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언제나 지나간 이야기를 한다. 비록 그 주제가 오늘을 다루거나, 미래를 에측하는 것이라도 해도, 그 근거는 늘 과거의 어딘가에 맞닿아 있다.


그 때문일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앞으로 일어날 일보다는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곱씹으며 살아간다. 


문제는 이렇게 지난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언제나 후회할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는 점이다. 그 때 이렇게 했더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그렇게 머리가 복잡해지면, 어지러진 바닥을 쓸어내듯 생각을 한 쪽으로 밀어내고는 다시 새로운 책을 손에 든다. 뭐 별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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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베들의 시대 - ‘혐오의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김학준 지음 / 오월의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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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통령실에 채용된 여당의 청년대변인의 일베 전력이 밝혀져 꽤나 애를 먹고 있는 것 같다나름 고민해서 낸 해명이라는 게, “가족들 사이에 아이디를 돌려쓰고 있다”, “동생이 몇 개 이상한 글을 쓴 것 같다(나는 아니다)”였는데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옹색하고 졸렬하다.


누가 들어도 어이없는 이런 변명이라도 둘러대야 할 정도로우리 사회에서 일베 전력은 부끄럽거나감춰야 하는 행적이다그 사이트의 게시물에 등장하는 배설하는 온갖 패륜혐오임의로 편집해 만든 거짓과 조롱은 사이트 이용자들의 인격과 사회성을 의심하게 만든 지 오래되었으니까.


이 책은 그런 일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담고 있다확실히 제목이 중요한 게이런 제목이 붙어 있으면 한 번쯤 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게다가 뒤늦게야 확인한 표지도 압권이다흑백으로 그려진 평범한 거리 풍경 속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렸는데그 중 일부의 머리 부분이 파란색의 바이러스나 뭔가 폭발하거나 흘러내리는 기괴한 모양을 띄고 있다차도 쪽으로 흘러나온 파란색 유동성 물질은 차가 지나가면서 인도 쪽으로 튀기도 하고다시 보니 꽤나 공을 들였다

.


책 제목과 함께 이 표지 그림은 이 책의 내용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일베는 보통 사람들’ 중 섞여 있으며그들이 튀긴 일베스러움은 주변 사람들에게 오염을 일으킨다는 것.





기본적으로 저자의 논문을 바탕으로 엮어낸 책답게사회학 연구의 기본과정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석사논문도 이 정도는 써야 통과가 되는 법이다우선은 일베가 나오기까지의 한국사회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의 발전사를 훑는다.


기본적으로 유머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인정과 주목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배경으로 한 몇 개의 사이트들이 발전분화의 과정을 거쳐 일베에 이르게 되었다이 과정에서 일베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를사회적으로는 팩트중심주의와 참여주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표현의 자유도 중요한 요소고.


이어서 메타 데이터 분석 방식을 사용해일베에 올려진(그리고 연구 당시까지 남아있던모든 게시물들을 분류해그 사이트가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키워드를 뽑아내고이를 통해 일베 이용자들의 지배적인 정서를 추적하는 과정과직접 일베 이용자들을 만나서 진행한 인터뷰와 그 분석이 더해진다.






이런 예비적 연구를 통해 저자는 일베의 성격을 규정하려고 시도한다그들은 우리가 흔히 일베 하면 떠올리는 과격한 극우집단이라기 보다는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자신들이 바라는 (이전 시대에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던안정적 가정을 얻을 수 없게 된 상황에 좌절해 자조감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이라는 것.


요컨대 일베혹은 일베 현상이란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불안정해진 오늘날의 사회 상황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말로 들인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배설하는 온갖 텍스트의 쓰레기들까지 온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겠지만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않은 채 그저 욕만 한다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테니까.


다만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이 일베화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이런 분석이 가지는 한계도 분명 존재하지 않나 싶다. 20대 남성이 주류라고는 하지만 이미 10대 청소년들의 보수화또는 일베화도 상당부분 진행되었다는 조사도 있는데이들 또한 비슷한 프레임으로 분석이 가능한 것일까, 10년 전 20대였던 지금의 30대와 그 이상들은 일베와 완전히 분리할 수 있을까?



