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은 세계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안으로서 미친 듯이 단순한 이론이다.

그것은 미친 사람의 논리와 똑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 사상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배제시키는 것을 즉시 감지하게 된다.

이를테면, 맥케이브 씨와 같은 유능하고 성실한 유물론자를 한번 생각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고,

모든 것은 이해할 만한 가치가 없어 보인다는

독특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 G. K. 체스터턴, 『정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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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 지혜, 안녕, 경이의 탐구와 신학의 쓸모에 관하여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이은진 옮김 / 포이에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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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신학’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비판적 시각이 있다. 하나는 원래 기독교는 단순하고 순수한 신앙이었는데 신학이 이를 괜히 복잡하고 어렵게만 만들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런 신학 작업이 정작 하는 일이란 실제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들만의 학문이나 토론주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이 중 두 번째 비판은 중세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스콜라 철학/신학(당시에는 철학과 신학이 크게 구분되지 않았다)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바늘 끝 위에 천사가 몇 명이나 올라갈 수 있을 지를 두고 벌어진 의미 없는 논쟁이 그 대표적인데(사실 이 논쟁은 겉보기와 달리 중요한 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신학계 일부에서 벌어지는 다툼은 더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기도 하니, 여전히 이 비판은 유효한 면이 있다고도 하겠다.


그러나 이 비판은 신학 자체가 쓸모없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신학이 잘못된 방식으로 그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봐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신학 자체에 대한 비판은 첫 번째 쪽일 텐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인 맥그라스는 신학이 (신앙생활에, 또는 오늘날 사람들의 삶에) 무슨 소용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책은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좀 더 큰 그림을, 후반부는 좀 더 구체적인 이유들을 제시하는 데 사용된다.





저자는 신학을, 성경 본문에 관한 연구와 해석들이 모여 만들어진 오래된 기독교 전통으로 본다. 신학에는 교회가 보존해 온 풍성하고 귀중한 유산이 담겨 있다. 그걸 무시하는 사람은 바로 이 유산을 버리고 새 집을 지으려는 사람과 같다. 신학은 과거와 오늘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복음이 변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사실 초기 기독교의 역사는 신학 발전의 역사이기도 했으니 저자의 이 말은 크게 틀리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는 바로 그 신학(정통 신학)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했는지를 생각해 보면(뭐든 뒤집어엎는 걸 좋아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그 시절 이단들에게만 피해자 서사를 입히기를 즐겨하지만, 실제 역사와는 좀 다르다), 오늘날의 상황이 살짝 민망할 정도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서 바로 튀어나온 게 아니라, 2천 년을 버텨온(여기에는 바른 신학이 그 뼈대가 되었다) 동안의 신앙 공동체의 유산을 받아 일어난 후계자들이다. 내가 누구인지는, 그냥 내가 선언하기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유산과 역사를 이어 받았는지로 결정되는 법이다.


저자는 또한 신학이 온통 흩어지고 조각나 있는 세상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신학은 성경을 좀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창을 제공하기도 하고,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지도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린 후, 책의 2부에서는 지혜와 안녕, 경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신학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어떤 유익을 주는지를 아름답게 서술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중에서도 세 번째 주제인 ‘경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신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우리가 공부해 가는 그분이 얼마나 크신지를 깨닫게 함으로써, 더 멀리까지 바라보도록 우리를 이끈다. 인생의 목표를 제시해주는 것이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그러므로 모두가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한 발 더 나아가 이미 우리 모두가 신학자라고 선언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한 신학의 필요성, 신앙생활에서의 신학의 가치 등을 두루 고려해 보면, 이미 우리는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어떤 식으로든 신학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다.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신학과 만나야 한다. 신학의 도움을 받아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나아가 적용을 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신학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뿐이 아닌데, 우선 실천적 차원에서는 교회에서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신학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나 자리가 부족하다.(개별 교회가 그런 교육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또, 학문적 차원에서는 너무나 분산되어 있는 현대 신학계에서 도대체 무엇을 어디서부터 공부해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다.


