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태치먼트
토니 케이 감독, 마샤 게이 하든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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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아버지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의 어린 시절 유일한 가족이었지만, 그가 일곱 살이던 무렵 결국 어머니가 약물로 목숨을 끊어버린 상처를 안고 있는 헨리(애드리언 브로디).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기간제 임시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가 이번에 가게 된 학교는 그 지역에서 가장 문제학생이 많아 교육청에서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곳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수업 첫날부터 학생들의 삐딱함이 장난 아니었다. 하지만 헨리의 진정성 있는 모습은 학생들의 반응을 조금씩 바꿔나갔고, 영화는 그렇게 아름다운 힐링영화로 끝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헨리가 안고 있었던 상처는 그리 쉽게 치료될 수 없었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 에리카와 뚱뚱해서 늘 따돌림과 무시를 받던 메레디스는 그런 헨리의 심리에 미묘한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는 좀처럼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2. 감상평 。。。。。。。。  

 

    영화가 단순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공식에 따르려면, 아이들은 두 달 남짓 되는 헨리와의 시간 동안 뭔가 변하기 시작해야 하고, 그가 떠날 즈음에는 모든 것이 회복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듭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실제로 있을 법한 일일까. 물론 아이들은 헨리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아쉬워할 정도로 약간달라지긴 했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아이들은 여전히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고, 불안한 심리상태와 왜곡된 자의식으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건 영화 말미의 한 학생의 자살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헨리라는 이름의 엄청나게 좋은 교사가 불량한 학생들을 개과천선시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그 학교의 다른 교사들도 자기 위치에서 엄청나게 애를 쓰며 일을 해 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학생들에 대항해 놀랄 만큼의 인내력을 발휘하며 그들을 좀 더 나은 상황으로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고작 두 달 있으면서 헨리가 그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가정은 처음부터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헨리 자신의 변화였다. 그는 교실을 통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지만, 역으로 아이들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마음속에 분노와 좌절, 그리고 두려움을 담고 살아온 그는 좀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곁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또 그런 상처를 가지고 있었던 그였기에,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던 학생들을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이점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영화는 미국식 교육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용주의에 기반 한 교육철학에 정복된 교실은 단지 기술만을 습득하는 학원으로 전락했고, 그 교육목표에 이르기 위해서 학생들은 일제고사 같은 시험을 통해 품질검사를 받고(실제로 영화 안에도 이런 시험이 등장한다), 공적 재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법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런 교육은 학생은 물론 교사까지 숨 막히게 만들어 모두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의미심장하게도 대한민국은 이런 미국식 실용주의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고, 그 부작용도 역시 함께 겪고 있다. 이전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만, 김대중 정부 말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개칭하면서 교육에 대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공식화해버린다.(이후 이 이름은 노무현 정부 내내 유지된다) 교육을 인적자원획득의 수단으로 생각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주는 이 천박한 이름은 진보정권 내부의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교육철학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보수정권의 이명박 정부가 바꿔 놓은 교육과학기술부라는 이름 역시 그닥 나을 것은 없었고, 실제 그 정책에 있어선 이전 어떤 정부보다 더 강력한 실용주의적 교육정책으로 교육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전국단위 일제고사 실시로 전국의 모든 학교와 학생을 줄 세우기 시작한 것도 이 때였다.

 

 

    영화 전체가 굉장히 혼란스럽게 편집되어 있다. 사건의 전개 틈틈이 헨리 개인의 인터뷰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짧게 삽입되어 있고, 그 때마다 꽤나 복잡한 철학적 주제들, 사유들을 단편적으로 내뱉는다. 사실 이 부분은 지나치게 무게만 잡으면서 별로 의미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살짝 겉멋?) 하지만 이 부분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는 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기도... 강렬한 분위기, 나름 생각할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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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효는 잘 공양하는 것을 말하는데,

개나 말도 먹여 살리기는 하니

어버이를 존경하지 않으면 무엇이 다르겠는가?

 

- 『공자의 논어』 위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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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프로 바둑기사인 태석(정우성)은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형에 의해 목숨을 건 바둑 도박에 끼어들게 된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바둑에서 지고, 설상가상 살수(이범수)에 의해 형이 살해되고 태석은 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한 조직의 두목을 도와주고 그의 도움으로 싸움을 익히고 복수를 할 수 있는 돈까지 얻은 태석은 출소한 후 살수 일당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자신의 복수를 도울 멤버들을 하나씩 모아 살수의 일당들을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한 태성. 마침내 살수와 직접 대국을 하게 되지만, 살수의 뒤에는 천재적인 실력의 소녀가 있었다. 그리고 모든 대국이 끝날 때 즈음 두 사람의 한 판 대결이 벌어진다.

