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처럼 하나님은
도널드 밀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복있는사람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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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는 과정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잔뼈가 굵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기억이 나지 않을 때부터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해, 무난하게 성장하기도 한다. 이들의 친구는 대개 교회 안에서 만난 이들이고, 이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삶은 안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교회와 관련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갑자기 하나님을 만난다. 그들의 삶은 소위 “기독교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고, 그들이 하는 일들도 “교회와 세상”의 경계선을 넘나들곤 한다. 이들의 삶은 모험적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 옳거나, 더 좋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그리스도인의 삶이 다양하다는 말이다. 어느 한 가지 모양으로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만들려고 해봤자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2천 년의 기독교 역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고 저마다의 상황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왔을 지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만드는 이미지라는 게 얼마나 빈곤한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이 책의 작가이자 주인공인 도널드 밀러는 두 번째 모델에 가깝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오랜 방황의 시기를 거쳤으며, 히피와 무신론자들과 어울려 지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그 과정에서도 계속 기독교 신앙 언저리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세상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고, 그 원인이 자기(그리고 사람)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그분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열쇠라는 것도 결국 인정했다.


작가에게는 행운도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교회를 만날 수 있었다. 재정을 교회 자신보다 세상을 위해 사용하는 공동체와 조금은 평범하지 않는 주인공의 신앙 여정을 이해해 주는 친구인 목회자를 만났다.


작가는 차례차례 계단을 올라가는 신앙 성장의 길을 따라 걷지 않는다. 책 제목에도 적혀 있는 “재즈처럼”, 그의 신앙 여정은 연주자 본인만 다음에 어떤 멜로디와 리듬이 나올지 아는, 아니 때로는 그 자신도 정확히 그 끝이 어떨지를 모르는 그런 모습이다. 그래서 여기에 나온 신앙여정은 다른 사람에게 본이나 안내로 제시해 줄 무엇은 아니다.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일 뿐.


하지만 그런 조금은 다른 모습의 신앙 여정이 또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독교 신앙에 관한 스테레오타입을 깨뜨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책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는, 공화당(과 그들이 일으킨 전쟁)을 지지하고, 자유주의자들과 게이를 적대시하는 게 기독교의 유일한 모습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신앙전통 안에 있는 내가 보기에) 약간 우려스러운 부분은, 역시 작가에게서 보이는 정통 교리를 조금은 가볍게 여기는 태도다. 그런 것 없이도 얼마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오히려 그게 없을 때 뭔가 더 유익하다는 뉘앙스.


물론 우리는 교리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C. S.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교리는 일종의 난간으로, 우리가 계단을 오를 때 위험하게 떨어지는 걸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저층에서 오르내릴 때에야 난간이 굳이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훨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난간을 무시하는 건 만용이다.



총 스무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게 논리적 구성을 따라 차곡차곡 쌓아올려지는 형식은 아니다. 마치 즉흥재즈 연주처럼, 읽으면서도 다음 장은 어떤 내용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흥미로운 부분.


아무 데나 들고 펴도 읽을 만한 내용이고, 또 그와 다른 신앙 전통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평소 놓치고 있던 부분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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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3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에 오래 전 학교다닐 때 보던 (이제는 안 본지 오래된) 책을 내놓았다.

오늘 마침 주문이 하나 들어왔고,

택배 보내러 편의점에 간 김에 사온 빵 하나.


며칠 전 이 시리즈 빵을 처음 먹어봤는데..

생크림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가 있는 환상적인 맛이다.

건강과 체중관리에는 도움이 안 될 것 같기는 하지만...

하나 들고 왔다.

(판 책값과 빵 가격이 비슷하다 ㅋ)


책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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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3-2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지가 뭔가 옛스러운게 뭔가 되게 맛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책 팔아 빵을 사 먹었다니요.
하긴 옛날엔 배를 움켜쥐고 책을 읽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도 아니죠. 잘 하셨습니다.ㅎㅎ

노란가방 2023-03-21 16:23   좋아요 0 | URL
편의점에서 팔지만.. 가격은 제과점인..ㅋ
CU에서 팝니다. 한 번 드셔보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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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공장 노동자들은 월요일을 ‘성 월요일’이라 부르며

결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자본가들은 이 문화를 뿌리 뽑기 위해 벌금, 체벌, 팜플릿 배포, 목사의 설교,

공장 내 시계 설치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윤리에는 전통적으로 강조된 ‘성실’이라는 가치에다,

‘노동은 곧 취업 노동’이며, 취업해서 노동하는 사람만이

소득을 얻을 자격이 있다‘라는 새 가치관이 더해졌다.

가사와 돌봄을 비롯한 여러 무보수 노동은 노동의 범위에서 배제되었다.


- 오준호,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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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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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유럽 각지에서 모인 영주들의 군대에 의해 점령된 “성지”에는 크게 네 개의 십자군 국가가 세워졌었다. 북쪽에서부터 에데사 백국, 안티오키아 공국, 트리폴리 백국, 예루살렘 왕국이다.


