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암살자협회?
영화 존 윅은 흥미로운 설정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를 관장하는 암살자 조직이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고급 수트를 입고 다니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알고 보니 잔인한 암살자였다는 식의 세계관은 그 갭(Gap)으로 인해 꽤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세계관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전도연이 연기한 길복순은 겉으로 보면 자신의 성을 가지고 있는 중학생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고, 어머니 모임에도 출석해 환담을 하거나 마트 마감시간이 되기 전 서둘러 장바구니를 채우는 주부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전설적인 킬러라는 것.
영화 초반 한국계 야쿠자 두목으로 특별출연한 황정민과 전도연의 일대일 대결신은 꽤 재미있었다. 황정민의 오두방정과 전도연의 액션이(대역이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볼꺼리였고, 마지막에 전도연이 황정민을 처리하는 방식도 웃음이 나왔다.
일단 영화의 홍보 자체가 액션 영화로 보이니 당연히 액션에 집중하며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대했던 것만큼 인상적인 액션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앞에서 언급했던 첫 장면은 재미있었지만, 이후의 장면들에서는 그닥...
킬러도 사람이다.
앞서 언급했던 영화 “존 윅”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평면적이다. 그들은 대개 그저 일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보일 뿐이고, 개인사나 보통의 삶은 크게 그려지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주인공 존 윅의 이야기에 좀 더 몰두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일도 일이지만 길복순의 개인사에 좀 더 비중을 많이 둔다. 우선 주인공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데, 그 중요한 이유가 딸이다. 뭔가 엇나가는 듯한 딸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양육에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
길복순을 사실상 킬러로 키워낸 인물이자, 암살자 조직을 창설했던 차민규(설경구) 역시 노인과 어린 아이는 죽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울 정도로 그저 냉혈한은 아니었다. 영화 속 에피소드로 나오지만, 애초에 그가 복순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를 제거하지 않은 이유도 그녀가 아직 학생이었기 때문이었으니까.
킬러들도 고민이 있고, 그 고민이라는 게 지극히 일상적이거나 개인적인 것이라는 게 독특하다. 그리고 그 고민이 무슨 인류애나 윤리적 측면, 지독한 사랑(연정) 같은 게 아니라, 엄마로서의 생활형 고민이라는 것도 인상적이고. 물론 덕분에 정통액션영화는 좀 멀어져버렸지만.
그래서 윤리적 고민은?
그런데, 그렇게 너무나 일상적이고 보통의 사람들과 같은 고민을 하는 주인공이, 사람을 죽이는 이 자체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영화적 상상과 각색이 들어가긴 했겠지만, 그래도 되나 싶은.
물론 영화 속에서는 잠시 윤리적 고민을 하는 복순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아들의 입시 비리 사건(응?)이 터지면서 국무총리 되지 못할 위험에 처하자, 그런 아들을 죽여 달라는 어이없는 정치인의 의뢰 건이었는데, 복순은 그 의뢰를 실패했다고 보고하기로 하고 그로 인해 파문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 해왔던 수많은 작업들에 대해서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 같으니...
때문에 영화는 자칫, 범죄자들에게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저지른 일 또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핑계를 더하는 결과를 내버렸을 지도 모른다. 딸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싶어하던 복순이 계속 업계를 떠나지 못하는 건, 애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일로 돈을 번 그녀는 굉장히 넓은 베란다를 갖춘 집에서 여유롭게 생활하고 있었으니....
전반적으로 스타일리시한 영상을 보여주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라는 느낌이다. 철학적인 고민이라든지, 정의와 같은 높은 가치관에 대한 고려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오락 영화 정도로 보면 될 듯.
우리 각자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구원하고 완성함으로써 짜고 계신
거대한 삶의 양탄자를 구성하는 작은 기여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일의 궁극적인 의미다.
- 미로슬라브 볼프, 『광장에 선 기독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