또, 신학이 교리와 동일시되는 오해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지 않나 싶다. 물론 어떤 교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결사적으로 지켜야 하지만, 또 다른 교리들 중에는 견해의 차이, 또는 현재 상황에서는 추측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들도 있으니까.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신학을 공부해야 한다. 이미 좋은 개론서나 입문서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그것부터 시작해 볼 일이다. 부디 그 안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더 깊은 신앙생활로 나아가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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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을 그르친 경영자가 법인에게 개인 재산으로

‘천문학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지는 않는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잘못했을 때 

소비자가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법원에서 큰 금액으로 인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파업을 한 노조와 노동자에게 청구되는 

손해배상액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균형이 맞지 않는다.


정관영, 『헌법에 없는 언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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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 -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불편한 진실
안톤 숄츠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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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린 안톤 슐츠라는 방송인(실제로는 좀 더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산 지 20년이 넘어서 우리말도 능숙하게 할 줄 알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배경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그는, 동시에 이방인으로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우리를 관찰할 수 있는 관찰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작가의 장점을 잘 살린 기획인 것 같다. 한국을 잘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을 고국으로 여길 수 없는 관찰자의 건전한 비판이 이 책의 핵심적인 성격이다. 아주 진지하게 한국사회에 대한 연구서를 쓴 건 아니고, 자신의 경험을 적당히 섞어가면서 에세이 느낌이다.



1장에서는 일과 여가 사이의 균형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공정’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자기본위의 거짓구호가 될 수 있는지를 지적하면서, 또 하나의 유행어인 ‘워라벨’에 대한 이상한 집착이 오히려 일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도 말한다. 물론 과도한 노동시간은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 역시 내 인생의 일부이며, 일을 통해 얻는 성취감과 기쁨 또한 존재하지 않느냐는 것. 또, 학생들의 경우는 ‘스라벨(스터디 라이프 밸런스)’ 또한 중요하다는 점도


2장은 여행과 관련된 내용이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지역과 나라를 여행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는지를 언급하면서, 여행을 통한 성장을 경험해 보라고 제안한다. 물론 이 때 여행은 누가 대신 짜준 시간표를 따라 이곳저곳을 움직이며 사진만 찍는 식이 아니라, 현지의 사람과 문화를 충분히 경험하는 그런 시간이어야 하고.


3장은 집과 관련된 한국인의 기묘한 집착을 다룬다. 집을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사고파는 상품으로만 여기는 인식이 우리 삶을 얼마나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지에 관한 지적이다. 4장은 교육과 관련된 내용으로, 오로지 시험성적 위주의 교육이 낳은 한심한 결과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부분에 언급된 독일의 공교육(그 동네엔 사교육이 없다고 하니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지만) 과정은 확실히 부럽기도 하다.


마지막 5장은 한국사회를 다루는데, 여기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많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삭제 문화(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발언을 봉쇄하거나 차단하는)’에 대한 지적도 곱씹어 볼만한 지적이고, 흔히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라고 부르는 ‘한’에 일종의 피해의식의 성격이 있다는 설명은 조금은 신선했다.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과 동정, 나아가 호의적 반응까지 얻을 수 있다는 건데, 이런 정서가 사회 전반에 확산될 경우 지나친 자기비하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일견 조금은 보수적인 견해처럼 보일 수도 있다. PC의 삭제주의를 비판하고, 열심히 일하는 즐거움을 논하거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며 많은 나라들의 롤모델인 한국에 살면서 이 사회를 지옥(“헬조선”?)이라고 엄살을 피는 게 맞느냐고 지적하고 있기도 하니까. 온통 “상처받았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오늘날에는 꼰대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부분 때문에 책 초반 잔뜩 양해의 말을 덧붙였던 것일 게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과도 대화를 시도하고, 나와 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경험을 강조하고, 동시에 그러고도 있다. 온통 비판만 쓴 것 같지만, 또한 한국이라는 나라의 장점에 대해서도 매우 잘 알고(그러니 20년 가까이 이 땅에서 살았을 테고) 그걸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방송에 나와 던지는 이야기들을 보면, 특정한 정파에 속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지도 않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다. 요컨대 관점이 다른 것이고, 이 부분은 그가 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독일과 우리나라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분명 독일인의 눈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여러 모습들에서 이상함이 발견되었던 것.



