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양희송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1.
요약 。。。。。。。
가나안 성도란 고대 팔레스타인에 살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안
나가’인데, 바로
교회 예배에 출석하지 않는, 하지만
어느 정도 기독교적 분위기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교회 내 신조어다.
이 책은 그 소위 가나안 성도들이 약 100만
명에 이른다는 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그것을
기독교 내의 한 사회현상으로 인정하면서(1부), 왜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는지 이유를 탐색하고(2부), 이
현상이 드러내고 있는 현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 등으로 이어진다(3부).
2.
감상평 。。。。。。。
처음에는 반쯤 장난스럽게, 혹은
비꼬듯 부르기 시작한 이 이름이, 하나의
사회현상이 될 때까지 온 것은 확실히 지난 십
수 년
동안 한국 교계가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추잡스러운 일련의 행태들과 교회다움을 상실한 교회 등이 이런 문제들을 확대 재생산 시켰다.
이 책의 의의는 그런 ‘가나안
교인’(개인적으로
여기에 ‘성도’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이라는
현상을 본격적으로 분석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 있다. 문제
해결의 그것을 제대로 분석하는 데서 시작하니까. 물론
이 책 이전에도 이와 관련된 연구나 발표들이 있어왔겠지만, 확실히
이런 단행본의 형태가 가진 힘은 아직까지 무시할 수 없으니까.
이 현상을 교회론과 연결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앞서
언급된 많은 문제들의 핵심은 결국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본질에 관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규모와 숫자만을 늘리려고 했던 데서 발생한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예배학, 또는
예배론에 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쉽게
말해, 일요일
마다 카페에 앉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일종의 ‘대체
예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도 괜찮은 걸까? 주일성수니
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기독교가
시작된 이래로 2천
년 동안 이어져 왔던 ‘함께
모여 예배하는 전통’이
‘단지’ 형식일
뿐인 걸까? 그
안에 뭔가 본질적인 부분은 전혀 없는 걸까 하는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이다.
또 책을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었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전체적인
논조가 이들 ‘가나안
교인’를
지나치게 옹호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책
속에는 심지어 이들을 수도원적 경건이나 종교개혁가들의 전통을 따르는 것처럼 묘사하는 부분도 있는데, 확실히
이 부분은 과하지 않나 싶다. 교회
쇼핑족보다 카페에서 혼자 시간 보내다가 나온 사람들을 더 낫다고 봐야 할 이유나, 둘
사이를 구분 짓는 명확한 기준 자체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이 ‘배운
것 많아서 지나치게 비판적인 부류가 아니’라는
저자 자신의 설명과는 다르게, 책
전체에 걸쳐 예로 제시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 기독교인들이
늘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초대교회’ 안에는
또 아주 문제가 없었을까? 현대적으로
보면 사도들의 지나치게 카리스마적인 목회방침과 엄격함, 급진적인
사상 등은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될 수 있지 않았을까.
타당한 논리를 갖춘 비판적인 관점은 대안 여부와는 상관없이 값진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무서운 건 통증이 없이 시작되는 병이다. 뭔가를
느끼게 되었을 무렵에는 이미 손을 쓰기 늦은 상황이 되어버리니까. 특히
이 책 속에서 지적되고 있는 교회론의 바른 정립이라는 주제는 시급하게 좀 더 깊이 다뤄져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이 이와 관련한 좀 더 건설적인 논의를 하는 데 필요한 좋은 문제제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