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


벌거벗은 채로 침대에서 깨어난 주인공 카터(주원). 그를 위협하는 적들과 귓속에서 들려오는 지시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지시를 따라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수많은 적들을 처리하는 장면이 한참 동안 공간을 바꿔가며 이어진다.


영화의 설정 상 주인공은 머릿속에 어떤 기계장치가 삽입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을 하지 못한다덕분에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는 긴장감이 만들어지긴 하는데문제는 영화를 보는 사람 역시 (별다른 설명이 없으니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할 수 없이 주인공과 함께 뛰고구르고적들을 공격하는데액션 그 자체를 즐기라는 건지는 모르겠으나조금은 불친절하게 느껴진달까놀이공원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빙글거리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누군가 내가 앉은 의자를 그냥 사정없이 흔드는 건 다른 경험이니까.




영화인가 게임인가.


정신없이 이리저리 도망을 다니면서 벌이는 결투씬은 마치 1인칭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보는 느낌이었다카메라는 계속해서 사정없이 흔들리거나이리저리 휙휙 돌아가지는 않나중력을 거부하는 액션신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별다른 설명 없이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적들은 연속해서 웨이브가 이어지는 디펜스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요새 나오는 좋은 어드벤처 게임 같은 경우는 게임성만이 아니라 탄탄한 스토리까지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잘 만들어진 게임은 마치 영화 같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데이것처럼 마치 게임 같은 영화라는 말은 칭찬일까 뭘까.


주인공이 뛰어다니는 이유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어렴풋이 알 것 같긴 한데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여기에 악역으로 등장하는 북한 쿠데타 세력의 지도자인 김종혁(이성재)의 캐릭터는 1차원적인 단순한 판단력과 다짜고짜 달려드는 다혈질적 성격심지어 직접 헬리콥터까지 타고 미사일을 날려대는 비전략적 사고까지.... 게임 속 등장하는 무식한 보스와 어쩜 그리 비슷한지.





대사는 왜 그래.


이게 넷플릭스에서 상영하려고 만든 영화여서 그런 걸까영화의 대사가 상당수 영어다뭐 세계 시장을 보고 만든 영화라면 그 자체가 문제될 건 없다다만 한국어 대사까지 이렇게 어색하게 갈 필요는 없지 않나. (영화의 중반부 이후가 북한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임에도북한군의 말투는 전혀 북한스럽지 않고주인공의 아내이자 머릿속 음성은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으나기계음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색한 대사들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느라 뚝뚝 끊어지는 흐름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배경설명까지...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했던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었다물론 기존의 우리 영화에서 익숙하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의 새로운 액션이 살짝 눈에 띠지만내 경우엔 좀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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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 - C. S. 루이스와 필립 얀시의
김병제 지음 / 서로사랑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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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부터 C. S. 루이스라는 이름이 들어 있는 책이었다출판사도 처음 보고저자의 이름도 눈에 익지 않았지만주저할 이유가 없었다절판되면 큰일이니까루이스 애호가로서오히려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에서나온 지도 오래된 책들은 금세 절판될 가능성이 높은 레어템이기도 하다.


