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우리의 시야로부터 가려져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시선이 통과하는 진로 밖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과 눈을 그 사물에다 전적으로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가을의 빛깔들'

시민의 불복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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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하나님 믿음의 글들 318
안재경 지음 / 홍성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1. 요약 。。。。。。。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들을 읽어내며 주석을 달아놓은 책이다. 저자는 단지 각각의 그림들을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렘브란트가 살았던 당시의 역사와 그가 처했던 상황들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개혁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을 읽어내려고 시도한다. 일종의 탈굼의 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총 열두 개 장마다 각각 하나의 작품들을 메인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여기에 인용된 작품들은 모두 렘브란트의 종교화(개인적으로 성화聖畵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성경적 관점을 담아낸 그림은 모두 성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역으로 성경의 이야기를 비성경적 관점으로 그리거나 조각해 낸 것은 성화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상은 비록 그것이 성경의 다윗을 표현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사상으로 볼 때 성경적 조각이라고 할 수는 없다)가 사용되고 있다.

 

     각각의 그림은 시간 순서로 배열되어 있어서, 렘브란트의 인생을 그가 그린 작품들을 통해 연대기적으로 훑어볼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 청년기의 렘브란트와 노년의 렘브란트 자화상

 

2. 감상평 。。。。。。。  

 

     개인적으로 그림에 대한 조예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골라든 이유는 일단 렘브란트라는 (문외한인 나도 익숙할 정도로) 유명한 화가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고, 그가 17세기 종교개혁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네덜란드에서 작품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림을 보는 눈을 좀 뜨고 싶다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책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통찰을 읽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 두 가지 목표는 나름 어느 정도 달성되고 있다. 각각의 장은 우선 그림을 설명하고 읽어내는 데 할애되어 있고, 후반부는 앞서의 설명과 관련된 저자의 신학적 사고를 풀어 놓고 있는데 이 부분이 꽤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개혁주의적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든지, 신학에 대한 경시로 도덕종교로 전락해 가고 있다든지,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배금주의 같은 날카로우면서 애정을 잊지 않은 조언을 덧붙인다.

 

 

     다만 이 두 가지 영역이 서로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렘브란트는 그림 외에 따로 책을 낸 것도 아니고, 동양화처럼 그림의 일부에 그 설명을 남기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 해석은 온전히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몫인데, 여기에는 당연하게도 읽는 사람의 관점이 강하게 개입될 수밖에 없다.

 

     물론 렘브란트가 처한 상황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 그리고 작품 자체가 표현하고 있는 내용들을 통해 어느 정도 추측과 분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책에 실려 있는 신학적 논의들은 과연 실제로 렘브란트가 했던 고민일까 싶을 정도로 현대적인데다가, 그 논의들을 온전히 렘브란트의 이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살짝 걸린다. 물론 이건 책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 부분에 대한 지적.

 

     아, ‘형식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본문의 구성부분이 좀 아쉽다. 각 장의 앞에 그 장에서 다룰 그림이 들어가고 다음 페이지부터 설명이 이어지는데, 그림에 대한 설명이다 보니 그림을 보면서 읽어야 더 잘 눈에 들어올 텐데, 설명하고 있는 부분을 본문 옆에 확대해서 배치했더라면 좀 더 읽기에 편하지 않았을까 싶다.(덕분에 다시 각 장의 앞으로 넘기기를 수도 없이 해야 했다.) 책 후반의 몇 개 장에서는 확실히 이런 식의 편집을 하고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그런 배려가 좀 아쉽다.

