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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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줄거리 。。。。。。。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떠났던 아빠 맥. 아들과 딸이 타고 있던 카누가 뒤집어지는 모습을 보고 호수로 뛰어들었지만, 간신히 두 자녀를 구해 나오던 사이 막내인 조시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경찰의 추정에 따르면 조시는 어린이연쇄유괴범에게 납치를 당해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았고, 맥은 딸의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한동안 깊은 슬픔 속에서 살아가던 맥. 어느 날 그에게 편지가 한 통 도착한다. ‘오두막’(미시를 유괴한 범인이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 있는)에서 그를 만나기 원한다는 내용과 파파’(이는 맥의 아내가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하던 호칭이었다)라는 서명이 있었다. 누군가 장난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맥의 마음은 움직였고 마침 아내가 언니네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친구의 차를 빌려 오두막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맞이해 준 것은 푸근한 인상의 흑인 여성 엘루시아와 그의 아들, 그리고 작은 동양여성 사라유. 그들은 흔히 삼위로 알려진 성부, 성자, 성령이었고, 맥은 사흘 동안 그곳에서 함께 머물며 자신의 오랜 의문과 분노, 괴로움에 대한 대화를 시작한다.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깊은 이해가 담긴 소설.

 

 

2. 감상평 。。。。。。。 

 

   블로그 이웃분(비밀댓글을 달아주신지라 닉네임은 밝히지 않는다)이 추천해주신 책이다. 그 추천이 아니었다면 이 좋은 작품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니 감사한 일이다. 추천을 받은 지 딱 2개월 만에 읽었는데, 요새 읽을 책들이 잔뜩 쌓여있어 리스트의 아래쪽에 이름을 올리면 좀처럼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인격화, 인간화 된 하나님과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그분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된다는 구조는 이 책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미 잘 알려진 데이비드 그레고리의 예수와 함께한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이 모티브를 채용하고 있는 좋은 작품들이고, 무엇보다 성경 그 자체가 이런 구조로 되어 있는 책이 아니던가.

 

   이야기는 힘이 있다. 그것은 우리 삶의 곁에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는 일들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신학도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객관적이고 정확한 언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특성상 조금은 멀게 느껴지는 게 사실. 좋은 신학이 기초를 잡아준다면 좋은 이야기는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좋은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를 맛볼 수 있게 해 준다. 딸을 잃은 아버지라는 주인공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가질 수 있는 신에 대한 회의를 극대화시킨 인물이고, 따라서 그가 가진 고민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렇게 강해진 고민은 해답을 더욱 강하고 솔직하게 찾도록 만드는데, 작가는 이 과정에서 그가 하고 싶었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제시해낸다.

 

   소설은 신, 그 중에서도 (삼위일체라는 독특한 양식으로 존재하시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설명하는 데 힘을 준다. 비슷한 구성과 전개인 예수와 함께 한시리즈의 경우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삶 전반에 걸쳐 조금 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자 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후자 쪽은 딸이 살해된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나오지 않아서 조금 더 캐주얼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삼위일체라는 개념은 신학적으로도 쉽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부분인데, 작가는 삼위일체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이 개념을 실감나게 설명해낸다. 자칫 이런 설명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생각에 빠져들거나, 신비주의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정통적인 기독교 신앙에서 지속적으로 (하지만 조금은 어렵게) 가르쳐오던 내용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소설은 문학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구성과 묘사들을 담고 있다. 특히 요새 유행하는 팩션이라는 방식을 따라서,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인 것 마냥 전해들은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식의 방식은 꽤나 실감나서(생각해 보면 복음서의 기록방식이 이렇다) 실제로 주인공인 맥을 만나 대화하고 싶다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종교문학이기는 하지만 문학성이 떨어진다면 이 책이 얻었던 인기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의 교제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해 줄만한 책. , 약간 깊은 내용이라 위에서 설명한 데이비드 그레고리의 예수와 함께 한시리즈를 먼저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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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성경읽기 - 성경전문가들과 나누는 16편의 흥미진진한 대화
조지 거스리 지음, 홍종락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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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제대로 읽어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먼저는 성경읽기의 의의와 효과, 그리고 필요성에 관한 강조가 들어있고, 이어서 구약과 신약 성경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각 장르의 특성에 맞춰 읽는 방법에 관한 교훈들을 전해준다. 마지막으로는 성경읽기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 어떤 적용점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잘 짜인 구성.

