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싱 스트리트 : 스틸북 한정판 풀슬립 B (2disc: 본편BD + OST) - 부클릿(40p)+명대사 엽서(7종)
존 카니 감독, 퍼디아 월시 필로 외 출연 / SM LDG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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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감성.


추천받지 않았더라면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을 것 같다. 좀처럼 레이더망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 같은, 80년대 감성의 음악 영화, 그것도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80년대 생인 나로서도 그 시절은 아주 어린 시절 어렴풋하게 인상만 남아있던 시기다. 요새는 좀 더 젊은 세대도 몇몇 드라마로 그 시절 감성이 무엇인지 살짝 엿볼 수 있기도 하지만.


그런데 1980년대 아일랜드의 분위기는 또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많다. 우선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우리나라는 전두환 군부독재로 80년대가 시작되었다면 아일랜드는 이웃한 잉글랜드와의 정치적인 대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유명한 IRA 같은 무장 단체들이 폭력적인 투쟁을 활발히 하던 시기이기도 하고.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3저 호황기와 맞물려 국가주도적 경제정책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반면 아일랜드는 극심한 경제침체로 유럽의 병자라고 불릴 정도였으니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크게 분위기가 달랐던 셈. 영화 속에서도 주인공들은 정체되기만 하는 아일랜드를 떠나 런던으로 가려고 한다.


시대물답게 그 시절의 배경과 복장, 그리고 음악에 공을 많이 들였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로 전반적으로 퇴락한 분위기의 건물들과 거리 풍경,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앞장서 깨고 싶다는 것처럼 보이는 조금은 과장된 화장 같은 것들.





음악영화.


역시 이 영화는 음악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다보니, 감독도 이 쪽에 많이 집중한 모양이다. 우선 감독인 존 카니의 적작 중에 “원스”나 “비긴 어게인” 같은 어느 정도 성공한 음악영화가 있기도 했으니, 이 분야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고 봐야 할 듯.


찾아보니 영화 속 사용된 밴드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실제로 80년데 밴드활동을 했던 작곡가에게 곡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덕분에 단순히 리메이크가 아니라 정말 이런 밴드가 있었나 싶을 정도의 실감나는 노래들이 삽입될 수 있었다. 뭔가 막연한 향수 같은 걸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단지 새로운 노래만이 아니라 그 시절 널리 불렸던 여러 곡들도 들어있다고 한다. 이쪽 노래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듯.





청춘.


영화의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이라는 설정이다. 주인공 코너는 이혼 위기의 가정의 둘째 아들로, 경제적인 문제로 빈민가의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흥미로운 건 이 학교가 가톨릭 계통의 학교라고 묘사되는데, 프랑스어 수업 시간에 술을 홀짝이며 라틴어를 가르치고 있는 늙은 교사나, 강압적으로 학생들을 통치하려는 교장 모두 신부들이다.(사실 이 동네에서는 가톨릭 계통 학교의 악명이 일종의 밈처럼 작용할 때가 많다.)


암담해 보이는 가정과 학교에서 무엇 하나 희망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우연히 만난 라피나를 보고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충동적으로 밴드를 결성하기로 하면서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청춘이다.


영화는 그렇게 사랑과 음악이란 두 개의 코드로 진행을 해 나가는데, 음악 쪽은 계속 발전해 나가는 듯하지만, 사랑사업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10대의 연애라는 게 대개 그렇듯 미숙하고, 예측하지 못할 만한 상황들이 늘 일어나곤 하니까. 그런 것 때문에 흔들리는 모습들, 그리고 영화의 결말부에 나오는 모험, 그리고 배경으로 깔리는, 끊임없이 지금 도전하라고 외치는 노래가사까지.. 조금은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또 그런 게 젊음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랑과 꿈으로 얼마든지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나날들을 떠올리며 유쾌하게 볼 수 있었던 영화. 아, 조금씩 세련되어져 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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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산다는 것 - 예수님의 길을 걷는 지혜로운 삶
유진 피터슨 지음, 홍종락 옮김 / 복있는사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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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유진 피터슨의 미출간 원고들을 모아 새로운 책이 나왔다. 그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예상되는 행보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속 영적 흔적을 탁월하게 발굴하고 그걸 명료한 문장으로 보여주었던 영적 탐정이자 문장가였던 유진 피터슨이기에, 그의 글을 읽는 건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자극을 준다.