사실 십자군에 관한 역사기록을 처음 볼 때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다. 어떻게 그 지휘계통도 일원화되지 않았던 유럽의 군대가 먼 동방에서 나라를 세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나라가 이슬람 세력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어떻게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는지 하는 것들이다.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이슬람 세력들은 수많은 작은 세력으로 나뉘어서 서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느라 일치단결해 십자군과 싸울 수 없었고, 십자군측에는 뛰어난 지휘관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번 권에 실려 있다.




“동방”은 넓은 땅이었다. 오늘날을 기준으로 보면, 이집트부터 팔레스타인, 시리아, 터키,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란 지역까지를 넓게 둘러싼 곳이다. 이 땅이 이슬람화되어있던 상황에서, 십자군은 지중해 동부 해안지역을 따라 그들의 영토를 만들었다. 오늘날로 치면 이스라엘과 레바논, 시리아 일부다.


그런데 이들이 영토를 지키기 위해 가지고 있었던 병력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우선 각 나라의 지배자들이 가지고 있는 직속 부대가 일부 있었지만 모두 합쳐 수천의 기병에 불과했다. 여기에서 작가가 중요하게 꼽는 것이 성전기사단과 성 요한 병원기사단(훗날의 로도스기사단, 몰타기사단)이었다. 이들 기사단의 주력인 중무장 기병은 합쳐도 고작 수십에서 3, 4백 명을 넘지 않았지만, 무슬림 적과 싸우기 위해 서약한 전문 전사집단은 일종의 특수부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게 시오노 나나미의 평가다.


그래도 수적 열세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십자군 세력이 자주 사용한 것이 성채다. 이번 권에서는 이 ‘성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꽤 흥미로운 관찰이다. 십자군 국가들 전역에 길목마다 건설된 성채는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요긴한 시설이었다. 특히나 이슬람 군대는 이런 단단한 방어시설을 공격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와 전통이 부족했었다.


또 하나의 요인은 예루살렘 국왕들의 책임감이다. 보두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온 역대 국왕들은 자신들이 맡고 있는 책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성채와 두 기사단의 도움을 받아 현 상황을 간신히 유지해 갈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이 하나씩 사라져가 버리는 게 이번 책의 내용이다. 국왕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마지막 예루살렘 왕 보두앵 4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왕위는 혼란에 빠진다. 어린 아들(보두앵 5세)은 즉위 후 2년 만에 죽어버렸고, 보두앵 4세의 누이와 결혼한 덕에 왕위에 오른 뤼지냥은 무능 그 자체였다.


반면 이슬람 세력에서는 끊임없이 인재들이 출현하고 있었다. 장기와 누레딘, 그리고 살라딘까지... 인재가 줄어드는 세력과 반대로 인재가 분출되는 세력이 대결을 하면 그 결과는 뻔 한 것이었다. 무능한 뤼지냥은 남은 병력을 소진시키는 멍청한 짓을 저질렀고, 그대로 예루살렘은 살라딘에 의해 정복되고 만다.


하지만 살라딘은 단지 군사적 재능만 있는 장수가 아니었다. 이슬람 세력에게도 성지였던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그는 십자군 국가들 사이를 갈라놓는 사전작업을 잊지 않는다. 에데사 백국은 진작 장기와 그의 아들 누레딘이 나타면서 사라져버렸고, 북쪽에서 오는 적을 가장 먼저 맞게 된 안티오키아 공국은 급격히 소극적으로 변해버린다. 네 개의 십자군 국가들이 긴밀하게 연계하면서 적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 핵심이었던 공동방어전선이 깨져버린 것이다.




온통 이슬람 세력에 둘러싸인 기독교 국가라는 십자군 국가들의 처지는, 고도의 정치적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 때 정치적 기술이란 주변의 강국들에게 무조건 아부하고 아양을 떠는 식이 아니라, 필요한 범위 내에서는 이슬람 세력들과도 협력을 하면서 동시에 위협이 되는 적의 공격을 격퇴할 수 있는 든든한 힘을 전제로 한다. 결국 안보는 남의 손으로 지킬 수 없는 것이라는 게 역사의 교훈이니까.


자연히 우리의 상황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과 정교한 외교관계를 맺어야 하는 처지에서, 이 즈음 우리는 현명한 사고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를 가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최근 물씬 느껴지는 것 중 하나가 점점 인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 시절 영웅들을 소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갈수록 젊은이들이 현실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상황이 극적으로 개선될 것 같지도 않는 상황에서, 미래가 썩 밝을 것 같지도 않다는 게 문제.


십자군 국가는 그렇게 무너졌고, 이후 여러 차례 새로운 십자군이 결성되었지만 한 번도 성지를 탈환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 번 무너진 국력은 그만큼 회복시키기 힘든 법이다. 결국 무너지기 전에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야 했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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