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한쪽 편을 들거나 험담을 하는 것은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어설픈 충고나 외면도 마찬가지이다.

 

 

- 김재식,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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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밝혀지다 - 쏘련 역사에 대한 거짓말, 제3판 노동자 교양문고 3
마리오 소사 지음, 노사과연 편집부 옮김 / 노사과연(노동사회과학연구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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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분명하다. 그동안 친애하는 스딸린 동지사회주의 조국 쏘련이 당해왔던 억울한 중상의 진실을 밝히고, 그 부당한 비난들로부터 사회주의의 우수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제1편은 그동안 소련에 (물론 말과 글로) 악질적인 공격을 가해왔던 여러 인물들의 신뢰도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사항들 - 연구자금의 출처, 정치적인 견해(일부는 나치에게 우호적이었다는 식이나 극보수적인 관점), 그리고 그들이 출판한 기술들의 부정확성 -을 공격하면서 무난하게 시작된다.

 

     2편은 1930년 대 소련 공산당 안에서의 정치적인 숙청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그 배경에는 스탈린의 야욕이 있었다는 서방세계의 비판을 반박하기 위한 내용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련의 숙청작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수는 비난에 비해 훨씬 적었으며, 그 이유 또한 단순한 권력욕 때문이 아니라 당의 노선을 충실하게 따라가지 않은 채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던 불순분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심지어 재판 과정도 충분히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강변한다.

 

     마지막 제3편은 저자가 쓴 글은 아니고, 안토니 비버가 쓴 스탈린그라드(우리말로 나온 책의 제목은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책에 대한 서평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전투를 묘사한 이 책에서 서평자는 안토니 비버가 지나치게 히틀러에게 우호적인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다며 비난한다.

 

 

2. 감상평 。。。。。。。  

 

     굳이 스딸린’, ‘쏘련이라며 외래어표기법에도 맞지 않는 어휘들을 일부러 사용하는 고집은 무엇 때문인 걸까. 물론 그게 원래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발음에 가까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외국어를 정확히 우리의 발음으로 옮겨내는 것 자체가 완전하지 않은 작업인데다(더구나 소련과 쏘련, 스탈린과 스딸린이라면), 이 책은 한국 사람들 보라고 번역해 낸 책인데 말이다. 소위 운동한다는 사람들이 자주 빠지는 우월의식의 흔적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결론에 동의나 부정을 하지 말고 일단 있는 그대로 따라가 보자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우선 소련에 대한 공격을 가하는 서방의 저술가들과 언론인들의 정치적 배경과 성향을 공격하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런 식의 공격은 정확하게 저자 자신에게도 가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스웨덴 공산당에 몸담고 있는 저자가 하는 모든 말이 사회주의에 편향적이라거나, 유리한 쪽으로 정보의 왜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 입장에는 뭐라고 대답을 할지..

 

     흥미로운 것은 소련이 해체된 이후 러시아가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문서고를 개방했는데, 그곳에서 이제까지의 소련에 대한 공격 - 엄청난 수의 희생자들이 나왔다는 -에 대한 (문서상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그동안 과장된 공격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참고 했다는 문서가 어느 정도 수준의 신뢰도를 가진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금도 북한의 노동신문에는 북녘 땅에 사회주의 낙원이 임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고, 여러 공식적인 기구의 성명서나 종종 북한 방송을 통해 나오는 주민들의 인터뷰도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걸 어느 정도나 믿을 수 있을까. 요컨대 어떤 것이 공식적이라고 충분히 사실적인 것은 아니다. 심지어 북한에는 공식적으로 정치범 수용소나 고문도 존재하지 않는다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도 공식적으로는 집회와 결사,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고 하고.

 

 

     숙청과 관련된 기술 역시, 저자는 부득불 사회주의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작업이었음을 강조하면서, 일부의 무고한 희생자가 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옳은 일이었다고 말한다. 희생자의 숫자는 서방세계의 비판보다 훨씬 적었음을 주지시키면서.

 

     기본적으로 이런 식의 논리전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니, 무고한 희생자들이 나왔던 것은 유감이라니 하는 식의 논리는 자기가 그 희생자가 아니었을 때나 쓸 수 있는 논리다. 또 그런 숙청작업의 진의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과거 소련처럼 독재적인 권력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구조에서는 최고권력자 자신이나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거고. (역시 공식 문서에는 얼마든지 미화될 수 있다.)