최근 우리는 이준석이라는 일베의 현신을 마주하고 있다말과 글이 육신을 입는 일종의 성육신의 일베 버전이다헌정 사상 처음이니 뭐니 하는 과장된 수식어를 동원해 가며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지만그런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느꼈다.


물론 극단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람이나 집단은 언제든 쉽게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이긴 했지만이준석이 비판하며 싸우는 대상 중 하나인 기존의 보수세력은 그래도 최소한 눈치는 보고염치는 지키려는 시늉은 하지 않았던가수해 현장에 와서 사진 잘 나오게 비 좀 왔으면 좋겠다는 망언을 한 국회의원은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대국민 사과는 하지 않던가같은 상황이라면 이준석은 어떻게 했을까?


그랬던 그가 당에서 축출되는 상황에 몰리면서눈물을 짜며 억울하다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개인적으로는 그가 이전에 약자들을 향해 내뱉었던 말들이 자기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나 보다이런 쿨하지 못한 모습을 또 일베는 어떻게 보고 있을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하고.



일베에 관한 괜찮은 사회학 연구서주제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페이지가 적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 금세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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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지의 중국인 - 냉전 시대 서사에서 영토는 어떻게 상상되었는가 교차하는 아시아 6
류저우하우 지음, 권루시안 옮김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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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역사나 사회학적 연구라고 생각했으나저자는 문학연구자였다그리고 이 책 역시 몇 권의 문학작품을 제시하고 그 안에 담긴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는 형식이었다사실 문학이나 예술에 관한 연구는 워낙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고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선연구들도 잔뜩 있는지라 평소엔 손이 잘 가지 않는 분야다하지만 이렇게 실수(?)로 손에 들어왔다면 읽어볼 수밖에도서관에 다니다 보면 이렇게 우연한 만남도 일어난다.



책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룬다하나는 6.25 전쟁을 배경으로 쓴 두 권의 소설을 중심으로한중 국경지대인 만주와 그 일부인 간도 지역에 살았던 한국인들의 모호한 신분과 중국의 참전으로 한반도로 들어왔다가 거제의 포로수용소에 머물렀던 인민해방군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또 다른 하나는 1950~60년대 말라카 반도에 정착한 중국인들이 겪었던 문제다이 지역에 이주한 중국인들은 영국 식민정부에 의한 노동력 동원 차원에서 유입된 이들이었는데영국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토지소유권을 허락하지 않았고후에는 공산당과 연합할 것을 우려해 인위적으로 만든 집단 정착촌에 강제이주 조치를 하기도 한다이 주제는 웡윤와라는 시인의 시집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책의 제목에도 언급된 경계선에 선 존재들이다간도의 조선 농민들과 거제의 중국인 포로말라카 반도의 중국인 이주자들은 모두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채임의적이고 잠재적인 구성원 취급을 받고 있었다당연히 그 과정에서 겪었던 차별과 각종 탄압희생은 뭐라 말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하지만 국가의 힘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주제만 보면 꽤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아쉽게도 책은 그런 현장감이나 긴박감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다우선 문장 지나치게 난해하고학술적인 표현과 개념을 잔뜩 사용하고 있어서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문외한의 슬픔번역 과정에서 이를 좀 풀어서 설명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지만뭐 그렇게는 안 됐다.


책의 부제에 따르면 냉전 시대 서사’ 속에서 땅이 가지는 상징성’ 등등을 언급하려고 했던 듯하나개인적으로는 썩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달까물론 문학을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 자체는 흥미롭게 느껴졌지만애초에 언급되는 작품들을 직접 접해보지도다양한 문학 학술 용어들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내 경우엔 무리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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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유 플랫폼 기업의 수익 기반이 된 것은

공유 가치도 첨단 기술도 아니고

2008년 대침체로 ‘붕괴된 노동시장’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만약 지난 10년 동안 탄탄한 노동시장과

노동자들의 강한 협상력이 건재했다면,

부업으로라면 모를까 지금과 같이 수많은 구직자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고 플랫폼 노동에 뛰어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공유기업들은 결코 지금처럼 번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 김병권, 『진보의 상상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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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 리포트
미키 코이치로 감독, 후쿠시 소타 외 출연 / 인조인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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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고양이의 날.