 

 

     렘브란트의 종교화에 관심이 있거나, 그의 작품에 담긴 신앙과 신학적 관점들에 흥미가 있다면 볼만한 작품. 나처럼 미술에 별다른 조예가 없는 사람들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 곳곳에 들어 있는 컬러도판만 해도 볼만한 부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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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시작하자마자 동유럽의 가상국가 소코비아의 한 오래된 성에 자리잡은 적 기지를 공격하고 있는 어벤져스 팀. 가까스로 기지를 점령하고 적들이 연구하던 로키의 창을 획득해 온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초록색 괴물에서 돌아온 배너 박사(마크 러팔로)와 함께 창 속 보석을 베이스로 울트론이라는, 지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궁극의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오류로 괴물이 탄생해버렸다. 지구의 평화를 해치는 것이 바로 인간들이라고 판단한 울트론은 인류를 멸망시키고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위한 계획을 세운 것. 별 수 있나, 힘 합쳐서 물리치는 수밖에. 눈 덮인 소코비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욕, 서울까지 오고가는 범지구적 싸움이 벌어진다.

 

 

 

2. 감상평 。。。。。。。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 부은, 압도적인 영상들은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눈을 자극한다. 지구의 남북, 동서를 오고가며 촬영한 이 거대한 영화는 스케일에서 만큼은 뭐라 덧붙일 말이 없을 정도. 물론 이 정도로 촬영했다면 오히려 이제는 그 내용을 알차게 채웠느냐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게 인지상정..

 

     어벤져스 팀이 보여주는 액션과 눈이 휘둥그레 해 지는 능력들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사용할만한 대상, 즉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적들을 필요로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총알 따위는 비비탄인 양 튕겨내는 헐크와 천둥의 신 토르,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설치는데 어지간한 인간들은 상대도 안 될 테니까. 그래서인지 이들 팀이 싸우는 대상은 하나같이 휴머노이드 로봇들이다.

 

     하지만 어디 그 정도로 만족할까. 역시 강력한 최종보스가 필요한데, 이 영화에서는 그 역할을 울트론이라는 녀석이 차지하고 있다. 일단 울트론은 기본적으로 지능을 갖고 있는 엄청나게 복잡한 연산을 해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슈퍼컴퓨터 정도라고 할까. 물론 이 가공할만한 인공지능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장악하게 되면 그 위험이야 결코 작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어벤져스 팀이 눈에 보이지 않는 프로그램과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좀 때리고 맞고 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형태의 무엇인가가 필요했는데, 허수아비가 별로 강해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

 

 

 

     여기에 울트론이 굳이 그렇게 날뛰는 이유(지구의 평화를 위해 인류를 전멸시키고 더 진화한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겠다는) 역시 그닥 설득력이 없어 보이고, 이를 위해 녀석이 사용하겠다는 방식 역시 지나치게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훨씬 쉬운 방법들, 예를 들어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주요 요인들을 암살해버린다던가, 군부의 실권을 쥔 인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포섭, 혹은 회유한다던가 하는 쪽이 훨씬 눈에도 덜 띄면서 쉬워보이는데, 굳이 도시 전체를 공중에 띄울 것까지야..

 

     화면이 전반적으로 어둡다. 일반상영관에서 봤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밝으면 밝을수록 실사처럼 만들기 위해 CG에 돈을 더 들여야 하기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그만큼 깊은 철학적 성찰이나 함의까지 담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던 듯하다. 캐릭터들이 잔뜩 등장하는 만큼 각각의 캐릭터들에 기계적인 출연시간 배분을 하는 문제나, 그래픽 쪽에 더 많은 고민을 했던 듯. 뭐 오락영화로서야 그닥 나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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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우리가 자신에 대해,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정직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경험을 표현할 기회를

자주 얻게 될 것이다.

 

- 릭 리처드슨, 스타벅스 세대를 위한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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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피터 어센딩
라나 워쇼스키 외 감독, 채닝 테이텀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이모네 가족들과 함께 청소 대행업을 하며 살고 있는 러시아계 이민자인 주피터(밀라 쿠니스). 어느 날 그녀를 노리는 외계인들이 나타났고, 다시 그런 외계인들을 막아내고 그녀를 구하려는 케인(채닝 테이텀)도 나타난다.

