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말기에 병원에서 기계호흡장치를 달고

인공영양을 받으며 최대한 버티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마치 현대 사회 죽음의 통과의례로 자리 잡은 듯하다.

이는 엄밀히 삶의 연장이 아닌 죽음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병원임종의 가장 큰 문제는

죽음이 인간적인 마무리가 아니라

하나의 의학적 사건으로 처리된다는 것이다.


- 박중철,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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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가토 요코 지음, 윤현명 외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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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를 읽는 데 흥미로운 내용이 보인다. 대학원에서 보수적인 교수의 지도를 받았지만, 교수의 성향과는 정반대로 진보적인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부분. 학계라는 게 학맥과 인맥 등으로 촘촘히 얽혀 있곤 해서, 다른 소리를, 그것도 자신의 은사의 주장에 반대해 그렇게 활동하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아마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일 텐데, 용기 있는 결단이다.


책은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정도 되는 역사 동아리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중간 중간 질문과 답변도 섞어 가면서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 나간다. 여기에서 다뤄지고 있는 건 근대 일본이 참여한 다섯 번의 전쟁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사이에 있었던 중일전쟁이 그것.





저자는 각각의 전쟁들의 단순한 경과가 아니라, 그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후의 배경을 중심으로 인과적 서술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일본이라는 나라가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조금씩 주변국들을 침략, 공격해 가며 자국의 안전을 도모하려고 했다는 점과, 이 과정 내내 철저하게 자국중심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강경파가 득세했다는 점이다.


사실 근대 일본은 서양세력에 의해 강제 개항과 개화가 이루어지면서, 종래의 쇼군에 의해 이루어지던 정치체제가 무너지면서 일종의 아노미 현상을 맞게 된다. 일부는 텐노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어 서양식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고, 미약하게나마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은 전자였고, 이들이 태생적으로 힘에 호소하기를 좋아했다는 게 모든 사건의 근원이었다.


시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대표되지 않은 채, 소수의 정치가들과 군인에 의해 좌우된 일본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주변국은 물론 자기 자신의 엄청난 손해로 끝나고 말았다. 사실 전쟁을 거듭할수록 피해가 누적되었고, 다시 그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또 다른 전쟁에 나서는 느낌이 진작부터 들었지만, 일단 그 안에 들어가 버리고 나면 이 뻔한 그림이 보이지 않았던 걸까.


보통 사람들은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똑똑하고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어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내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반대 의견에 귀를 막고, 좀 더 큰 시야에서 상황을 볼 줄 모르는 소견이 좁은 인간들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질 때 얼마나 파괴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저자는 담담하게, 일본이 주변국에 입힌 피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 사안을 다룬다. 이렇게 깔끔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거다. 그저 무조건 과거를 덮고 잊자고 우긴다고 해서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사실 이건 유치원 다니는 애들도 알 수 있는 너무 단순한 진리다)


부디 이런 양심적인 학자들과 시민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자국이 일으킨 전쟁을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꾸며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내가 보기에 한일 양국이 제대로 된 우호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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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이 입성하는 날 - 이사야가 전망하는 하늘나라
리처드 J. 마우 지음, 김동규 옮김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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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고 가벼운 책은 이사야 60장에 실려 있는 예언을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석처럼 다양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는 식은 아니고, 정경적 관점에서(요새 이 단어는 성경에 대한 지나친 난도질을 거부하면서 좀 더 전통적인 관점으로 읽고 설명해 나가는 방식을 가리키는 듯하다), 또 통전적인 관점에서 풀어내는 책이다.


이사야 60장은 구원의 환희로 가득한 예언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외침(개역개정판)으로 시작해서, 예루살렘의 완전한 회복을 묘사한다. 저자는 이 예언이 기본적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그 예언 속 주요 메시지 네 가지를 뽑아 하나님 나라의 속성에 관해 설명한다.





첫 번째 요소는 “다시스의 배들”이다. “다시스”는 고대 근동 지역에서 멀리 있는 부유한 땅이라는 이미지로, 탐욕에 대한 경고와 연결되어 대체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용어이다. 하지만 이사야는 회복될 이스라엘의 이미지에 이 “다시스의 배들”이 오고가는 모습을 더한다.


두 번째 요소는 “왕들”이다. 여기서 왕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이방인들의 왕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이민족들의 침입에 시달렸던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해 왔다. 당연히 그들의 왕들은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터. 그런데 이사야 60장의 예루살렘에는 이 “왕들” 역시 등장한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완성될 그 나라의 다양성을 말해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나라는 특정한 민족이나 계층, 사람들을 배제함으로써 순수함을 회복하는 게 아니다. 심지어 과거 이스라엘이 적대적으로(적어도 신앙적으로는) 여겼던 것들(다시스의 배나 이방의 왕들)도 그 곳에 있을 수 있다. 물론 지금 그대로가 아니라 일종의 정화를 거친 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섬기는 모습으로 말이다. 이건 세 번째 요소인 “이방 나라들의 젖”을 예루살렘의 주민들이 마시게 될 것이라는 내용과도 연결된다.


마지막 요소는 그 성을 비추는 빛이다. 그 빛은 태양이 아닌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그분이 세상의 모든 불의를 제거하실 것임을 나타낸다.





시종 편안하게 읽혔다. 확실히 내가 이런 방식으로 성경을 읽도록 훈련받아왔음을 자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언뜻 성경 구절들만 잔뜩 늘어놓을 것 같지만, 책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상황과 어려움, 그리고 그 해결책에 관한 고민도 함께 품고 있다.


사실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안다면, 그 포괄적인 성격을 이해한다면, 그것을 단순히 내세의 문제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과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사야에서 요한계시록으로 이어지는 새 예루살렘의 환상 사이에 연계점이 있으며, 그 가운데서 공통점과 신학적 발전을 읽어낸다. 성경을 파편적으로만 연구하는 게 익숙한 현대의 학자들에게서 잘 보이지 않는 관점인데, 훌륭한 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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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의심이 신앙보다 우월하다는 착각





(2) - 세상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 성경




(3) - 우린 왜, 어떻게 선교해야 할까?




(4) - 우린 복음 안에서 답을 찾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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