사실 책 표지에는 C. S. 루이스와 함께 또 한 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필립 얀시다그리 많은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어떤 느낌의 글을 쓰는지는 익히 알려져 있는 작가다책은 이 두 사람의 글을 상당히 많이 인용하면서(그래도 루이스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관해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 여기까지는 좋은 시도다루이스와 얀시 사이에는 분명한 논리 전개 방식의 차이도 있고하지만 또 상반되는 저자들은 아니기에 이 둘을 잘 설명하고 요약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점수를 줄 수 있다실제로 저자는 몇몇 주요 작품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그 글에 담긴 의미를 다양한 개인적인 비유까지 사용하면서 잘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책이 좀처럼 읽히지가 않는다내가 좋아하는 루이스에 관한루이스의 말과 글이 잔뜩 등장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왜 그랬을까곰곰이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책의 구성 문제다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고각각 세상과 신앙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따라 구분되는 것 같다그런데 막상 읽다 보면 앞에서 나왔던 얘기가 뒤에서 또 발견되고 하는 경우가 잦다고통이라는 주제는 세상을 이해하는 키워드이기도 하지만신앙을 설명하는 데도 빼놓을 수 없지 않은가결과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게 단지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무슨 말이냐면저자 소개를 보면 여러 교회에서 C. S. 루이스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어쩌면 이 책은 그렇게 여러 번의 강의안을 모아서 엮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각각의 강의에서는 새롭게 언급되는 주제지만이렇게 하나의 책으로 묶어버리면 반복의 반복이 되는 셈이렇게 묶을 것이라면 과감하게 글을 덜어내고 좀 더 깔끔하게 구성하는 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역설적으로 저자의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 때문인 것 같다책 서문이나 추천사에 언급되어 있듯저자는 루이스의 글을 알기 쉽게 설명하겠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이는데물론 그 작업을 열심히 잘 해냈다그런데 루이스의 글에 익숙하고 그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이렇게 글을 풀어놓음으로써 루이스 특유의 논리구성이나여운이 있는 표현들이 오히려 가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루이스의 주요한 책들, “순전한 기독교와 고통의 문제”, 그리고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자주 인용된다이 외에도 파스칼이나 다른 저자들의 글도 종종 눈에 띄고그러고 보면 루이스의 사상을 설명한다기보다는 자신이 설명하려는 주제를 위해 루이스의 글을 자주 인용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분명 책의 내용도루이스에 관한 해석과 설명도 나쁘지 않은데 잘 안 읽히는 경험.. 이것저것 많이 말하는 것보다 핵심을 정확하게 집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결과적으로 초신자에게 권하기엔 너무 두꺼운 책이 되었고루이스의 팬에게 추천하기엔 루이스의 느낌이 옅어진 책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역시 책을 읽다보면루이스의 책들을 다시 한 번 펴봐야겠다는 생각이 잔뜩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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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언제나 지나간 이야기를 한다. 비록 그 주제가 오늘을 다루거나, 미래를 에측하는 것이라도 해도, 그 근거는 늘 과거의 어딘가에 맞닿아 있다.


그 때문일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앞으로 일어날 일보다는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곱씹으며 살아간다. 


문제는 이렇게 지난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언제나 후회할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는 점이다. 그 때 이렇게 했더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그렇게 머리가 복잡해지면, 어지러진 바닥을 쓸어내듯 생각을 한 쪽으로 밀어내고는 다시 새로운 책을 손에 든다. 뭐 별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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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베들의 시대 - ‘혐오의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김학준 지음 / 오월의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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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통령실에 채용된 여당의 청년대변인의 일베 전력이 밝혀져 꽤나 애를 먹고 있는 것 같다나름 고민해서 낸 해명이라는 게, “가족들 사이에 아이디를 돌려쓰고 있다”, “동생이 몇 개 이상한 글을 쓴 것 같다(나는 아니다)”였는데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옹색하고 졸렬하다.


누가 들어도 어이없는 이런 변명이라도 둘러대야 할 정도로우리 사회에서 일베 전력은 부끄럽거나감춰야 하는 행적이다그 사이트의 게시물에 등장하는 배설하는 온갖 패륜혐오임의로 편집해 만든 거짓과 조롱은 사이트 이용자들의 인격과 사회성을 의심하게 만든 지 오래되었으니까.


이 책은 그런 일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담고 있다확실히 제목이 중요한 게이런 제목이 붙어 있으면 한 번쯤 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게다가 뒤늦게야 확인한 표지도 압권이다흑백으로 그려진 평범한 거리 풍경 속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렸는데그 중 일부의 머리 부분이 파란색의 바이러스나 뭔가 폭발하거나 흘러내리는 기괴한 모양을 띄고 있다차도 쪽으로 흘러나온 파란색 유동성 물질은 차가 지나가면서 인도 쪽으로 튀기도 하고다시 보니 꽤나 공을 들였다

.


책 제목과 함께 이 표지 그림은 이 책의 내용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일베는 보통 사람들’ 중 섞여 있으며그들이 튀긴 일베스러움은 주변 사람들에게 오염을 일으킨다는 것.





기본적으로 저자의 논문을 바탕으로 엮어낸 책답게사회학 연구의 기본과정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석사논문도 이 정도는 써야 통과가 되는 법이다우선은 일베가 나오기까지의 한국사회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의 발전사를 훑는다.


기본적으로 유머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인정과 주목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배경으로 한 몇 개의 사이트들이 발전분화의 과정을 거쳐 일베에 이르게 되었다이 과정에서 일베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를사회적으로는 팩트중심주의와 참여주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표현의 자유도 중요한 요소고.


이어서 메타 데이터 분석 방식을 사용해일베에 올려진(그리고 연구 당시까지 남아있던모든 게시물들을 분류해그 사이트가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키워드를 뽑아내고이를 통해 일베 이용자들의 지배적인 정서를 추적하는 과정과직접 일베 이용자들을 만나서 진행한 인터뷰와 그 분석이 더해진다.