오늘(8월 8)은 국제 고양이의 날이라고 한다아침에 들어가 본 유튜브 로고가 재미있게 바뀌어 있는 바람에 알았다그래서 소개하는 고양이 영화 한 편의도적으로 맞춘 건 아닌데그렇게 되어버렸다.


영화는 자신의 반려 고양이와 함께 여행을 하는 주인공 사토루와 그의 고양이 나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사토루의 이번 여행 목적은 나나를 맡길 사람을 찾는 것그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 여럿이 나서서 나나를 맡겠다고 응답했던 것 같고이번 여행은 어느 곳이 나나와 가장 잘 맞는지를 직접 찾아가서 선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영화의 주요 에피소드는 그렇게 사토루와 찾아간 친구들과 있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즉 회상씬이다갑작스러운 부모님의 죽음이모에 의한 입양어린 시절 키우게 된 고양이의 죽음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의 미묘한 삼각관계(?) 등등.


아무튼 그럼 왜 사토루는 자신의 고양이를 친구들에게 맡기려고 했던 걸까영화가 진행되는 사이 드문드문 그 이유가 드러난다발작성 통증과 약을 챙겨 먹는 모습그는 죽어가고 있었고자신의 고양이를 믿는 사람에게 맡기고자 했던 것.





고양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포인트는 역시 고양이다주인공 사토루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나나는 단모종에 검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져 있는 털색을 갖고 있다동물이 주인공인 이런 종류의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고양이가 대본에 따라 잘 움직여주느냐인데우리 나나는 썩 괜찮은 연기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에 조금 더 스토리를 부여할 생각이었는지감독은 나나에게 내레이션 목소리를 입히기로 결정한다나나가 등장할 때마다 삽입되는 고양이의 대사 부분은 귀엽기도 하고사람과는 좀 다른 시각과 상황 판단을 가진 것으로 상정되니 극의 전개에 재미도 준다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한 마리의 고양이와 개도 마찬가지로 대사 처리를 해두어서 은근 동물 영화로 갔어도 괜찮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잠시 들고.


영화 초반부 나나의 첫 대사 속 인용된 소세키의 유명한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처럼영화 속에서 고양이는 주요 소재이긴 하지만 역시나 주된 이야기는 주인공의 삶에 맞춰져 있다젊은 나이에 서서히 죽어가는 주인공에 관한 서사는나나에게는 부여되지 않는다하긴 뭐 길고양이 출신이었으니 그 출생부터 추적하는 건 무리고고양이에게 어느 정도의 이해력을 부여하느냐는 애매한 문제이긴 하다.





행복한 죽음.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조금씩 쇠약해져 가는 모습이지만종반부에 이르면 주인공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된다아마도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해서 마지막 날들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은데영화 속에서 결혼도 하지 않은 채로 조카를 입양해 길렀던 이모는 그런 사토루가 나나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준다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고양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건 조금은 행복한 일이지 않을까.


물론 단지 고양이만은 아니다주인공이 세상을 떠난 지 한 해가 지난 후그가 고양이를 맡기려고 했던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그런데 그 분위기가 그리 심각하거나 어둡지 않고모두 떠난 사람을 추억하며 놀리기도 하고 즐거운 대화를 남긴다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난 자신에 관해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 또한 썩 괜찮은 결말일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나나를 맡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 아니었을까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슬픈 일 중 하나가 동물의 이른 죽음이다대개 사람보다 수명이 짧은 동물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하지만 영화 속 사토루는 나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동물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사람과 다르다면그래서 조금 덜 감상적이고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그리고 남겨진 동물이 충분히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이런 순서도 조금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사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배우들의 연기력이 대단하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뭐 이런 영화는 고양이를 보는 맛으로 보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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