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에러 - 빅테크 시대의 윤리학
롭 라이히.메흐란 사하미.제러미 M. 와인스타인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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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ChatGPT라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가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마치 사람처럼 대화를 할 수 있을뿐더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엄청난 자료를 거의 즉각적으로 찾아서 신문기사든, 논문이든, 에세이든 바로 만들어준다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기술발전으로부터 놀라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몇 해 전 알파고는 그 수가 너무나 복잡해서 인간을 이기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도 있었던 바둑으로 이세돌 기사에게 거푸 승리를 거두며 세상을 놀래켰고, 그 와중에 이세돌이 한 판을 승리한 것이 도리어 역사적인 일이 되어버리기도 했으니까.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은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렸다. 대부분은 그 정확한 매커니즘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 결과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그 기술을 이용해 엄청난 힘을 획득한 사람들/조직(기업)이 생겨났다는 점이고, 그들은 제대로 된 견제 없이 자신의 힘을 키워가기 위한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의 개인적 권리와 사생활 침해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인데, 기업들은 이런 정보를 더 많은 이윤을 얻는 데 사용하고 있다. 책에서는 특정한 콘텐츠나 상품을 우리 눈앞에 들이미는 알고리즘의 구조 문제, 그리고 눈에 잘 띠지 않게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거나 기업에 양도하게 만드는 약관 동의 버튼, 자동화 기계의 확산으로 인한 실업문제,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할 지도 모르는 사상과 발언들의 확산을 방조하는 문제 등이 지적된다.


사실 배경이 달라졌을 뿐이지, 이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것 자체는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던 것들이다. 개인정보의 소유권,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개인의 권리, 인간 생명의 중요성, 모든 사람들이 받아야 할 공정한 대우, 또 인간적인 삶을 지탱시켜주는 사회의 책임 같은 주제들이 그것이다. 다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런 것들을 보장하기 위한 상황이 크게 변했고, 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 인간다움을 보전할 수 있을까에 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가 필요한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오늘날 기술발전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전문적이어서, 입법을 담당하는 의원들조차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또, 규제에 대한 노이로제적 반응을 보이는 반규제맹신도들도 적잖게 보이고.





문제가 복잡할 때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한 방법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이른바 실마리 찾기다. 저자들은 이 실마리를 민주주의라는 가치에서 찾는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평소에는 잘 꺼내지 않는 케케묵은 개념쯤으로 여기는 그것 말이다.


민주주의는 어쩌면 오늘날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시장(만능)주의나 자본주의의 폐해를 줄이고, 복잡한 사항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종의 추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크게 세 가지 의제를 제안하는데, 첫 번째는 개인정보의 통제권에 있어서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권력의 불균형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고(기업에서 소비자 쪽으로), 두 번째는 기술변화로 인해 피해를 입을 사람들에게 좀 더 큰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단지 주주들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와는 다른 사회를 우리는 구성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대형 기술기업의 시장지배력을 억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반독점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기술발전계에 윤리라는 (오래된) 잣대를 가져다 대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결국 윤리라는 건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정해둔 최소한의 기준이다. 이 기준이 무너진다는 건, 더 이상 사람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뜻인데, 기술발전의 목표가 사람의 안녕에 있지 않다면, 우리는 굳이 그렇게 빠른 발전을 해야 할 이유도(그리고 거기에 많은 사람들의 자산으로부터 나온 세금이나 인프라적 지원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빅테크 기업들로 하여금 이런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온갖 로비를 뚫고, 특정한 경제이론만이 절대진리라고 믿는 변종 광신자들의 반대를 넘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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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교회 피랍사건.


영화는 지난 2007년 샘물교회 피랍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불안정한 정치상황으로 여행금지국가였던 아프가니스탄에 꼼수를 써서 기어이 입국했다가 결국 탈레반에게 사로잡혀 간신히 협상을 통해 풀려난 사건이다. 그 전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지만, 20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통째로 납치되었던 지라 당시에도 꽤나 크게 이슈가 되었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한국 기독교회가 얼마나 고립된 사고방식에 빠져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남았다. 사건이 벌어진 후 튀어나오는 교회 측의 반응은 어이없는 것들뿐이었고, 결과적으로 내부에서는 순교네 뭐네 하며 자화자찬하는 분위기였으나, 교회에 대한 사회의 큰 실망과 경멸을 초래했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사건은 개신교 내의 잘못된 열광주의, 선교에 대한 몰이해, 안전에 대한 안이한 의식 등 총체적인 난국을 보여주었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은 최대한 제거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뭐 사건이 발생하고 인질들을 석방하기 위한 협상이 벌어지는 동안에 집중하고 있는 영화로서는, 사건 이후 드러났던 위의 문제 같은 걸 집어넣기에는 좀 어색하다고 느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인질로 잡혀 있는 동안 이상한 말을 하면서 관객의 어그로를 끌게 하지 않았다는 게 감독에게 감사할 따름.




외교부와 국정원.

