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성경, 한 손에 비즈니스
윌리엄 더글러스.루벤스 테이세이라 지음, 곽수광 옮김 / 차선책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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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크리스천 창업가들과 교제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늘어나면서, 경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다. 기독교 신앙을 배경으로 하는 특성일 수도 있지만, 좋은 경영을 위해서 필요한 자질들 가운데는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주요 덕목들과 겹치는 부분도 많다는 걸 깨달았다. 단기적으로 수익을 높이는 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인 맥락에서는 약탈적 관행으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 책은 아예 이 부분에 좀 더 집중을 한다. 제목부터가 성경과 비즈니스를 양손에 쥔 사람을 떠올리게 만들지 않던가. 저자들은 본문 내내 성경구절들을 쉴 새 없이 언급하면서 비즈니스에 필요한 자질들에 관해 말한다. 아, 그리고 저자들부터가 조금은 새로운데, 브라질의 연방 판사와 브라질 중앙은행의 애널리스트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브라질 출신 작가의 책은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 이외에 처음인 듯.





일반 경영학 이론에 기독교 신앙을 더했다고 해서 그 수준이 떨어진다거나 실용성이 부작하다는 오해는 버리자. 대충 좋은 이야기를 써 놓은 책이 아니다. 오히려 앞서도 언급했듯, 유명한 경영이론에 관한 책들이 은근 성경에서 차용해 온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목표와 의미, 그리고 선한 덕목들을 강조하기도 하니까. 단순히 마키아벨리즘에 입각한 차가운 판단만이 이 바닥에서 유효한 것은 아니다.


특히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성경은 잠언인데, 이 부분은 제대로 된 공략인 것 같다. 다른 성경들과 달리 잠언이야말로 우리의 실생활에 좀 더 직접적인 격언들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니까. 이 부분을 제대로 정리해서 책으로 엮어도 좋은 기획이겠다 싶은.


다만 이 같은 방식이 잠언 이외의 성경 구절에 적용될 때는 살짝 무리한 느낌도 든다. 잠언이 말하는 대상이야 말 그대로 시장에서 사용되는 지혜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다른 본문들의 경우는 좀 다를 수도 있기 때문. 예를 들면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은사의 사용에 관한 독특한 조언을 담은 비유이지, 우리가 가진 돈을 어떻게 불려야 하는지에 관한 재무적 조언을 하는 게 아니다.


특히 복음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예시들은 그대로 따라하라는 의미가 아닌 경우가 많다. 값진 진주가 묻힌 땅을 사기 위해 자기 재산을 다 팔아야 하는 것도, 추수 때가 되기 전에 가라지를 뽑지 말라는 것도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는 아니다. 그런 식으로 운영을 하는 건 명백히 큰 위험을 사는 일이니까.





책 전반에 담긴 경영적 조언들, 나아가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다양한 자질들에 관한 교훈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일에 기독교 신앙을 드러내지 말라는 세속적 조언보다는, 우리가 가진 신앙을 좀 더 제대로 드러내자는 이런 움직임이 더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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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어린 소년들이 그랬듯이

나도 시대를 앞서가려고 노력했고,

진리보다 십 분가량 앞서 가려고 애썼다.