 

     재판 과정에 있어서의 공정성 또한 절차적인 공정성이 실제적인 공정함과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과거 이 나라에서도 (그리고 현재도 종종) 합법적으로 정권을 쥔 이들의 눈에 껄끄러운 사람들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곤 했으니까. 그리고 저자도 스딸린 동지의 입장이 되어 한 마음으로 비난하고 있는, 트로츠키를 비롯한 소위 종파분자들의 반체제행위는 레닌이나 스탈린 자신도 저질렀던 수준이 아니던가. 설마 저자는 레닌이나 스탈린이 오직 인민의 행복을 위한 선의로 가득 찼던 성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책의 세 번째 부분인 서평의 내용도 좀 떨어진다.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이 600여 페이지짜리 책은 나도 읽어봤지만, 개인적으로는 (서평자가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히틀러에 대한 찬사나 사회주의에 대한 깎아내리기 같은 부분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두 독재자의 오만과 고집이 함께 드러내는, 그리고 엄청난 수의 사상자를 낸 이 무익했던 전투를 통해 전쟁의 의미를 묻는, 비교적 괜찮게 쓰인 역사 르포였다. 이 또한 어떤 비난과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그 쪽 동네의 완고한 이념적 경직성을 드러내주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끝으로 책머리에 번역자가 끼적여 놓은 (하지만 거의 필요 없었던) 서문의 말투도 지적해야겠다. 사회주의에 대한 반대를 표하는 사람들을 향해 노예근성이니 속물근성이니 하는 표현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이 오만한 자신감으로 누구를 설득하겠으며,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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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저 서재의 달인 됐어요!!

 

블로그 한지 몇 년만에 이런 거 처음이에요! ㅋ

 

 

머그컵이랑 달력이랑 다이어리까지 주신다고..ㅎ

 

내년에도 열심히 글 올리고 해야겠네요.

 

 

근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활동하시는 건지..

 

전 정말 허접하게 겨우겨우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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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14-12-19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ㅎㅎ

노란가방 2014-12-19 17: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14-12-19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노란가방 2014-12-19 19:21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요~

saint236 2014-12-2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전 작년과 올해도 뜸했더니 안됐더군요. 매일매일 쌓아가는 것이 달인이 된거죠

노란가방 2014-12-20 20: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전 많이 허접한데 괜찮게 봐주셨나봅니다. ^^
 
몽골 기행 - 칭기스 칸의 땅을 가다
박찬희 지음 / 소나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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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언제부턴가 철마다 때마다 몽골의 각지를 여행하기 시작한 작가가 약 2주에 걸쳐 칭기즈칸의 생애와 관련이 있는 여러 지역들을 돌아보고 온 과정을 일종의 기행문으로 엮었다. 이미 여러 차례의 여행을 통해 얼굴을 익히고 함께 했던 경험이 있는 노련한 안내자들과 함께, 직접 지역 주민들의 집에 들어가 머물고, 한밤중에 눈 덮인 늪에서 차를 끌어내고, 밤새 술을 주고받으며 노래하는 등 현지인과 함께 하는 여행 이야기가 펼쳐진다.

 

 

 

2. 감상평 。。。。。。。  

 

     사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새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보면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시골에 내려가서 함께 하는 여행이나 캠핑 같은 게 유행이던데, 내 경우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 떠나면 고생이다가 기본적인 스탠스였으니까. 산과 강보다는 도시의 건물들이 좀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면, 나 좀 이상한 건가.

 

     그런데 요즘은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아마도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부터 이런 변화가 나타났던 것 같다). 확실히 나이를 먹으면 사람도 변하는 걸까. 가끔은 가까운 근교에라도 나가보고 싶고, 시간만 되면 예전에 다녀왔던 나라들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어진다. 늘 일상적인 일들로만 가득한 곳에서 잠시 벗어나 기분 전환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어쩌면 이 책의 작가 역시 비슷한 감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그 광활한 초원을 이 책의 작가처럼 여행하는 것은 아직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면 그런 여행을 덜컥 나서는 작가가 부러워지기라도 하냐면 또 그것도 아니다. 여전히 내 안에 정주본능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인가 보다. 이런 여행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는 작가가 그저 대단해 보일 뿐.