영화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던 국정원 요원 박대식(현빈)과 외교부 공무원인 정재호(황정민)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현지 경험이 많은 국정원 요원과 현지에 처음 도착한 외교부 담당자 사이의 티격태격 하는 모습과 낮은 직급의 현장요원을 무시한 채 일을 진행하려고 하는 외교부 고위 공무원의 모습이 주요 갈등요소다.


물론 여기에는 영화적 각색과 상상이 들어갔을 거고(영화 초반에도 공지된 내용이다), 영화를 보면서 당시 우리 정부나 의 대응을 비난하고 하는 식으로 나가는 건 넌센스다. 그래도 영화 속 비판지점은 기억해 둘만 한데, 사건 초반 현지에서 힘이 있는 부족장과의 교섭으로 인질들이 곧 풀려나게 된 상황에서, 국내의 한 방송사가 인질들이 선교를 하러 갔다는 걸 대대적으로 띄우면서 토론프로그램 방영을 강행하는 장면이다.


협상 과정에서 피랍자들이 현지 봉사를 간 거라고 해두었는데, 버젓이 공중파 방송에서 선교를 간 게 타당했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해대자 그 소식이 곧 아프간 현지로도 전해졌고, 이에 분노한 탈레반은 석방을 취소해 버렸다는 얘기다. 영화 속 메인 피디가 하는 말이 가관이었는데, 어차피 우리말은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


여기에 앞서도 언급했던, 현지 요원의 경험은 무시한 채, 자신의 판단만 고수하려는 고위공직자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지나치게 뻔한 전개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근 우리는 꽤나 힘 있는 자리에 올라 그보다 더한 고집불통과 독선을 거의 날마다 뉴스로 보고 있으니까 뭐...




이 영화의 포인트는?


테러조직에 납치된 인질과 그들의 석방을 위해 목숨을 건 협상에 나서는 공무원의 이야기는 어디서 흥미 포인트를 찾을 수 있을까. 무기를 들고 있는 테러범과의 협상이라는 사건 자체가 긴장감을 조성하기는 하지만, 그 한 장면을 가지고 영화 전체를 끌어가기엔 조금 모자라게 느껴진다.


통상 이런 경우, 관객에게 분노나 두려움을 줄 수 있는 빌런을 만들어 내서, 미움을 쏟아 붓도록 하는 게 일반적인데, 감독은 굳이 그런 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사실 영화에서 최종적인 악한은 인질을 납치한 탈레반이라고 해야 할 텐데, 그쪽 진영에 관한 서사가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아서 딱히 공감이든 반감이든 깊게 생겨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액션이 주요 장르인가 싶기도 했지만, 또 그쪽이 훌륭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영화 속에서 그런 걸 할 만한 캐릭터는 국정원 요원 역의 현빈 정도인데, 비슷한 캐릭터는 영화 “공조” 시리즈에서 했었고, 이번 영화에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황정민의 개인기에 크게 의존해 나간다. 조금은 열정과잉인 캐릭커가 좌충우돌하며 결국 일을 해결해 낸다는... 뭐 오락영화로서는 그럭저럭 볼만은 했지만, 뭔가 좀 더 깊은 생각할 꺼리까지는 던져주지 못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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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 막이 오른다
김주연 지음 / 파롤앤(PAROLE&)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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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으로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있는 점 중 하나는 도대체 왜 푸틴이 이 지역을 러시아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느냐는 부분이다.


그저 푸틴의 망상이나 탐욕이라고 설명하는 건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기에 모자라다. 그리고 여기에는 단지 군사적/정치적 요충지를 차지하려는 생각을 넘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복잡하고 미묘한 역사도 있었다. 슬라브족의 역사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슬라브족의 역사와 분화 과정, 나아가 오늘날의 모습을 간략하게 스케치하고 있다(아주 학술적인 역사적 기술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특별히 자신의 주력 관심사인 공연, 음악, 문학 같은 예술 분야에 관한 설명을 덧붙여 독특한 분위기의 책을 만들었다.



슬라브족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를 포함하는 동슬라브족,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를 포함하는 서슬라브족, 그리고 발칸반도 북부의 구 유고연방에 속했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코소보, (북)마케도니아와 슬로베니아, 불가리아 등의 뿌리인 남슬라브족이 그것. 동슬라브와 서슬라브족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그래서 폴란드가 최근 우리나라 무기를 잔뜩 사서 무장하는 중이다), 남슬라브족 국가들과는 루마니아와 헝가리, 오스트리아로 떨어져 있다.


단순히 ‘슬라브족’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워낙 오랜 시간 흩어져 살아오면서 주변 민족과 교류를 해왔기에, 오늘날 그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하얀 피부에 금발을 가진 전형적인 슬라브족의 외형도 있는가 하면, 검은 머리에 좀 더 짙은 피부색을 가진 슬라브족도 있다. 특히 오스만제국의 직접적인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던 남슬라브족에서 이런 외형적 변화가 컸다.


