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흥운동의 직접적인 결과는
자급, 자전, 자치하는 복음주의 한국 개신교회의 형성이었고,
그 장기적인 결과는
한국 개신교회가 일제 식민지 기간의 핍박과 난관을 충분히 인내할 수 있는
영적인 힘과 거룩한 기억을 제공받은 것이었다.
- 옥성득, 『한국 기독교 형성사』 중에서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능력은 당연히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이 사람들이 내게 백인 노동 계층의 어떤 점을
가장 변화시키고 싶으냐고 물을 때마다,
내가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이라고 대답하는 까닭이다.
- J. D. 밴스, 『힐빌리의 노래』 중에서
더숲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내고 있는 고대 역사 세 번째 책은 히타이트 제국에 관한 내용이다(참고로 첫 책은 바빌론이었고, 두 번째는 동로마였다). 개인적으로는 바빌론의 역사에 꽤 감동을 받아서 이 시리즈는 나올 때마다 하나씩 구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역시 첫 책이 중요하다.
바빌론의 역사 때도 그랬지만, 고대 근동의 역사에 관한 책은 사실 그리 많이 나와 있지도 않고, 그래서 자세한 내용을 알기가 쉽지 않다. 물론 요새는 어지간한 내용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 손에 잡히긴 하지만(어차피 그 내용도 다 어딘가의 책이나 논문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래도 이렇게 책으로 잘 엮어서 나오면 소장하는 느낌이 또 다르다.
이번에 다루고 있는 히타이트의 역사 역시 비슷하다. 바빌론이나 아시리아에 비해 잘 알려지지도 않은데다가, 어지간히 고대사에 관심이 있지 않으면 이름도 모를 게 당연한 그런 이야기. 이렇게 정리를 해 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장부터 6장까지는 히타이트가 어떻게 시작되고 멸망했는지의 과정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리해 두었다. 그런데 워낙 기록으로 남은 내용이 적은 쪽의 역사라 이렇게만 쓰고 나면 책이 너무 얇아져 버린다. 그래서인지 7장부터 13장까지는 본편의 역사보다는 다양한 히타이트의 문화적 측면들에 관한 연구 성과를 간략하게 정리해 두었다. 법과 군사, 종교, 도시 건축과 일상생활 같은. 물론 이런 내용들 역시 남아있는 기록 자체가 적기 때문에 아주 자세한 학술적 연구물이라기보다는,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추정해 나가는 스케치 정도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도 9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사람들이 히타이트라는 이름을 좀 아는 이유는 (거의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제국이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그런데 직접 히타이트 유적 발굴 현장에서 일하기도 했던 저자는, 남아있는 유물의 양과 질로 볼 때, 고대 히타이트가 특별히 철기 문명을 앞서서 세웠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당시의 철기는 일종의 장식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히타이트는 사실 청동기 제국이었다는 것. 흥미로운 설명이다.
또 하나 관심이 있었던 부분은 성경에 나오는 헷 사람들과의 연관성 부분인데, 이쪽은 성경 기록 이외의 다른 문서 자료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학문적 입장에서 저자는 히타이트와 “헷 사람”의 연결 가능성을 좀 낮게 보는 느낌이다. 물론 그게 관련이 없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고, 연결지을 수 있는 다른 자료가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
구약성경에서는 이들 헷사람을 가나안 종족 중 하나로 묘사하는데,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야가 바로 이 헷 사람이었다. 연대상 다윗 왕국이 BC 11세기 말에 해당하고,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한 것이 BC 1200년 경이었으니, 멸망 후 여러 갈래로 흩어진 히타이트의 일족이 가나안 쪽으로 남하해 살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수많은 히타이트의 왕들과 도시들의 이름들이 잔뜩 나온다. 우리와 전혀 다른 지역의 역사를 접할 때 조금 어렵게 느껴지도록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전쟁과 정복 이야기를 집중하다 보면 마치 영화를 보거나 놀이공원의 어트랙션을 타고 쭉 지나가는 것처럼 신이 난다(물론 모든 사람에게 이런 식의 반응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다음 책은 또 어디를 비출까?
덧. 이런 책의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것이 부럽다. 역사, 인문학 분야에서 은근 일본 저자들의 책들이 자주 보이는데, 그들의 저력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본격적으로 독서모임 운영에 사용하고 있는 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희가 하는 게 정답은 당연히 아니지만,
독서모임 운영하시는 데 작은 도움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더불어 구름책방과 북서번트의 독서모임의 지향점이 어떤 건지 아실 수 있는 영상!
주일인 오늘 전국의, 아니 전 세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해진 자리에서 예배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슬픈 예상이지만) 아마도 그중 상당수는 큰 감흥 없이 (하지만 나름의 정성을 다해) 예배 시간에 참석했을 것이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한 때는 예배에 관한 어떤 종류의 기대감 비슷한 것을 가졌었을 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그런 기대를 접은 상태일 것이다.
그들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그들이 수십, 수백 번 참여했던 예배에서 가끔씩 느껴지는 감정적 고양 이외의 다른 것들이 느껴지지 않은지 너무 오래된 것뿐이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예배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게 된 (어쩌면 처음부터 배우지 못한) 것뿐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이 작은 책은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만나고, 경험해야 하는 네 가지의 단순하면서도 시원적인 주제들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건 경외와 기쁨, 진실함과 희망이다. 저자는 우리가 예배할 때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이미 예배에 관한 중요한 감을 잊어버린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각각의 주제들에 관해 짧지만 좀 더 깊은 분석을 담고 있다. 문장들이 마치 로완 윌리엄스의 글을 읽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들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것이 진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하는 식이다.
우리의 예배에서 경외가, 기쁨이, 진실함과 희망이 사라진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이 책을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며 되새겨 볼만하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 보다는 그저 예배의 구성에 더 신경을 쓰고 있고, 기쁨보다는 의무감과 피곤함이 먼저라면, 남들 앞에서 나를 가리기에 급급한 시간이라면, 하늘의 소망보다 그저 한 주의 안도감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 예배가 정말로 이렇게 초라해져있다면, 서둘러 책장을 넘겨보자. 분명 좋은 처방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나 그래서 이런 것들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한가 하는 구체적인 사례들과 지침들일 텐데, 생각해 보면 애초에 다양한 전통과 형식을 가진 수많은 그리스도교 전통들 가운데서 어느 한 가지 방식이 공통적으로 유효할 리 없다. 중요한 건 바른 방향을 기억하고 그곳을 향해 나가가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