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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컨스피러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2년 10월
평점 :
1. 줄거리 。。。。。。。
한 기자가 뺑소니 사고로 죽게 된다. 그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님을 알게 된 동료 기자 의림은 자체적으로 이를 조사하던 중 ‘북학인’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과 접촉하게 된다. 그의 지시대로 프랑스와 미국 등지를 다니며 ‘임무’를 수행하던 의림은 스위스 비밀계좌에 입금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빼돌린 전두환이 돈을 환수하려는 계획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이건 더 큰 계획의 일부였을 뿐이고, 북학인은 그렇게 만든 돈으로 세계 유수의 한국 과학자들을 국내로 영입하려고 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인텔에서는 현존하는 D램 반도체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난 새로운 반도체를 개발해냈고, 이것이 장차 군수분야에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잠재적 적들이 같은 기술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런 기술을 개발할 가능성이 있는 삼성전자의 지배권을 빼앗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2. 감상평 。。。。。。。
뭔 말을 하려는 건 알겠다. 전국의 머리 좋은 애들은 모두 법대나 의대로 몰려가고,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이 결코 바람직할 리 없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이런 상황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소설에 ‘삼성전자’를 전면에 내세웠던 것도 그런 이유고.
역시 문제는 그 방식과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는 기술 부분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저자의 ‘우파 본색’(부정적인 의미보단 중립적인 의미로 보면 되겠다)이 여실히 드러난달까. 소설 속 ‘삼성전자’는 ‘오로지 과학기술로만 승부하여 우리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는 회사’이고, 작가는 ‘이 회사를 우리 사회가 아낌없이 칭찬하고 그것을 보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뜻에서 실명을 그대로 썼다’(8)고 한다.
(주식의 0.1%만 가지고서도 복잡한 지배구조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면서, 자기 아들에게 그 모든 특권을 물려주기 위해 불법증여하다 법적 처벌까지 받았던 그 회사와 이름이 같은 건 실수인가 싶을 정도. 심지어 소설 속엔 이건희 ‘회장’이 등기임원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사실 그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공식적인 직책을 맡고 있지도 않다. 이쯤 되면 차라리 가상의 기업을 만드는 게 더 나았을 뻔..)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통해 어느 정도 작가의 성향은 짐작하고 있었다. 사실 제대로 된 보수, 혹은 우파라면 자기 민족의 우수성을 인식하고(나치나 일본 극우파 식의 배타적 우수성 주장과는 다르다), 국익(이건 단지 특정 정권의 이익이란 의미가 아니다)을 우선하는 태도와 긍정적 비전을 제시하는 식의 행동방식을 보이기 마련. 작가의 작품들에 이런 면들이 반영되는 걸 보며 나름 괜찮은 보수파이구나 싶었는데, 이쯤 되면 작가가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여기에 대한민국 학생 모두가 이공계열로 가게 해 달라는 소설 속 비전은 약간의 수사적 과장이 가미되어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한 마디로 오버다. 여기엔 경제지상주의적 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인문학에 대한 몰이해도 살짝 엿보인다. 다른 작품들에서 그토록 ‘역사의식’을 강조하던 작가가 말이다. 필(feel)에 꽂혀 쓴 책인 건 알겠는데, 과유불급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
사실 소설의 구조나 전개 부분도 완성도가 그리 높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초반에 한참 뛰어다니는 기자 ‘의림’은 어느 샌가 사라져버리고, 자랑스럽게 유체이탈까지 떠벌리는 북학인이라는 캐릭터도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여기에 지나치게 허술한 CIA의 삼성 접수 음모와 너무나 쉽게 마무리되는 결말까지.. 역사 소재를 가지고 작품을 썼을 때는 괜찮았던 저자였는데, 확실히 경제 쪽은 아마추어적 느낌이 물씬 난다.
차라리 박정희의 비자금이라는 소재와 삼성 접수라는 소재를 분리해서 다른 작품으로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여러모로 저자의 이름값을 못하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