그리고는 내가 그보다 1800년이나 뒤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G. K. 체스터턴, 『정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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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과학의 화해 - 급진적 종교 개혁파의 관점에서 본
낸시 머피 지음, 김기현.반성수 옮김 / 죠이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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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과학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충돌, 혹은 최소한 갈등과 긴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사골 우려먹듯 꺼내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갈릴레이의 재판인데, 잘 각색된 대중판에 의하면 이 재판은 이성적 사고보다 맹목적 믿음만을 강조하던 권위적이고 전제적인 교회 당국에 의해 오직 진리가 무엇인지를 합리적 사고와 관찰로 추구하던 한 과학자가 입틀막 당한 사건이다. 그러나 마침내 시대는 변했고, 이제 억압받던 과학자들이 마음껏 종교를 무시할 수 있는 날이 왔다는 것이 이 동화의 결말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갈릴레이의 재판에 관한 대중적 각색에는 그 재판이 당대의 과학적 패러다임 사이의 충돌이라는 점이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다. 천동설과 지동설은 그냥 망원경으로 하늘을 쳐다보면 뚝 떨어지는 이론이 아니었고, 두 이론 모두 관측된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 충분히 기능을 하고 있었다. 이 논쟁은 하나의 과학 이론과 다른 이론 사이의 충돌이었고, 당시 교회는 그런 종류의 과학을 연구하는 기관이기도 했다.(당장 천문학자들 중에 성직자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이런 식의 대립적 구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새로운 싸움은 이전과는 좀 다른 양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지만, 이번에는 교회 내 이른바 근본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도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성경에 대한 문자적인 이해만을 고수하는 이들은 최근의 과학적 성과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면서 성경을 과학책으로 만들고 있다. 이번엔 정말로 과학과 신학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물론 그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이 책은 이 두 분야의 갈등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간다.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후에 신학도 공부한 저자는 이 주제에 관해 의미 있는 말을 할 위치에 있어 보인다. 현대 저자는 종교개혁 급진파라고도 불리는, 재세례파 전통의 기독교 공동체 안에 몸을 담고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신학과 과학의 형식적 유사성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른바 “과학으로서의 신학”을 주장한다. 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가설을 세우고 연역적 추론을 사용해 이론을 정립해 나간다. 둘 모두 데이터가 필요하고, 이 경우 신학의 데이터는 성경과 그 해석사, 그리고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의 삶이 주된 데이터다. 과학 역시 흔히 생각하는 ‘객관적 진리’를 도출하는 단순과정이 아니라는 점 또한 이제는 많이 알려져 있는 바와 같다. 오늘날의 과학이론은 증명이 아니라 확증을 추구한다.


그럼 과학과 신학은 어떤 형태로 서로 관계를 맺을까? 이 부분 또한 인상적인데, 저자는 과학의 제 분야들의 계층 모델을 제시하면서, 하나의 계층에 속한 과학은 그 상위 계층의 설명을 필요로 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이 계층 모델의 가장 기저에 있는 물리학은 그 상위의 화학적 설명으로 해석되는 면이 있고, 다시 화학은 생물학적 설명이 필요하다. 저자는 여기에서 최상위에 신학의 자리를 마련한다. 우주론과 사회과학적 연구를 설명하는 데 신학적 이해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 모델에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뿐 아니라, 심리학과 사회학, 윤리학 같은 사회과학 영역까지 통합되어 있는 점이 독특하다. 서로 다른 학문 분야 사이의 통섭적 연구가 각광을 받고 있는 현재 딱 맞는 설명인 것 같기도 하고. 저자는 자신의 이런 모델이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우주의 미세조정이나 영혼, 진화론 등의 주제를 가지고 입증하고자 시도한다.




사실 서로 다른 분야를 통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양측의 장점만을 취하는 게 쉬울 것 같지만, 결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고,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결과물일 수도 있다. 이번 경우 저자의 입장은 전반적으로 과학의 설명에 대한 신학적 해설이라는 느낌이다.(당연히 이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과학과 신학이 하나의 계층적 모델을 이루고 있다는 저자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고, 같은 대상에 대한 각자의 입장에서의 설명이라고 보면 그리 무리한 입장은 아니다.


과학의 일원론적 견해와의 유사성(조화)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재세례파의 영육일원론을 대안 중 하나로 제시하는 것도 어느 정도나 설득력을 가질까 하는 의문은 든다. 물질 말고 아무 것도 없다는 주장과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은 외적으로는 유사하지만 그 함의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대화, 그리고 조화를 위한 노력은 분명 가치가 있는 일이다. 신학과 과학의 통합적 이해 역시 분명 의미가 있어 보이고.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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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에 대한 강조는 우리가 ‘창문과 거울’이라고 부르기로 한

패턴의 일부인 것으로 밝혀진다.

단계5의 리더들은 일이 잘 풀릴 때에는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자기 자신 외의 요인들에 찬사를 돌린다

(그리고 찬사를 돌릴 특별한 사람이나 사건을 찾을 수 없을 경우에는 행운 탓으로 돌린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결코 운이 나쁜 걸 탓하지 않는다.


- 짐 콜린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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