 

 

 

2. 감상평 。。。。。。。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믿는 모든 내용은 성경에서 나오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필요한 내용들을 가르치고 인도하신다고 믿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일부분의 그리스도인들도 그것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쯤 되면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방대한 분량의 책이기도 할뿐더러,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지금으로부터 적게는 2천 년 전에서 많게는 3천 년 이상 차이가 나는 고대에 관한 기록들이다. 여기에 그 문학적 특성까지 역사기술과 시, 묵시록과 예언들 등으로 다양하니까. 그리고 사실 성경에 대한 선이해 없이 무작정 읽어가는 것은 이런 어려움들 때문에 종종 전혀 엉뚱한 방식의 읽기로 빠져버리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적절한 조언들을, 친절하게도 한 권에 담아낸다. 그것도 중구난방으로 던지는 식이 아니라, 좋은 구성 아래 각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들을 저자가 직접 만나 얻은 조언들을 대화체로 설명하고 있으니, 그 내용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기만 해도 성경과 성경읽기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건전한 복음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으며,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이 작업이 얼마나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줄지를 설명하며 부드럽게 도전하는 방식이라 큰 부담 없이 읽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성경에 대해 진지한 탐구를 하기 원하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좋은 안내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추천할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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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태치먼트
토니 케이 감독, 마샤 게이 하든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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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아버지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의 어린 시절 유일한 가족이었지만, 그가 일곱 살이던 무렵 결국 어머니가 약물로 목숨을 끊어버린 상처를 안고 있는 헨리(애드리언 브로디).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기간제 임시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가 이번에 가게 된 학교는 그 지역에서 가장 문제학생이 많아 교육청에서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곳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수업 첫날부터 학생들의 삐딱함이 장난 아니었다. 하지만 헨리의 진정성 있는 모습은 학생들의 반응을 조금씩 바꿔나갔고, 영화는 그렇게 아름다운 힐링영화로 끝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헨리가 안고 있었던 상처는 그리 쉽게 치료될 수 없었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 에리카와 뚱뚱해서 늘 따돌림과 무시를 받던 메레디스는 그런 헨리의 심리에 미묘한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는 좀처럼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2. 감상평 。。。。。。。。  

 

    영화가 단순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공식에 따르려면, 아이들은 두 달 남짓 되는 헨리와의 시간 동안 뭔가 변하기 시작해야 하고, 그가 떠날 즈음에는 모든 것이 회복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듭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실제로 있을 법한 일일까. 물론 아이들은 헨리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아쉬워할 정도로 약간달라지긴 했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아이들은 여전히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고, 불안한 심리상태와 왜곡된 자의식으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건 영화 말미의 한 학생의 자살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헨리라는 이름의 엄청나게 좋은 교사가 불량한 학생들을 개과천선시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그 학교의 다른 교사들도 자기 위치에서 엄청나게 애를 쓰며 일을 해 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학생들에 대항해 놀랄 만큼의 인내력을 발휘하며 그들을 좀 더 나은 상황으로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고작 두 달 있으면서 헨리가 그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가정은 처음부터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헨리 자신의 변화였다. 그는 교실을 통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지만, 역으로 아이들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마음속에 분노와 좌절, 그리고 두려움을 담고 살아온 그는 좀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곁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또 그런 상처를 가지고 있었던 그였기에,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던 학생들을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이점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영화는 미국식 교육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용주의에 기반 한 교육철학에 정복된 교실은 단지 기술만을 습득하는 학원으로 전락했고, 그 교육목표에 이르기 위해서 학생들은 일제고사 같은 시험을 통해 품질검사를 받고(실제로 영화 안에도 이런 시험이 등장한다), 공적 재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법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런 교육은 학생은 물론 교사까지 숨 막히게 만들어 모두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의미심장하게도 대한민국은 이런 미국식 실용주의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고, 그 부작용도 역시 함께 겪고 있다. 이전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만, 김대중 정부 말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개칭하면서 교육에 대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공식화해버린다.(이후 이 이름은 노무현 정부 내내 유지된다) 교육을 인적자원획득의 수단으로 생각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주는 이 천박한 이름은 진보정권 내부의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교육철학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보수정권의 이명박 정부가 바꿔 놓은 교육과학기술부라는 이름 역시 그닥 나을 것은 없었고, 실제 그 정책에 있어선 이전 어떤 정부보다 더 강력한 실용주의적 교육정책으로 교육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전국단위 일제고사 실시로 전국의 모든 학교와 학생을 줄 세우기 시작한 것도 이 때였다.