단지 외형적인 변화만이 아니다. 동슬라브족의 경우 정교회가 우세지만, 서슬라브족은 가톨릭이, 남슬라브족에서는 이 두 종파에 앞서 말한 오스만제국 지배기 들어온 이슬람교 신자들도 많이 살고 있다. 종교가 다르면 문화도 달라지고, 사는 방식에도 차이가 생긴다. 하지만 인근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결국 그저 이웃일 뿐이고, 함께 살아가는 동료였다.



슬라브족의 역사에서 두드러지는 건 기쁨과 영광의 순간 보다는 고통과 슬픔의 시간들이었다. 비단 최근의 러시아의 침략 전쟁만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에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의 역사가 있었고, 폴란드는 동서의 강국의 침략을 받아 영토의 상당 부분 잃기도 했었고, 과거 소련시절 공산당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코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기도 했다. 또, 남슬라브족의 영역은 유고 전쟁으로 엄청난 사람들의 죽음과 인종청소가 일어난 땅이었으니까.


물론 그 땅에 언제나 슬픔만 있었던 건 아니다. 체코의 프라하는 예술의 도시로 유명하고, 폴란드의 브로츠와프라는 도시는 실험적인 연극으로 유명한 연극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 또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던가.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과거 소련의 유산들로 칙칙하고, 황폐한 느낌이다.



저자가 직접 도시들과 거리를 다니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담았기에 생동감이 있다. 또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그리 익숙지 않은 지역들에 관한 이야기라 좀 더 호기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역사를 소개하면서 예술이라는 코드를 함께 넣은 것도 좋은 기획이었던 듯하고. 한 번쯤 기억해 둘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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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나리스 - 그리스도교를 밝게 비춘 스무 개의 등불, 바울부터 로메로까지
로완 윌리엄스 지음, 홍종락 옮김 / 복있는사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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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전, 혹은 위대한 인물들에 생애를 요약한 책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1세기 살았던 고대 로마시대의 그리스 출신 저술가인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은 유명하고, 그보다 한 세대 후의 작가였던 수에토니우스는 로마 제정 초기 황제들의 일화를 담은 황제전을 써냈다.


교회 안에서도 비슷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이쪽은 성경 속 인물이라든지, 신앙적으로 모범이 되거나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그 주요 저술 대상이 되었다. 일부 초기 저작들는 외경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서 자주 낭독되기도 했고, 성인열전과 비슷한 식으로 여러 명의 인물들을 묶어서 담기도 했다.


이 책은 잘 알려진 성공회 신학자인 로완 윌리엄스가 쓴 일종의 성인열전, 또는 신앙인 열전이다. 가장 먼저 소개되는 건 바울이고,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나 켄테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 안셀무스, 에크하르트, 틴들처럼 교회사에서 주목받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기도 한다. 또, 19~20세기 활동했던 기독교인들도 적잖이 등장하는데, 윌버포스나 찰스 디킨스 같은 인물은 좀 유명하지만, 세르게이 불가코프나 에디트 슈타인, 에티 힐레숨 같은 인물들은 조금 낯설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이런 인물들의 일생을 요약하고, 그들의 사상과 글과 말 등을 정리하는 식의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전제한 채로, 그들의 삶에서 저자인 윌리엄스가 생각하기에 특별했던 요소들을 골라서 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각각의 인물들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 정리되어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들을 모았다고도 볼 수 있다. 다분히 윌리엄스의 신학적 사고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더듬어 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책에 실린 내용 중 일부는 저자가 각각 다른 자리에서 했던 강연이나 글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켄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글은 BBC 라디오에서 했던 강연에서 가져온 것이고, 에크하르트나 크랜머에 관한 내용은 서로 다른 교회에서 했던 강연, 틴들에 관한 글은 저자가 앞서 출판했던 책 속 한 부분이다.


물론 잘 편집되어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잡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또 그 인물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다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도 현대 인물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부족하다보니 살짝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고.


흥미로운 건 이 책의 바로 앞에 읽었던 수학에 관한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되었던 시몬 베유라는 이름의 여성 철학자가 이 책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이렇게 연속으로, 그것도 전혀 다른 장르의 책에서 동일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 경험은 매우 드문데, 내친 김에 좀 더 파봐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깊은 신학적 사고와 유려한 문체, 그리고 훌륭한 번역자의 작업이 더해져서 미적으로 아름다운 문장들이 잔뜩 담겨있다. 이런 게 전 세계 성공회의 최고 지도자였던 캔터베리 대주교를 역임한 저자의 품격이다 싶다.


다만 조금은 현학적이라는 느낌도 동시에 들기도 하는데, 이건 책에서 그려지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접하고 있는 그것들과는 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뉴스라는 게 언제나 자극적인 것들만 모아서 가공하는 나쁜 버릇이 있긴 하지만, 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지금’을 보여주는 중요한 매체이니 무시할 수만은 없는 부분이다.


물론 이 책은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책은 아니다. 교회의 과거와 가까운 어제를 살피면서 우리가 오랫동안 지향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안내서에 가깝다. 언제나 이런 목표를 확인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곳에 이르는 과정에 많은 돌발현상들이 일어나겠지만, 목표를 잃지 않으면 결국 도착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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