 

 

 

 

2. 감상평 。。。。。。。。  

 

    흔히 신선놀음이라고도 불리는 바둑과 도박을 결합시킨 소재가 흥미로웠다. 하기야 승부를 가릴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게임이 다 도박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뭐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테지만, 영화 속처럼 많은 돈이 오고가는 전문 바둑도박장이 운영되는 모습은 살짝 놀라웠다.

 

    하지만 게임이란 건 그 규칙을 알고 있을 때 봐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문제는 바둑을 두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는 가였을 것이고. 그렇다고 영화를 진행하면서 바둑을 어떻게 두는 지 가르쳐주는 식이 될 수는 없으니 (그랬다가는 오락영화가 아니라 교양영화로..;;)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

 

    때문에 감독이 사용한 전략은 바둑의 대국은 그저 인물들을 만나게 하는 장소를 제공하는 선에 머물고, 대신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캐릭터를 강하게 표현해서, 마치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것처럼 각 스테이지의 보스들을 이기고 최종보스에 이르도록 하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오락영화로서는 크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바둑이라는 소재가 이렇게 소모되어 버리는 것 같아 약간 아쉽기도 하다.

 

 

 

 

    다만 중심 소재인 바둑이 시간이 갈수록 보조적인 위치로 밀려나고, 결국 주인공 정우성과 살수 이범수의 수하들 사이의 주먹다짐과 칼부림으로 끝나버리는 건 확실히 한계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폭력의 과잉이란... 기본적으로 (그게 주인공이든 악역이든) 사람 때리거나 찔러 죽이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캐릭터에는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더구나 군대에서 마음에 안 든다고, 복수하겠다고 총기를 난사하거나, 후임병을 때려죽이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이걸 멋있다고 봐야 하는 건지..

 

    전반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영화 자체는 지루함 없이 볼 수 있었다. (사실 꽤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복수라는 주제에 집중했기 때문인지, 인물들 사이의 케미스트리는 생각보다 약화된 느낌이다. 오락 영화로서는 어느 정도 수준이었지만, 딱 그 정도이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정우성은 남자가 봐도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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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알랭 레네 감독, 랑베르 윌슨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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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유명한 극작가 앙뜨완의 사망소식이, 생전에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연기했던 배우들에게 전해진다. 그들은 장례식에 참석해 앙뜨완이 남긴 유언을 공개하는 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하나 둘 모인다.

 

     어두운 방 안에 모여, 앙뜨완의 집사가 보여주는 영상 유언장을 보던 그들. 영상 속에는 앙뜨완의 대표작이자, 그가 젊은 배우들과 새로운 느낌으로 각색한 에우리디스를 보게 된다. 연극이 어느 정도 진행될 즈음, 그곳에 모인 배우들은 하나둘 자신이 예전에 연기했던 캐릭터에 몰입했고, 함께 어울리며 즉흥연기를 시작한다.

 

     극을 보는 것과 연기를 하는 것 사이의 경계가 애매해질 무렵 연극은 끝나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앙뜨완이 나타난다.

 

 

 

 

2. 감상평 。。。。。。。。   

 

    극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선 그 형식이 독특했던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영화 속에 또 다른 연극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액자구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 속 인물들이 그들이 보고 있는 또 다른 영상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형식의 내적 파괴가 일어난다. 여기에 물론 우리가 볼 때는 계산되고 준비된 것이겠지만, 영화 속 즉흥연기는 또 아주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런 형식상의 독특함을 넘어서는 무엇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즉흥연기라는 설정이 익숙해진 후에는 에우리디스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영화 속 연극의 내용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는데, 이 고대 신화의 현대적 버전을 담고 있는 작품이 또 그다지 아주 매력적인 것 같지 않다는 게 약점. 심지어 저승에 잡혀 간 아내 에우리디스(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지하세계에 내려갔다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억지로 적용하기 위해서 약간 뜬금없는 전개까지 이어진다.

 

 

 

 

     배우들의 연기력만큼은 딱히 흠 잡을만한 데가 없다. 많이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 중견 배우들이었지만, 다들 내공을 의심할 수 없는 수준. 하지만 그 내용 자체가 생각 외로 매력적이거나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심지어 죽은 줄로 알았던 앙뜨완이 다시 살아왔다는데도 그닥 놀랍지 않은 분위기였으니.. 좀 아쉬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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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국가 수준은 국민의 평균 수준을 추월하지 못한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결국 시민 개개인이 각성하고 진보하는 만큼,

꼭 그만큼씩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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