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책은 우울증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유명한 청교도 저술가인 리처드 백스터는 자신이 목회자로 사역하면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증상이 사람을 어떻게 말라죽게 만드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 증상을 개선시킬 수 있을 지에 관해 두 개의 글에 담았다(3장, 4장).
다만 책의 구성은 바로 백스터의 글을 소개하는 대신, 우선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의 글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를 소개하는 두 개의 장이 먼저 나온다. 이 부분은 역시 잘 알려진 신학자인 제임스 패커와 의학박사인 마이클 런디가 맡았다. 패커의 글은 주로 신학적인 차원에서 백스터를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런디의 글은 백스터의 글을 의학적으로 보충하고 몇몇 부분에 관한 주의사항을 제시한다(백스터의 시대에는 아무래도 진단의학 분야에서 오늘날보다 원시적이었기에 4체액설 같은 오래된 설명이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백스터는 목회자였다. 때문에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처방 역시 기본적으로는 목회적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맡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저자이기에, 그들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우울증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제대로 처치되지 않았을 때 어떤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여느 임상의들 못지않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책은 기독교인을 그 독자로 상정하고 있다. 때문에 분석과 처방에도 모두 성경적 기초에 따른 신학적 조언이 깊이 배어있다. 하지만 흔히 “청교도”하면 떠올리는 꽉 막힌 설명은 아니다. 우선은 우울증이 나타나는 이유를 다양하게 찾고 있는데, 신앙적인 문제에서부터 경제적인 문제, 사회적인 요인들까지 두루 고려된다. 자연히 그 처방 역시도 각각의 문제마다 다르다. 무작정 기도하면 된다는 식이 아니라는 것.
개중 가장 인상적인 조언 중 하나는 “절대 불필요하게 혼자 있지 말고, 가능하다면 정직하고 쾌활한 동료들과 함께하라”라는 부분이다. 현대의 우울증 처방 가운데도 나오는 이야기다. 우울증 개선에는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말. 문제는 정직하고 쾌활한, 그러면서도 우울에 빠져 있는 사람 곁에 있어 줄 인내심과 애정을 소유한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겠지만.
현대의 우울증의 이해는 다분히 신체(의 일부인 뇌 부위)에 국한되는 문제인 것처럼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기계적으로 이해하는 유물론적 세계관 위에서 형성된 현대의학이기 그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러나 백스터의 이해는 좀 다르다. 특별히 신자들에게 있어서 우울증세는 (그 원인이 물질적인 부분에 있는 게 아닌 경우) 신앙의 힘, 정확히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책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무 이지적인 차원에서의 처방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백스터는 모든 우울증에 이런 방식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약물치료에 저항하며 “단지” 마음의 문제일 뿐이라는 식으로 치부하는 걸 경계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분명 이건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살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신뢰가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백스터의 조언은 매우 실천적으로 와 닿는 면이 많을 것이다. 특히 우울증에 걸린 영적 심리상태에 관한 묘사는 정말 탁월하다.
예술의 기능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독하게 실용적이고 편협한 현실세계의 시각이 배제하는 것을
제시해 주는 것이지요.
- C. S. 루이스, 『이야기에 관하여』 중에서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일단 그 웅장한 위용에 손을 뻗었다. 거의 8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꺼운 책들이 도서관에 꽂혀 있는 걸 보면, 이런 책들은 누가 가져가서 보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여기에는 “한국 괴물 백과”라는 흥미로운 제목이 붙어있으니 조금은 다를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물론 책 내부는 아주 깨끗하긴 했다.
책 뒤에 실린 출처 이하를 빼면 본문은 750페이지 가량 되긴 하는데, 각 항목마다 한 페이지는 일러스트가 실려 있어서 글 부분만 보면 그 절반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각 항목에 실린 소개글이 한 페이지를 다 채우지 않기도 해서 생각만큼 그리 읽을 내용이 많은 책은 아니다. 한 300페이지 전후의 보통의 단행본 정도랄까.
책은 소설가인 작가가 글쓰기를 위해 한국의 고문헌에 나오는 다양한 괴물들에 관한 내용을 블로그에 모으면서 시작되었다. 아마 처음에는 이 정도까지 모을 생각은 없었을 듯한데, 확실히 좋은 작품은 충분한 자료조사로부터 시작되는 법인지 꽤나 본격적으로 자료를 수집했고, 그 결과 이렇게 책까지 엮어 나오게 되었다.
책의 매 항목마다 독특한 느낌의 일러스트가 실려 있어서 보는 맛이 있다. 그림작가의 공 또한 이 책의 완성도를 분명 높여주는 요소다. 검은색과 밝은 형광 녹색으로만 그린 이미지들인데 이게 또 나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만 각 요괴의 이름까지도 밝은 녹색으로 적어두었는데, 이게 좀처럼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피로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다양한 요괴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나 싶다. 적지 않은 이야기들이 중국이나 심지어 멀리 인도에서 건너온 것들의 현지화 버전이기도 했지만, 또 자신이(혹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직접 경험했다는 식의 괴담도 적지 않다. 물론 저자도 종종 언급하듯, 대개는 착각이나 상상의 산물이긴 했겠지만, 일부는 실제 존재하던 어떤 것에 과장된 표현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들을 잘 가공만 한다면 흥미로운 한국형 환타지들을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 싶다.
일부는 이미 영화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몇 년 전 나왔던 “물괴”라는 영화는 중종 시기 실제로 퍼졌던 소문을 바탕으로 창작한 작품이었다. 흥미로운 항목들로는 구렁이 모양으로 집안의 재물 운을 관장한다는 업신, 마치 좀비를 떠올리게 하는, 되살아난 시체를 가리키는 “재차의”(혹은 흑수), 인어와 꼭 같은 모습의 눈처럼 흰 피부를 가진 “비유설백” 같은 요소들은 현대적으로 충분히 멋지게 각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외에도 요괴는 아니지만, 그것이 담긴 책들을 소개하면서 다양한 역사적 정보들도 얻을 수 있는데, 북방 이민족들이 조선인들을 “대두인”이라고 불렀다는 설명이 재미있었다. 우리민족은 대대로 머리가 컸었나 보다.
심심할 때 가볍게 넘겨보기에 괜찮은 책이다. 혹 창작자들이라면 이 책에 실린 항목들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건질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