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복했던 교회로 가주세요
이숙경 지음 / 엠오디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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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7월 한 달 동안 씩씩하게 신앙생활을 했던 한 소설가의 일기다. 작가가 소설가이긴 하지만, 여기에 실린 일기는 진짜 작가 자신의 일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바, 이 이야기는 가공의 인물이 아닌 소설가 자신을 주인공을 하는 실제 이야기다.


제기역 1번 출구 앞에 실제로 있는 한 교회의 오랜 교인인 작가는, 그 해 여름 정말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하루에 두 번씩 교회를 오고가는 날도 일주일에 며칠은 되었고, 그 중 몇 번은 은근히 또는 대놓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남편과 아들을 두고 나와야 하는 저녁 시간이었다.


이렇게 시작하면 또 엄청나게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재미있게도 그해 7월 작가는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술자리를 갖고,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 문다. 물론 주초문제가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만 특별히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만 작가 자신도 흡연 후에는 가글을 한 후에야 교회에 가는 걸 보면 나름 의식은 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함께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그걸 눈치 채지 못하겠는가. 교회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소설가니까, 예술 하는 사람이니 하면서 적당히 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작가의 신앙생활이 위태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제목이 왠지 좋았던 예전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래서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인 것 같다는 느낌을 들게 만들지만, 이 제목도 어느 시집의 한 구절에서 떠온 것이라고 한다. 그 시절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의미 정도로 보면 될까. 책 말미에 붙어 있는 일종의 후기에는, 지금은 담배도 진작 끊고, 술도 상당히 줄였다고 한다.(몇 년 전 항암치료를 했다고도..)


책에는 자주 “실패한 한 달의 기록”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주된 이유는 역시 술과 담배인가 보다. 물론 그게 아무런 문제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작가에게 그게 큰 문제였고, 해결하고자 하나님과 함께 씨름했다면 그건 그에게는 큰 문제일 테니까. 사실 작가의 성격으로 보아 다른 무엇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갔을 것 같지만.


사실 이야기 전체에 무슨 특별하거나 대단한 사건이 나오지는 않는다. 월초엔 잘 써지지 않는 소설을 붙들고 씨름하다가, 교회에서 맡긴 100주년사의 원고를 받아 놓기도 하고(월말에 가서야 프린트를 한다) 그 사이 수많은 모임들과 만남을 하면서 보냈던 소소한 하루하루의 이야기다. 그 와중에 거의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말씀묵상을 하는 건 또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우리의 삶이라는 게 그렇게 소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날들의 연속이 아닐까.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그런 평범한 장소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주 무대다. 교회를 자주 나간다고 하더라도 먹고, 자고, 이야기 하고, 노는 시간이 훨씬 더 기니까 말이다. 결국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느냐가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말. 여기에 단 한 가지 표준적인 삶의 모습이 있을 리 없다. 조금은 덜컹거리더라도, 또 조금은 우왕좌왕 하더라도 제대로 된 목적지를 자주 확인하면서 한 걸음씩 나가면 되는 거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편안하게 읽힌다. 물론 신학적으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 작가의 어떤 생각들에 이의를 제기할 지도 모르겠지만, 신학자들이 할 일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짐을 지우는 게 아니라 복음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것을 알려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 나름의 이런 분투기가 또 어떤 이들에게는 좋은 위로와 도전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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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잘못을 바로잡거나 꾸짖지 않을 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정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남은 인생을 올바로 살아가도록 훌륭한 덕성을 길러 주기보다,

당장의 평화를 깨고 얼굴 찌푸리는 일이 생길까봐

주저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아야 합니다.


- 알렉스 켄드릭,스티븐 켄드릭, 『하나님의 부모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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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그려진 이야기 - 그리스인들의 별자리 신화
데이비드 W. 마셜 지음, 이종인 옮김 / 커넥팅(Connecting)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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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바라보며 별들에 주목해 본 게 언제일까. 연중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으로 가득한 도시의 밤하늘에서는 어지간히 밝은 별이 아니면 잘 보이지도 않긴 하지만, 오래 전 군 생활을 하던 강원도 화천에서 우연히 바라봤던 하늘은, 말 그대로 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마도 수천 년 전 시인들도 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온갖 이야기들을 떠올렸던 게 아닐까.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만들어냈던 다양한 신화적 이야기들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정리라고 해서 학술적인 느낌은 아니고, 그냥 이야기책처럼 48개 고전전적인 별자리 이름에 얽힌 고대 그리스인들의 상상을 나름의 기준에 따라 분류해 놓은 것이다.(이야기 속 연대 순을 따른 건 아니다)


