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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지의 중국인 - 냉전 시대 서사에서 영토는 어떻게 상상되었는가 ㅣ 교차하는 아시아 6
류저우하우 지음, 권루시안 옮김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2021년 11월
평점 :
제목을 보고 역사나 사회학적 연구라고 생각했으나, 저자는 문학연구자였다. 그리고 이 책 역시 몇 권의 문학작품을 제시하고 그 안에 담긴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는 형식이었다. 사실 문학이나 예술에 관한 연구는 워낙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고,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선연구들도 잔뜩 있는지라 평소엔 손이 잘 가지 않는 분야다. 하지만 이렇게 실수(?)로 손에 들어왔다면 읽어볼 수밖에. 도서관에 다니다 보면 이렇게 우연한 만남도 일어난다.
책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룬다. 하나는 6.25 전쟁을 배경으로 쓴 두 권의 소설을 중심으로, 한중 국경지대인 만주와 그 일부인 간도 지역에 살았던 한국인들의 모호한 신분과 중국의 참전으로 한반도로 들어왔다가 거제의 포로수용소에 머물렀던 인민해방군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또 다른 하나는 1950~60년대 말라카 반도에 정착한 중국인들이 겪었던 문제다. 이 지역에 이주한 중국인들은 영국 식민정부에 의한 노동력 동원 차원에서 유입된 이들이었는데, 영국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토지소유권을 허락하지 않았고, 후에는 공산당과 연합할 것을 우려해 인위적으로 만든 집단 정착촌에 강제이주 조치를 하기도 한다. 이 주제는 웡윤와라는 시인의 시집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책의 제목에도 언급된 ‘경계선’에 선 존재들이다. 간도의 조선 농민들과 거제의 중국인 포로, 말라카 반도의 중국인 이주자들은 모두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채, 임의적이고 잠재적인 구성원 취급을 받고 있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겪었던 차별과 각종 탄압, 희생은 뭐라 말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힘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주제만 보면 꽤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책은 그런 현장감이나 긴박감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다. 우선 문장 지나치게 난해하고, 학술적인 표현과 개념을 잔뜩 사용하고 있어서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문외한의 슬픔) 번역 과정에서 이를 좀 풀어서 설명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지만, 뭐 그렇게는 안 됐다.
책의 부제에 따르면 ‘냉전 시대 서사’ 속에서 ‘땅이 가지는 상징성’ 등등을 언급하려고 했던 듯하나, 개인적으로는 썩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달까. 물론 문학을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 자체는 흥미롭게 느껴졌지만, 애초에 언급되는 작품들을 직접 접해보지도, 다양한 문학 학술 용어들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내 경우엔 무리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