 

     영문도 모른 채 케인과 함께 우주로 날아간 주피터는, 자신이 우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브라삭스 왕조의 계승자라는 말을 듣게 된다. 현재는 만년이 넘도록 살며 다스리던 여왕이 죽고, 그의 세 자녀인 발렘, 칼리크, 티투스가 왕국을 다스리고 있는데, 죽은 여왕과 정확히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그녀가 왕국의 정당한 상속자라는 것. 여기에 지구 같은 행성들은 왕조가 필요한 힘을 얻기 위해 만든 농장에 불과하며, 인간은 수확정제된다는 더욱 충격적인 소식까지..

 

     냉철한 사고와 판단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빌렘과 허허실실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뒤로 음모를 꾸미는 타이터스는 저마다 주피터를 손에 넣기 위해 힘을 쓰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주피터를 구해내기 위해 케인은 자기 한 몸 바쳐 거의 역대급 활약을 펼친다. 주피터는 왕조의 주인이 되어 지구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뭐 영화니까..)

 

 

 

2. 감상평 。。。。。。。  

 

     일단 그래픽 하나는 입이 떡 벌어진다. 유럽의 중세 고딕 양식을 재현한 높은 첨탑들과 복잡한 구조의 건축물들이 우주 공간에 세워져 있고, 하늘을 날게 해 주는 부츠(이게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소품)와 케인이 타고 다니며 적진을 휘젓는 비행체 등은 이 영화가 CG에 꽤나 공을 들였음을 짐작케 한다.

 

     영화 자체도 나름 철학적인 질문을 담아내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예컨대 초반에 스팅어가 자신의 신분에 대해 믿지 못하는 주피터에게 했던 말 -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가가 아니라 누구냐의 문제다. -이나, 정확히 같은 유전자 배열을 띠고 태어나는 것을 환생이라고 부른다는 칼리크의 코멘트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은 말 그대로 그냥 지나가는 말일 뿐이고, 그 이상 파고들어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장면들을 빼면, 그저 또 하나의 신데렐라 이야기 정도? 남의 집 청소를 하며 살던 가난한 이민자가 지구를 포함한,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왕조의 주인이 된다는.. 다만 신데렐라가 그랬던 것처럼, 천성적으로 순수하고 선했다는 점을 빼면, 여주인공은 판단력도 부족하고, 새로운 정보와 힘을 습득하는 속도도 늦으며, 무엇보다 책임감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이 정도의 큰 이야기를 벌여 놓고서, 다시 여주인공을 케인과의 러브스토리라는 소용돌이로 밀어 넣은 감독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다른 소재가 눈에 더 들어왔다. 지구가 거대한 인간농장에 불과하고, 그보다 위에 있는 누군가가 그들을 수확하려 하고 있다는 부분 말이다. 인간 백 명을 정제해서 빛나는 액체 한 통을 만들고, 그것이 그 자체로 왕조의 부가 되는 상황, 그 모양까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아닌가.

 

    150년 전만 해도 공식적으로 미국에서도 남아 있었던 노예제, 아프리카 등지에서 납치해 온 엄청난 수의 노예들이 희생 위에 미국의 경제가 돌아갔고, 경제적인 이유로 인간을 인간 이해로 대우하는 제도를 없애려는 움직임은 제지받고 있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이런 제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 전근대적 플랜테이션 산업이 움직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첨단의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그 고가의 새 장난감을 유럽과 미국의 구매자 손에 쥐어주기 위해 중국과 아시아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혹사당하는 모습은, 영화 속 그것과 별로 다른 점이 없지 않은가.

 

     아브라삭스 왕조가 아닐 뿐이지, 이미 이 세상은 높은 탑위에 사는 소수의 지배자들의 농장으로 전락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노동자들을 정제해 손에 쥔 부로, 그들은 로비를 통해 입법기관을 손에 넣고, 사법기관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행정기관에는 아예 자기들의 수족들을 보내 좌지우지 하고 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감독들이 이런 쪽을 그려봤더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그들의 시선은 좀 더 먼 곳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나치게 과장된 홍보만 아니었으면 그럭저럭 괜찮은 오락영화 정도라고 했을 텐데, 뭔가 엄청난 게 있는 양 선전을 해두니 상대적으로 실망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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