이 책에 실린 글의 대부분은 그가 매주 자신이 사역하던 교회 공동체를 위해 썼던 목회서신에서 뽑았다고 한다(몇몇 글은 목사안수식 설교라든지 하는 다른 자리를 위한 글이었다). 때문에 전반적으로 교인들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매주 그의 설교와 그가 보낸 편지를 받는 기분은 어떤 것이었을까.



크게 다섯 개의 주제―시작, 단순함, 기도와 찬양, 자비, 영광―로 구성해 피터슨의 글을 비슷한 주제별로 모아두었다. 애초에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생각이 아니었기에 일부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문장과 주제들이(오랜 시간 매주 한 편씩 쓴 것이라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보인다. 또, 독자는 일정했지만 그 상황은 다양했을 텐데 그 정확한 배경이 대개 적혀있지 않아서 추정해야만 하는 어려움도 있다. 차라리 발췌한 원래 글의 날짜라도 적어줬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피터슨의 다른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지만, 이 책에 실린 글에서 매우 자주 반복되고 있는 주제라면, 역시 ‘일상’의 중요성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주시는 곳은 무슨 특별한 시공간이 아니라 바로 이곳, 여기이다. 일상의 평범해 보이는 일들은 실은 영원과 만나는 특별한 문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특별히 눈을 뜬 사람들에게 보이긴 하지만.



자신의 교인들을 생각하면서 애정을 담아 꼭꼭 눌러쓴 피터슨의 자취가 짙게 느껴지는 글들이다. 신앙생활 속 평범하면서 특별한 진리를 날카롭게 찾아내는 솜씨에는 늘 감탄하게 되고, 그걸 멋진 표현으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도 부럽기만 하다. 새해를 맞아 신앙생활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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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1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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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카이사르가 등장하는 시리즈가 시작된다. 다른 시리즈처럼 이번 시리즈 역시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게 꽤나 노골적이다. ‘카이사르의 여자들’이라... 그가 바람둥이로 유명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고대 로마에서 그게 엄청난 추문이 되어서 정치적으로 매장될 만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새삼 흥미롭다. 문득 몇 년 전 박근혜 정권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혼외자 스캔들을 터뜨렸던 것도 생각나고.



그럼 이번 시리즈에는 어떤 여자들이 등장할까? 우선은 카이사르의 어머니인 아우렐리아가 있다. 우아하고 고상한 성격으로 젊은 시절 술라가 반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까지 가지고 있던 그녀도 이제 늙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카이사르가 상담을 할 수 있는 현명함을 지니고 있다.


또,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가 있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아름다운 외모에 생각도 깊은 캐릭터로 등장한다. 카이사르는 그를 브루투스(바로 그 브루투스다!)와 약혼을 시킨다.


그리고 세르빌리아가 있다. 카이사르와 오랫동안 내연관계를 유지하던 인물로, 앞선 시리즈에서 오직 자신의 아버지에게만 호감을 느끼는 꽤나 괄괄한 여자 아이였던 바로 그 인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카이사르의 딸과 약혼을 한 브루투스의 어머니... 상당히 주도면밀하면서, 감정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독특했던 인물.


여기에 율리아를 낳고 죽은 카이사르의 아내의 자리에 새로 들어오게 된, 술라의 손녀딸 폼페이아가 있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머리는 텅텅 빈 캐릭터. 평판이 좋지 못한 부인들만 만나면서, 곧 일어날 그 사건(“카이사르의 아내는 작은 흠조차 있으면 안 됩니다”를 내뱉게 할)을 내다보게 한다.


이 중에서도 단연 눈에 들어오는 건 세르빌리아다. 카이사르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배고도 (병약한) 남편과의 협상을 통해 남편의 아이로 삼게 하는 모습은 뜨억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당당한 불륜이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결혼이 가문 사이의 정치적, 경제적 계약이었던 고대 로마에서 이런 케이스가 단지 세르빌리아 하나뿐이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번 편에서는 폼페이우스의 명성을 지중해 전체에 확산시켰던 그 유명한 해적소탕 작전이 등장하고, 그 말미에 유대 지역의 하스모니안 왕조의 초라한 최후도 폼페이우스의 편지 형태로 살짝 등장한다. 카이사르는 착실하게 관직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중으로, 고등조영관이 되어 또 그 유명한 초호화 축제를 개최했고, 마침내 최고신관의 자리에 오른다.


