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입니다.
1년 전 오늘 저는 후배의 부탁으로 의정부 쪽에 강의를 하러
갔더랬죠.
점심을 먹으려고 좀 일찍 식당에 들어갔는데, 그 뉴스가
나왔습니다.
여객선이 침몰했고, 다행이 전원
구조됐다는.
그런데 같은 뉴스를 보는데도 계속해서 자막이
바뀌더군요.
수
백 명이 아직 구조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자료화면을 보면서 아직 저렇게 많이 배가 물 위로 떠
있는데,
딱히 뭐 불이 난 것 같지도 않은데,
주변에 저렇게 해경도 잔뜩 와 있는데,
곧
대부분 구조되겠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예상은 완전히 틀려버렸고,
배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그 주위에 있던 수많은
어른들은
그저 우왕좌왕하다가 수백 명의 아이들을 물에 빠뜨려
죽였습니다.
분명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적어도 수 시간 동안 배는 물 위에 떠
있었고,
하려고만 했다면, 분명 수백 명의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게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뭐
저는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심리학, 사회학, 정치학 학위 같은 건 없으니까요)
이 사건이 가진 사회적 의미에 대해 감히 뭐라 덧붙일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이 사건 이후 지난 1년의 과정을 되돌아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낯뜨거운 맨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선 이 나라의 주류 언론과 정치세력은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게 분명 드러났습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죽었는데도, 그게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사방에서 잊어버리자는 말을 되풀이 하며 세뇌시키려고
난리였습니다.
한 해 일어나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 운운하며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하려는 인간들은
흔히 말하는 소시오패스, 사회적 공감능력이 상실된 괴물들
아닌가요.
그런데 그런 괴물들이 꽤나 높은 자리에, 그리고 크게 떠들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게
좀 흠짓하기까지 합니다.
잊어버리는 게 능사는 아닐 텐데...
물론 여기에도 그놈의 경제 타령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제 이 나라는 사람 죽어도 돈 안 벌리는 게 더 문제인
지경에 이르렀나봅니다.
소위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이들 - 경찰과 검찰, 각종
행정부처들, 그리고 청와대? -은
이런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아주 없다는 것도
분명해졌습니다.
1년 내내 헛발질만 해대던 그들은,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무시하기 바빴습니다.
물론 아이들을 버려두고 도망친 선장과 선원들을 포함한
200여 명의
관련자들을
재판에 넘겨 유죄판결을 받아내긴
했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민들도 함께 잡아
넣었죠.
정권을 보호하는 게 진실에 대한 요구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가 뭔가는 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 된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까놓고 말해 유병언이 배 침몰시켰나요?
물론 그가 저지른 횡령은 그 대가를
치러야겠지만,
형식적인 검사로 배가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닌데도 출항시킨
협회 관계자들,
그런 사람들의 뒷배가 되어준 해경, 정치권, 관가
관계자들은 그대로 빠져나갔습니다.
(힘은 늘 그것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법이죠)
무엇보다 몇 시간 동안 그저 시간만 보내고 앉아 있던
밥버리지들은
이번에도 새로운 부서를 만들더니 밥상을 차려서 자기들이
먹기로 했습니다.

집단적 우울증.
누군가는 그렇게 표현하더군요.
슬픈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상적인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우울증의 치료는 주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들이 혼자가 아니고, 그들을 지지해 주는 친구와 가족,
이웃들이 있다는 것.
아쉽지만 이 나라의 권력자들, 힘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의 생명에 관심도 없고, 지켜줄 능력도 없다는 게 드러난
지금,
이 집단적 우울증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끼리 좀 더 단단히 연합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