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반년 동안 열 명의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한 동네. 수정(김새론) 역시 일이 늦게 끝나는 언니를 기다리러 나갔다가 사라져버렸고, 연서(정유미)는 그런 동생을 찾아다니던 중 휴대폰 위치추적을 따라 맨홀 아래로 내려간다. 한편 또 다른 실종자의 아버지인 종호(최덕문) 역시 딸을 찾아다니던 중 한 맨홀 뚜껑 근처의 수상한 머리카락을 보고 지하로 내려가게 된다.

     캄캄하고 미로 같은 지하 공간에서 사이코패스 납치 살인범과 두 명의 추적자(인데 범인에게 주로 쫓긴다)들이 벌이는 추격전. 아 여기에 살짝 모자란 경찰 필규(조달환)의 헛발질이 간간이 섞인다.

2. 감상평 。。。。。。。   

     서울 도심 지하에는 수많은 공간들이 있다. 지상과 지하를 이어주는 맨홀은 지상 위의 화려한 세계와는 전혀 다른, 음침하고 뭔가 수상한 느낌의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이 소재를 가지고 일종의 도시괴담스릴러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흥미로운 도전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만들어진 영화를 보니 실망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서로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두 명의 추적자들은 영화 내내 거의 몇 번 조우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별다른 관계도 형성하지 못한다. 마치 서로 다른 사건을 다른 장소에서 쫓는 두 개의 영화처럼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느낌. 굳이 김새론을 청각장애인으로 설정해 놓고서 딱히 그 포인트를 영화 속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제대로 이용조차 못하고...

     이외에도 온갖 미숙한 설정들, 어정쩡한 조달환의 캐릭터는 시종일관 걸리적 거리기만 하고, 얼토당토않은 경찰의 대응 - 반 년 새 열 명이나 실종됐는데도 전담반 하나 꾸려지지 않고, 그 상황에서 또 다른 실종신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는 않나(그 중 하나는 심지어 현직 경찰이 한 전화였다), 피해자를 구출했는데 출동하는 데 30분이나 걸린단다. 대충 봐도 서울 도심 한 가운데인데 - 이젠 너무나 전형적인 장면처럼 느껴지는 결말까지..

      무엇보다 큰 문제는 사건의 중심에 있는 범인의 행동을 설명하는 부분도 부족하다는 점. 영화 속 악역에는 통상 두 가지 반응 - 비판적 공감이나 분노 -을 보이면서 몰입이 되는데, 이 영화에는 둘 다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뭐 이해가 되는 캐릭터이어야 반응을 보이지.. 영화가 실패한 이유는 너무나 확실하게 보인다. 영화가 실패한 이유는 너무나 확실하게 보인다.

     참,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은 정유미라는 이름을 쓰는 여배우가 둘이라는 사실. 드라마 쪽은 별로 보지 않는다고 해도 영화 쪽은 꽤나 섭렵했는데 여태 잘 몰랐다. 대략 (이름은 같은데) 얼굴이 약간 다르게 보인다는 느낌 정도는 있었지만, 이미지도 꽤나 비슷한지라.. 동명이인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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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이런 경험을 해야 한다.

메마른 의무에서 벗어나,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제시하는 기독교를 넘어,

힘겨웠던 그날 분량을 채우는 성경읽기를 지나,

파괴적인 기쁨이라 부를 만한 성경 체험에 이르러야 한다.

 

성경을 읽는데도 우리 마음이 새로운 수준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리로 옮겨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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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살인, 강간, 폭행, 납치 등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나쁜 짓을 하다 친한 동생까지 죽이고 결국 잡혀 사형 선고를 받은 흉악범 스도. 2심 재판에서까지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상고를 진행 중인 상태에서 한 잡지사에 편지를 보낸다. 기자인 후지는 그의 사건을 배당받아 스도를 직접 만나러 갔고, 면회 도중 스도는 알려지지 않은 세 건의 살인 사건을 추가로 밝히면서 이 모든 일들에 자신과 함께한, 자신과 일종의 지시관계에 있었던 선생이란 자의 행태를 고발한다.

 

     기삿거리가 되지 않을 거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홀로 조사하기 시작한 후지. 그의 기사가 실린 잡지가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오면서 경찰도 더 이상 엉덩이를 뒤로 뺄 수만은 없게 되었고, 마침내 선생도 체포된다. 어쨌든 나쁜 놈은 벌을 받았지만, 좀처럼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 건, 덕분에 감형을 받은 스도와 후지 자신의 엉킨 가정문제 때문이었을까.