 

 

     작가의 몽골에 대한 애정은 책 전체를 걸쳐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자주 여행을 다녀왔던 곳이기도 하니까 이 정도의 관심과 사랑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종종 이럴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과도한 애정과 정당화는 또 무작정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양을 잡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덜컥 지인들에게 보여주면서, 치우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설명하면서 몽골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넘어가는 부분이 그렇다. 자주 다니면서 익숙한 저자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장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그들의 반응 또한 옳고 그름으로 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뻔히 반응이 예상되는 사진을 들이밀면서 자신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자기본위가 아닌가. 물론 이런 장면이 많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를 할 때는 좀 더 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한 편의 잘 만들어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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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가족과 함께 흥남부두에서 퇴각하는 미군 배에 올라타고 피난을 내려온 덕수(황정민). 피난 도중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기 위해 배에서 내린 아버지는, 이제 네가 가장이니 남은 가족들을 잘 돌봐야 한다는 마지막 당부를 남긴다. 고모가 운영하는 상점이 있는 부산 국제시장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다. 서울대에 들어간 남동생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 파독광부에 지원하고, 거기서 파독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영자(김윤진)를 만나 결혼을 한다.

     고모가 돌아가신 후 술주정뱅이인 고모부가 덜컥 가게를 팔려고 내놓자 덕수는 자신이 그 가게를 사기로 하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베트남에 민간 기술자로 다시 한 번 떠나게 된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가장으로 살아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살아오면서 그게 자신의 팔자라고 여기며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던 덕수. 어느덧 손주들의 재롱을 지켜볼 나이가 되어버린 그의 일대기를 통해, 격동의 한국 근대사가 스크린 위로 그려진다.

    

 

  

2. 감상평 。。。。。。。  

     마치 두 시간짜리 한국 근현대사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느낌이랄까.. 세계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역동적이었던 이 작은 나라의 지난 반세기를,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 세계 최빈국으로 허덕이던 시절부터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빛나는 역사가, 피난촌 텐트 교실부터 양옥을 구입하고 현대화된 시장으로 이어지는 덕수의 개인적인 삶과 지속적으로 오버랩되며 그려진다. 이 시기 영화에서 빠진 굵직한 내용은 아마 중동건설근로자 파견 정도?

      황정민, 오달수, 김윤진 등의 연기파 배우들은 이젠 뭐 따로 지적할 필요가 없는 연기력을 보여주고, 덕분에 맡고 있는 캐릭터는 살아있는 누군가처럼 보일 정도다. 특히 젊은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전 시대를 한 명의 배우가 다 맡았기에 특수효과 부분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개인적으로는 노년의 캐릭터들보다 오히려 젊은 시절의 배우들의 모습을 만들어 낸 특수효과에 좀 더 눈이 간다. 벌써 사십 중반의 황정민을 완벽하게 20대로 만들어 버리다니.. 계속 이렇게 기술이 발전하다보면 굳이 연기력 부족한 젊은 배우들을 끼워넣을 필요가 없어져버리는 건 아닐까? (, 그래도 흥행을 위해 발연기 하는 연예인들은 계속 들어가려나)

   


 

      감독은 아주 작정하고 달리기 시작한다. 워낙에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담아내야 하기에 적당히 늘어지거나 쉴 만한 영화 속 벤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이 시기 우리나라는 그렇게 달려오기도 했을 게다. 쉴 새 없이,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극한의 경계 부근에 몰린 채 살기 위해, 또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애써왔던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았던.

     영화 속 이야기는 단지 한두 사람의 특별한 이들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발전을 위해, 또 개인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애써왔고, 그것이 오늘 이 나라의 번영을 가져왔다. 그건 대통령 한 명의 길이 남을 위대한 결단이나, 소수의 재벌들의 탁월한 능력 덕분에 (물론 그들의 결단도전정신이 아주 필요가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온 국민이 먹고살 수 있게 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 점이 혼동되면 우리의 역사 이해는 대단히 불완전하고 왜곡되어 버린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룬 세대에 대한 마지막 찬가같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들었다. 최근 들어 세대 간의 (특히) 정치적, 경제적 갈등이 점점 심해지면서 노골적인 조롱과 무시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들의 공로는 결코 무시되거나 축소되어서는 안 될 부분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영화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 오늘을 이룬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을 최대한 빛나게 그려내려는 목적을 분명히 드러낸다.


      영화가 영화다 보니 다른 영화보다 나이 든 관객들이 좀 더 많이 보였다. 뭐 그분들의 추억을 아름답게 묘사할 만한 작품이 한편 쯤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적당히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장면도, 감동과 대리적인 성취감을 느끼게 할 만한 부분도 있는, 건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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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4-12-17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만간 보려고 합니다. 이젠 연기가 되는 배우들의 영화를 찾게 되더군요. 심지어는 코미디 조차도요

노란가방 2014-12-17 22:40   좋아요 0 | URL
제작 편수가 많아지고, 다양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긴 하지만, 역시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연기력이 되는 배우들의 작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