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영화의 제목인 헌트는 사냥하다라는 뜻이다결국 영화는 무엇인가혹은 누군가를 사냥하는 이야기이고마치 사냥을 하듯 어떻게 그 대상을 덫으로 몰아넣어 처리하느냐가 그 중심에 있다그리고 그 사냥감은 바로 전두환이었다.


사실 전두환을 암살혹은 제거하려는 계획을 소재로 한 영화나 창장물을 여러 편 본 적이 있다대표적으로는 강풀의 웹툰을 바탕으로 제작됐던 “26이라는 영화가 기억에 난다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자국민을 학살하며 권력을 유지한 독재자가 제대로 단죄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눈을 감는 일만큼 공분을 사는 일도 없을 터.


하지만 불행히도 실제로 그 일은 일어나 버렸고권선징악이라는 자연법적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런 식으로나마 다양한 단죄의 시도를 하게 되는 것 같다언제나 현실은 더 비루하고그래서 우린 이런 식으로나마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지도 모르겠다.




누가?

누구를 사냥하는가도 중요한 포인트지만사실 이 영화에서 좀 더 중요한 포인트는 누가 그 사냥을 하느냐다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은 안기부 차장을 맡고 있는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인데각각 국내파트와 해외파트를 담당하는 인물이다.


영화 초반에는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치열하게 견제하는 모습이 긴장을 불러일으키고둘의 전혀 다른 성격과 배경그리고 정체가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진다그리고 마지막 사냥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두 사람의 선택이 엇갈리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루고이야기의 구조는 꽤 잘 짜여 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두 사람의 배경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발생한다한 사람은 북한과또 다른 사람은 군부 내 반독재세력과 연계가 있다그런데 두 사람의 목적이 일치한다는 점이 또 아이러니하다남한의 대통령을 제거해 생긴 혼란을 틈타 적화통일을 시도하려는 북한과 국민을 학살하며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독재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군부 내 소장파두 사람 모두 죄 없는 민간인들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일치하고 있었지만또 이게 결말부에서 두 사람의 행동을 엇갈리게 만든다.


양쪽의 선택이 모두 어느 정도 공감이 가기 때문에일방적인 선악과 진영논리를 넘어서 생각할 여지를 제공해 준다.




?

영화의 소재가 된 아웅 산 묘소 참배 테러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전두환이 당시 버마를 방문했고수행원들과 함께 참배를 할 예정이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고영화처럼 수행원들만 죽음을 당했던 사건이다희생자를 많이 냈지만 애초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실패한 테러였다.


그런데 이 날 전두환이 목숨을 구한 건 정말 우연에 우연이 더해진 결과였다고 한다버마 외교장관이 영빈관에 있던 전두환을 만나러 오는 과정에서 차가 고장났고이 때문에 영빈관에서 나온 시간이 늦어졌다는 것묘소에서 대통령을 기다리던 중 미리 시험 삼아 불었던 트럼펫이 신호가 되어 폭탄이 먼저 터졌다는 설명이 유력하다.


워낙에 어이없는 행운이기에영화는 여기에 작은 상상력을 하나 더한다애초에 전두환을 죽이려 했던 북한의 의도에 불만을 품었던 내부자가 마지막에 생각을 바꿨다는사실 북한에 의한 남한 대통령 암살이 성공했다면 그 이후 정세가 어떻게 흘러갔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니꽤 개연성 있는 전개였다그렇게 픽션과 실제는 적당한 싱크로가 이루어진다.


전반적으로 꽤 괜찮게 볼 수 있었던 액션 영화다단순히 액션만이 아니라 적절한 심리전까지 더해져서 볼만한 영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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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를 위한 변론 - 지속가능한 지구생태계와 윤리적 육식에 관하여
니콜렛 한 니먼 지음, 이재경 옮김 / 갈매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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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제목이지만 표지가 꽤나 강렬하다길게 자란 녹색의 풀과 하얗고 빨갛고 노란 꽃들이 피어있는 가운데검은 색 소가 살짝 빨간 혀를 내민 채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이 모든 모양이 지극히 파스텔화 톤으로 그려져 있어서 무슨 동화 같기도 한데또 소 그림이 너무 리얼해서 동화 느낌은 또 안 들고... 제목을 보고 대략 무슨 내용인지 짐작은 갔지만이런 표지 센스를 보여줄 줄이야.


우선 저자의 이력이 흥미롭다수십 년 동안 고기가 위험하고 해롭다는 주장을 믿어온 채식주의자였지만육식에 대한 지나친 비토 정서에 담긴 비합리적 주장들을 깨닫고 난 뒤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는 것오랫동안 환경보호단체 소속의 변호사로 일하면서 공장식 사육을 없애기 위한 운동을 주도해 왔고현재는 목장을 운영하는 남편과 함께 목장에서 일하며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그야말로 이 주제에 관해 오랫동안 깊숙이 발을 딛고 있었던그래서 뭔가 말을 하기에 적임자라는 느낌이랄까.