 

사이코패스 일당 스도와 선생​

 

2. 감상평 。。。。。。。   

 

     시작부터 과도한 폭력적 장면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무겁고 어둡게 만든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이 영화는 끝날 때까지 다양한 방식, 이를테면 회상이나 스도의 발언을 영상으로 재구성 하는 식으로 그가 저질렀던 악행들을 딱히 극적인 효과를 넣지 않은 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폭력 그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찾겠다는 사이코패스적인 생각이 아니라면 영화 속 폭력에는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지만, 글쎄 단순히 예산부족과 카메라워크의 역량 부족 말고는 필연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지 않았나 싶다.

 

     영화는 어떻게 보면 단순히 한 기자의 집요한 노력으로 감춰졌던 사건들이 드러나고, 자칫 계속 악행을 저지를 뻔 했던 사이코패스를 잡아넣게 되었다는 식의 언론전사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감독은 여기에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그녀를 혼자 집에서 돌보며 어려움을 겪는 기자의 아내, 그리고 이런 막막한 가정문제로부터 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려 사건에 매달리는 기자의 모습을 집어넣음으로써 드라마를 좀 더 복잡하게 만들어 낸다.

 

 

이 녀석이 주인공인 기자 후지

 

 

     이런 측면은 선생이 결국 수감되고 나서 그를 면회하러 간 후지에게 선생이 한 말 - ‘내가 죽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은 바로 너라는 -에서도 언뜻 암시되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를 이렇게 본다면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가족)과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그에 대한 분노를 사회 정의라는 이름으로 화풀이하고 있는 소심한 사내의 이야기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두 번째 메시지를 주()로 제시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사회고발 작품이라고 하기에도 좀.. 전체적으로 약간 어정쩡한 느낌이랄까. 영상미라든지 하는 부분이 뛰어난 것도 아니면서 말이지. 장르도, 영상도, 주제도 애매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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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톰 라이트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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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죽은 뒤 가는 영원한 영혼의 안식처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런 개념은 전혀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 시작된 새로운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키는 말이며, 부활 후 성도들은 이 땅에 온전히 회복된 그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 교정된 개념으로 기독교의 여러 오해되고 있는 교리들을 재해석하고, 나아가 부활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른 믿음이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의 삶에, 또 교회의 사역에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 신학적으로, 실천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2. 감상평 。。。。。。。  

 

     책 전체에 걸쳐서 저자는 일관되게 육체적 부활의 선함과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한다. 이 두 가지가 확립되지 않고서는 모든 교리들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라는 뉘앙스인데, 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어떤 신학체계 안의 모든 진술들은 서로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는 법이라, 한 가지 진술을 바꾸면 나머지도 모두 바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바로 이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은 채 몇 가지 진술을 자신의 입맛대로 조정하고도 별 불편함을 갖지 않는 어중간한 사람들인데, 어떤 조직에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시간이 지날수록 목표의식이 희미해지고, 원래의 비전이 변질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책의 논지에 따르면 교회에서 바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버렸다. 초대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선포되었던 메시지인 육체적 부활과 하나님 나라의 현시성이 현대 교회 안에서 제대로 선포되지 못하자, 내세관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실제로 내세의 천국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천국이 좋으면 지금 당장 죽어서 천국 가지 그러느냐는 비아냥거림은 무례하긴 해도 나름 논리의 핵심을 찌르는 지적이다. 소위 예수 믿은 이후 천국 가기 전까지이 땅에서의 삶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하는 질문도 비슷한 논리다. 결국 천국(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는 단순히 내세관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세관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기독교인들의 삶이 특별함을 보여주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비록 소속된 교파는 다르지만, 저자처럼 이 주제에 대해 바른 성경적 관점을 밝히려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확실히 이 진리에 기초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세상에 드러나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언론이란 게 언제나 사태를 더 과장되고 극단적으로 묘사하는 속성이 있으니까.)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대한 강조는 기독교 세계관을 담고 있는 책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지만, 특별히 육체적 부활이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이 책만한 수준과 깊이를 가지고 있는 책을 아직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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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환경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여기에 가담한 사람의 98퍼센트는 심리적으로 병들게 된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미치지 않은 2퍼센트는

전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미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데이브 그로스먼, 살인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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