이런 예비적 연구를 통해 저자는 일베의 성격을 규정하려고 시도한다그들은 우리가 흔히 일베 하면 떠올리는 과격한 극우집단이라기 보다는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자신들이 바라는 (이전 시대에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던안정적 가정을 얻을 수 없게 된 상황에 좌절해 자조감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이라는 것.


요컨대 일베혹은 일베 현상이란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불안정해진 오늘날의 사회 상황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말로 들인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배설하는 온갖 텍스트의 쓰레기들까지 온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겠지만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않은 채 그저 욕만 한다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테니까.


다만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이 일베화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이런 분석이 가지는 한계도 분명 존재하지 않나 싶다. 20대 남성이 주류라고는 하지만 이미 10대 청소년들의 보수화또는 일베화도 상당부분 진행되었다는 조사도 있는데이들 또한 비슷한 프레임으로 분석이 가능한 것일까, 10년 전 20대였던 지금의 30대와 그 이상들은 일베와 완전히 분리할 수 있을까?



최근 우리는 이준석이라는 일베의 현신을 마주하고 있다말과 글이 육신을 입는 일종의 성육신의 일베 버전이다헌정 사상 처음이니 뭐니 하는 과장된 수식어를 동원해 가며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지만그런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느꼈다.


물론 극단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람이나 집단은 언제든 쉽게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이긴 했지만이준석이 비판하며 싸우는 대상 중 하나인 기존의 보수세력은 그래도 최소한 눈치는 보고염치는 지키려는 시늉은 하지 않았던가수해 현장에 와서 사진 잘 나오게 비 좀 왔으면 좋겠다는 망언을 한 국회의원은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대국민 사과는 하지 않던가같은 상황이라면 이준석은 어떻게 했을까?


그랬던 그가 당에서 축출되는 상황에 몰리면서눈물을 짜며 억울하다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개인적으로는 그가 이전에 약자들을 향해 내뱉었던 말들이 자기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나 보다이런 쿨하지 못한 모습을 또 일베는 어떻게 보고 있을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하고.



일베에 관한 괜찮은 사회학 연구서주제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페이지가 적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 금세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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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지의 중국인 - 냉전 시대 서사에서 영토는 어떻게 상상되었는가 교차하는 아시아 6
류저우하우 지음, 권루시안 옮김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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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역사나 사회학적 연구라고 생각했으나저자는 문학연구자였다그리고 이 책 역시 몇 권의 문학작품을 제시하고 그 안에 담긴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는 형식이었다사실 문학이나 예술에 관한 연구는 워낙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고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선연구들도 잔뜩 있는지라 평소엔 손이 잘 가지 않는 분야다하지만 이렇게 실수(?)로 손에 들어왔다면 읽어볼 수밖에도서관에 다니다 보면 이렇게 우연한 만남도 일어난다.



책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룬다하나는 6.25 전쟁을 배경으로 쓴 두 권의 소설을 중심으로한중 국경지대인 만주와 그 일부인 간도 지역에 살았던 한국인들의 모호한 신분과 중국의 참전으로 한반도로 들어왔다가 거제의 포로수용소에 머물렀던 인민해방군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또 다른 하나는 1950~60년대 말라카 반도에 정착한 중국인들이 겪었던 문제다이 지역에 이주한 중국인들은 영국 식민정부에 의한 노동력 동원 차원에서 유입된 이들이었는데영국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토지소유권을 허락하지 않았고후에는 공산당과 연합할 것을 우려해 인위적으로 만든 집단 정착촌에 강제이주 조치를 하기도 한다이 주제는 웡윤와라는 시인의 시집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책의 제목에도 언급된 경계선에 선 존재들이다간도의 조선 농민들과 거제의 중국인 포로말라카 반도의 중국인 이주자들은 모두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채임의적이고 잠재적인 구성원 취급을 받고 있었다당연히 그 과정에서 겪었던 차별과 각종 탄압희생은 뭐라 말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하지만 국가의 힘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주제만 보면 꽤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아쉽게도 책은 그런 현장감이나 긴박감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다우선 문장 지나치게 난해하고학술적인 표현과 개념을 잔뜩 사용하고 있어서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문외한의 슬픔번역 과정에서 이를 좀 풀어서 설명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지만뭐 그렇게는 안 됐다.


책의 부제에 따르면 냉전 시대 서사’ 속에서 땅이 가지는 상징성’ 등등을 언급하려고 했던 듯하나개인적으로는 썩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달까물론 문학을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 자체는 흥미롭게 느껴졌지만애초에 언급되는 작품들을 직접 접해보지도다양한 문학 학술 용어들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내 경우엔 무리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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