사실 이전에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책을 본 적이 있다. “신성한 소라는 책이었고두 권의 책을 모두 읽어본 후의 감상도 역시나 비슷했다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있는데그 분량으로나(1부가 전체의 2/3내용으로나 1부가 가장 중요하다.


소와 지구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1부는 소고기를 먹는 것이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원흉이라는 비난이 어째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이다. “소고기와 사람이라는 제목이 붙은 2부는 주로 건강문제와 관련해서 소고기를 공격하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 “현실 그리고 미래라는 이름의 3부는 고기를 먹는 일 자체에 대한 윤리적철학적 검토가 살짝 이루어진다.


역시나 가장 중요한 주장은오늘날 육식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는 과도한 비판이 사실에 기초한 일인지를 체크하는 부분이다우리는 흔히 소를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사료가 들어가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굶주리게 되는지또 얼마나 많은 물이 들어가서 사람들이 먹을 물이 줄어드는지얼마나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겨서 환경을 오염시키는지소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밀림이 사라지는지 같은 선정적인 이야기들을 듣곤 한다이 책의 저자는 그런 주장들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컨대 현재 지구상에서 사육되는 소는 (다양한 이유로대개 사료가 아니라 풀을 먹고 자라고 있고소를 키우는데 들어간다는 엄청난 양의 물은실은 소가 먹지 않으면 땅속에 스며들어 사라질 빗물까지 포함된 수치이며(그 빗물을 맞으며 자란 풀을 소가 먹는다면 그 물까지 소고기에 사용된다는 식의 괴상한 논리), 목장을 조성하기 위해 밀림을 파괴하는 행위는 일종의 중간단계이고실은 최종적으로는 그 땅을 경작지로 만들려는 목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그렇게 만들어진 경작지에서 생산된 채식은 환경적인가?)


붉은 고기가 건강에 나쁘다는 상식도 불충분한 연구의 결과였다사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통제변수를 완벽하게 제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오류의 가능성이 늘상 존재할 수밖에 없고생활습관에 관한 설문 방식은 기억의 오류나 편향 등으로 잘못 진술되기도 쉽다여기에 연구자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편향된 태도를 지니고 있다면 그 결과가 잘못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저자에 따르면 최근의 연구에서 심혈관질환에 붉은 고기가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은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문제는 식품첨가물 쪽에 있을 가능성이 좀 더 높다.





채식이 쿨해 보인다는 이유로 그걸 선택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다물론 개인이 어떤 걸 먹을지는 그 사람의 자유다(나도 하루에 거의 한 끼는 샐러드나 그 비슷한 걸로 때우곤 한다). 그 이유가 좀 미심쩍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을 비난할 필요는 없고문제는 자신의 선택이 옳으며’,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할 때이다(물론 이게 단지 음식에 대한 취향보다 좀 더 중요한 주제일 경우는 좀 다른 접근이 필요하지만).


사실 저자가 비판하는 것도 육식에 대한 윤리적 공격을 가하는 사람들이다문제는 소가 아니다그 소를 가둬둔 채로 고문하듯 기르는 공장식 축산 방식이다소는 제대로 방목해서 기르기만 한다면오히려 환경에도그걸 먹는 인간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저자는 여러 차례 강조한다개인적으로는 이 주장이 동물(의 정치적)()이나 종차별주의 같은 미심쩍은 주장보다 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일 뿐 아니라동물들에게도 실질적인 유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책의 짜임새 면이앞서 언급했던 신성한 소에 비해 좀 덜 탄탄해 보인다물론 이 책에도 다양한 과학적 근거들이 등장하지만그런 정보는 표나 그래프 등으로 정리해 주는 게 훨씬 가독성을 높인다애초에 과학적 근거를 차근차근 제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에세이를 쓰려는 것인지 정체성이 살짝 모호한 감도 보인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을 쓸 때는 성격을 명확히 하고 들어가는 게 좋다.


사실 선뜻 추천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럽지만관련 주제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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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인생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 대해서,

각 시대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질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런 질문에 기독교인과 교회는 성실하고 진실하게 답해야 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적절한 답을 함께 찾지 않으면서

“무조건 믿어라”라고 말하는 것은 지적 태만이며 나아가 지적 폭력입니다.

이런 자세 대문에 많은 사람이 근본 진리에 대해서

고민도 해보기 전에 아예 포기해버립니다.

지적으로 자살을 하면서,

어떻게 진리와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김형국,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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