물론 그의 지적을 모두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개인적으론 꽤 타당한 면이 있다고 본다. 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소위 “뽕”에 빠져서는 안 될 테니까.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논리는 대개 상식적인 것들이라서,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혹은 그저 적당히 넘기고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책의 내용이 불편하다면, 어쩌면 그만큼 우리가 이상함을 이상하게 여기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 돌아볼 일이다. 어쨌든 계속 살아가야 할 우리 사회를 읽는 데 분명 도움이 될 만한 지점들이 여럿 보이는 책이다. 물론 오로지 자신을 공감해 주기만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이 책 속 내용들이 불편할 게 분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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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싱 스트리트 : 스틸북 한정판 풀슬립 B (2disc: 본편BD + OST) - 부클릿(40p)+명대사 엽서(7종)
존 카니 감독, 퍼디아 월시 필로 외 출연 / SM LDG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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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감성.


추천받지 않았더라면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을 것 같다. 좀처럼 레이더망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 같은, 80년대 감성의 음악 영화, 그것도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80년대 생인 나로서도 그 시절은 아주 어린 시절 어렴풋하게 인상만 남아있던 시기다. 요새는 좀 더 젊은 세대도 몇몇 드라마로 그 시절 감성이 무엇인지 살짝 엿볼 수 있기도 하지만.


그런데 1980년대 아일랜드의 분위기는 또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많다. 우선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우리나라는 전두환 군부독재로 80년대가 시작되었다면 아일랜드는 이웃한 잉글랜드와의 정치적인 대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유명한 IRA 같은 무장 단체들이 폭력적인 투쟁을 활발히 하던 시기이기도 하고.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3저 호황기와 맞물려 국가주도적 경제정책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반면 아일랜드는 극심한 경제침체로 유럽의 병자라고 불릴 정도였으니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크게 분위기가 달랐던 셈. 영화 속에서도 주인공들은 정체되기만 하는 아일랜드를 떠나 런던으로 가려고 한다.


시대물답게 그 시절의 배경과 복장, 그리고 음악에 공을 많이 들였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로 전반적으로 퇴락한 분위기의 건물들과 거리 풍경,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앞장서 깨고 싶다는 것처럼 보이는 조금은 과장된 화장 같은 것들.





음악영화.


역시 이 영화는 음악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다보니, 감독도 이 쪽에 많이 집중한 모양이다. 우선 감독인 존 카니의 적작 중에 “원스”나 “비긴 어게인” 같은 어느 정도 성공한 음악영화가 있기도 했으니, 이 분야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고 봐야 할 듯.


찾아보니 영화 속 사용된 밴드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실제로 80년데 밴드활동을 했던 작곡가에게 곡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덕분에 단순히 리메이크가 아니라 정말 이런 밴드가 있었나 싶을 정도의 실감나는 노래들이 삽입될 수 있었다. 뭔가 막연한 향수 같은 걸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단지 새로운 노래만이 아니라 그 시절 널리 불렸던 여러 곡들도 들어있다고 한다. 이쪽 노래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듯.





청춘.


영화의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이라는 설정이다. 주인공 코너는 이혼 위기의 가정의 둘째 아들로, 경제적인 문제로 빈민가의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흥미로운 건 이 학교가 가톨릭 계통의 학교라고 묘사되는데, 프랑스어 수업 시간에 술을 홀짝이며 라틴어를 가르치고 있는 늙은 교사나, 강압적으로 학생들을 통치하려는 교장 모두 신부들이다.(사실 이 동네에서는 가톨릭 계통 학교의 악명이 일종의 밈처럼 작용할 때가 많다.)


암담해 보이는 가정과 학교에서 무엇 하나 희망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우연히 만난 라피나를 보고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충동적으로 밴드를 결성하기로 하면서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청춘이다.


영화는 그렇게 사랑과 음악이란 두 개의 코드로 진행을 해 나가는데, 음악 쪽은 계속 발전해 나가는 듯하지만, 사랑사업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10대의 연애라는 게 대개 그렇듯 미숙하고, 예측하지 못할 만한 상황들이 늘 일어나곤 하니까. 그런 것 때문에 흔들리는 모습들, 그리고 영화의 결말부에 나오는 모험, 그리고 배경으로 깔리는, 끊임없이 지금 도전하라고 외치는 노래가사까지.. 조금은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또 그런 게 젊음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랑과 꿈으로 얼마든지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나날들을 떠올리며 유쾌하게 볼 수 있었던 영화. 아, 조금씩 세련되어져 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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