 

 

    영화 전체가 굉장히 혼란스럽게 편집되어 있다. 사건의 전개 틈틈이 헨리 개인의 인터뷰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짧게 삽입되어 있고, 그 때마다 꽤나 복잡한 철학적 주제들, 사유들을 단편적으로 내뱉는다. 사실 이 부분은 지나치게 무게만 잡으면서 별로 의미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살짝 겉멋?) 하지만 이 부분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는 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기도... 강렬한 분위기, 나름 생각할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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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효는 잘 공양하는 것을 말하는데,

개나 말도 먹여 살리기는 하니

어버이를 존경하지 않으면 무엇이 다르겠는가?

 

- 『공자의 논어』 위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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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프로 바둑기사인 태석(정우성)은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형에 의해 목숨을 건 바둑 도박에 끼어들게 된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바둑에서 지고, 설상가상 살수(이범수)에 의해 형이 살해되고 태석은 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한 조직의 두목을 도와주고 그의 도움으로 싸움을 익히고 복수를 할 수 있는 돈까지 얻은 태석은 출소한 후 살수 일당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자신의 복수를 도울 멤버들을 하나씩 모아 살수의 일당들을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한 태성. 마침내 살수와 직접 대국을 하게 되지만, 살수의 뒤에는 천재적인 실력의 소녀가 있었다. 그리고 모든 대국이 끝날 때 즈음 두 사람의 한 판 대결이 벌어진다.

 

 

 

 

2. 감상평 。。。。。。。。  

 

    흔히 신선놀음이라고도 불리는 바둑과 도박을 결합시킨 소재가 흥미로웠다. 하기야 승부를 가릴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게임이 다 도박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뭐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테지만, 영화 속처럼 많은 돈이 오고가는 전문 바둑도박장이 운영되는 모습은 살짝 놀라웠다.

 

    하지만 게임이란 건 그 규칙을 알고 있을 때 봐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문제는 바둑을 두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는 가였을 것이고. 그렇다고 영화를 진행하면서 바둑을 어떻게 두는 지 가르쳐주는 식이 될 수는 없으니 (그랬다가는 오락영화가 아니라 교양영화로..;;)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

 

    때문에 감독이 사용한 전략은 바둑의 대국은 그저 인물들을 만나게 하는 장소를 제공하는 선에 머물고, 대신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캐릭터를 강하게 표현해서, 마치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것처럼 각 스테이지의 보스들을 이기고 최종보스에 이르도록 하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오락영화로서는 크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바둑이라는 소재가 이렇게 소모되어 버리는 것 같아 약간 아쉽기도 하다.

 

 

 

 

    다만 중심 소재인 바둑이 시간이 갈수록 보조적인 위치로 밀려나고, 결국 주인공 정우성과 살수 이범수의 수하들 사이의 주먹다짐과 칼부림으로 끝나버리는 건 확실히 한계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폭력의 과잉이란... 기본적으로 (그게 주인공이든 악역이든) 사람 때리거나 찔러 죽이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캐릭터에는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더구나 군대에서 마음에 안 든다고, 복수하겠다고 총기를 난사하거나, 후임병을 때려죽이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이걸 멋있다고 봐야 하는 건지..

 

    전반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영화 자체는 지루함 없이 볼 수 있었다. (사실 꽤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복수라는 주제에 집중했기 때문인지, 인물들 사이의 케미스트리는 생각보다 약화된 느낌이다. 오락 영화로서는 어느 정도 수준이었지만, 딱 그 정도이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정우성은 남자가 봐도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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