사실 전임 사제 계층이 없었던 로마에서 신관이란 다른 일들을 하다가 제사가 있을 때만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겸직 신분이었지만, 최고신관만큼은 종신직으로 관저까지 주어졌다. 한창 빚에 쪼들리고 있었던 카이사르에게는, 빚쟁이들에게 자신이 좀 더 높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빚독촉을 늦추는 효과도 있었고, 하층민들의 주거지인 수부라 지역을 떠나 최고신관 관저로 집을 옮길 수 있었던 것도 유익이었다.


아, 이번 편에서 유독 눈에 띠었던 것 중 하나는 카이사르의 큰 빚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가 평생 엄청난 빚을 지고 살았던 그였지만 별 걱정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식으로만 묘사했었는데, 여기에선 점점 복리로 불어나는 빚을 당장에 감당하지 못해 초초해 하는 모습도 보인다. 사실 원로원 의원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정 금액 이상의 재산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자격 조건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관직의 사다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위기이기도 했으니 이 쪽이 좀 더 사실과 가깝지 않았을까.


여기에 비로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소(小) 카토에 대한 묘사나 우직하지만 뛰어난 장군으로만 알고 있었던 루쿨루스의 새로운 모습, 그리고 음습한 음모꾼과 장난꾼 사이를 위태롭게 오고가는 듯한 클로디우스 등 새로운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로마의 정치판이 신나게 묘사되어 간다. 역사덕후는 그저 즐겁게 책장을 넘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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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콜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시고니 위버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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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못한 판타지물.


영화 제목에 ‘몬스터’가 들어가 있긴 했지만, 그게 실제로 화면에 나타날 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정말로 나무 괴물이 등장해서 주인공 코너와 “대화”를 시도한다. 그렇다. 괴물이지만 막 때려 부수는 게 아니라 소년과 대화를 시도하는 괴물이다. 덩치가 크니 움직일 때마다 뭔가 부서져 나가긴 하지만, 대화가 끝나면 다시 원상복귀 되는 것으로 보아 현실 세계의 괴물이 아니라는 걸 금세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 코너는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소년이다. 그런데 그 어머니마저 큰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고, 학교에서는 왜소한 체구의 코너를 괴롭히는 패거리들이 있다. 여기에 코너를 자신에 집에서 생활하게 하려는 엄격한 외할머니까지.


앞서 말한 괴물이 결국 소년의 상상 속 판타지였다면, 그건 그에게 영향을 끼친 무엇이 형상화된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과연 괴물의 정체는 과연 뭐였을까. 물론 영화 말미에 그 정체는 어느 정도 드러난다.





괴물이 소개하는 이야기.


밤 12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면, 나무 괴물은 소년을 만나러 온다. 그리고 소년에게 자신과 관련이 있는 옛날이야기를 네 편(세 번째 이야기는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들려준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내용이 평범하지 않다. 마녀 여왕을 물리친 왕자의 이야기에서 정말로 나쁜 캐릭터는 마녀가 아니었고, 젊은 목사와 의심쩍은 약제사 이야기에서 문제는 목사에게 있었다. 이야기의 결말에 이르면 누가 옳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결국 이 이야기는 소년, 즉 코너의 이야기다. 앞서 그의 앞에 나타난 이 괴물이 그를 둘러싼 괴물들 중 누구를 형상화한 것일까를 물었었다. 십대 소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부모의 이혼과 어머니의 불치병)를 겪느라 안 그래도 힘이 든 그에게 그 모든 것이 버겁기만 했을 것이고, 모두 충분히 괴물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단순한 결말로 마무리 되지 않는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 괴물은 반복해서 ‘진실’을 말하라고 오히려 코너에게 요구했고, 결국 코너가 그 진실을 입 밖에 내버렸을 때 비로소 흩어졌던 퍼즐들이 맞춰지면서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사실 그 진실이라는 것도 실은 그 나이 또래의 소년이 충분히 해볼만한(사실은 그보다 나이가 들어서도) 생각이었으니, 코너를 괴롭혔던 것은 주변 환경도 환경이지만 본인 자신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문제들의 근원이, 우리 안에 있었음을 깨닫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그걸 솔직하게 말해버리고, 그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게 그걸 치유하는 지름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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