책 곳곳에 적지 않은 수의 삽화들과 별자리만을 따로 떼어서 그려놓은 부분 등 친절하게 관련 내용을 익힐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별자리라는 별들을 늘어놓아도, 이게 왜 사자인지, 이게 왜 쌍둥이인지 잘 보이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해 놓으면 조금은 다르게 볼 여지가 생긴달까.


내용상 자연스럽게 그리스 신화의 내용이 주된 설명의 레퍼런스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참 읽다 보면 이게 별자리 책인지 그리스 신화 책인지 살짝 헷갈릴 정도. 내용도 그렇고, 구성도 그렇고 이런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나름 잘 짜인 별자리 이야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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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 10주년 확대개정판
쉐인 클레어본 지음, 배응준 옮김 / 아바서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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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 일명 바이블 벨트 지역에서 태어난 작가는 경건한 가정에서 태어나 예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학에 지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상한 자리에서만 드러나는 신앙이 아니라 더 낮은 자리에서 빛나는 신앙을 배운다.


대학 시절 가난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법을 배운 작가의 삶에 또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은 테레사 수녀가 운영하는 선교회에서 몇 달 간 머물며 사역에 참여한 경험이었다. 캘커타에서의 사역은 몇 개월 후 끝났지만, 이 경험은 이후 귀국해서 “심플웨이”라는 공동체 사역을 시작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심플웨이는 성경의 명령에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거대한 건물을 세우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닌 그들과 “한 패”가 되기로 선언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증오와 상대의 부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용어로 자신들이 하는 일을 표현하기로 노력하는 애쓴다. 이 책은 그런 심플웨이의 사역에 관한 요약적 일지다.





쉽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책장을 넘겨갈수록 보통을 넘어서는 묵직함이 전해져 오는 책이다. 십수 년 전 읽었던 데이비드 플랫의 “래디컬”이라는 책을 떠올리게도 하고. 실제로 이 책에도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보통은 “급진적”이라는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용어로 번역되는 단어지만, 사실 “래디컬”은 “근원적”이라는 의미(식물의 뿌리)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일각에서 자주 주장되는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외침은 래디컬한 사람들이 되자는 말과 같다. 2천 년 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순종하려고 애썼던 이들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지나치게 안전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면서, 가끔 행해지는 안전한 기부 정도로 만족하려고 한다. 누군가를 급진적이라고 하기에 앞서,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


책 전반에 걸쳐서 이런 의미에서의 급진적인 도전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는, 무엇보다 외치고 있는 그들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기에 더욱 힘이 실린다. 신학자들의 서재에서 나오는 깊은 통찰과는 조금 결이 다른, 날것이지만 역동적인 통찰이 읽는 내내 가슴을 뛰게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설교하셨던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의 설교에 갈채를 보내고 그 설교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에 누가 고개를 들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작가와 그 동료들의 이런 급진적인 실천과 순종이 (역사적으로 많은 급진적 운동이 그러했듯) 영적 엘리트주의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란다. 본인들이 아니라도, 그 주변에 있는 이들에 의해 숭배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런 삶만이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순종적 삶의 길이라는 식으로 강요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그런 종류의 전체주의는 수많은 새들이 깃든 큰 나무라는, 기독교가 가진 오래된 비전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가 급진적 순종을 누그러뜨리는 완충재가 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어려운 이야기겠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의 다른 여러 분야에서 그러하듯, 우리에게는 절묘한 균형과 임기응변적 적응능력이 필요하다. C. S. 루이스를 비롯한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조언하듯, 신앙의 삶이란 즉흥댄스와 비슷한 면이 있는 법이니까.


기독교 신앙이 지루하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을 향한 강력한 반론이 담긴 책. 우리의 신앙은 원래 이런 역동성이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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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미학적 기준은

선함과 진리와 아름다움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이 기준은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입니다.

따라서 예술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은

절대적인 것이 없다고 하는 포스트모던의 주장과 대조를 이룹니다.

필립 그레이엄 라이큰, 『하나님을 위한 예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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