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삶의 의미를 찾는 일종의 구도자 같았다. 그는 대학 시절 내내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는 금욕적이고 학구적인 연구”(53)에 천착하면서 “반성하지 않는 삶이 살 가치가 없다면, 제대로 살지 않은 삶은 뒤돌아볼 가치가 있을까”를 물었다.


결국 그렇게 의사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리고 제법 훌륭한 의사로 일해왔던 것 같지만, 훗날 자신이 환자가 되면서 여전히 자신은 환자의 삶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존재였음을 깨닫고 자책한다. 하지만 이런 자책마저,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나오는 것일 게다.




암에 걸리면서, 작가는 바쁜 일과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 기간 예전에 벗어났다고 느꼈던 기독교 신앙을 다시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오늘날 의학은 과학의 최첨단 어디쯤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과학이 형이상학적인 실재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해주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삶의 의미는 바로 그런 세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기독교의 오래된 가르침이, 삶의 본질에 관해 무언가를 담고 있음을 믿게 된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내가 남긴 후기 가운데 반가운 이름이 보인다. 바로 C. S. 루이스다. 그녀는 루이스가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후 쓴 책인 “헤아려본 슬픔”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사별은 결혼의 자연스러운 단계 중 하나라는 것. 참 울림이 많은 문장이다.



옛 라틴어 격언 중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렇게 죽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삶을 좀 더 잘 살아낼 수 있는 것 같다.


삶과 죽음에 관한 훌륭한 통찰이 많이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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