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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스 스테이션
카스퍼 바포드 감독, 존 쿠삭 외 출연 / 루커스엔터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CIA 현장 요원인 에머슨(존 쿠삭)은 라이오를 통해 전달되는 암호화 된 숫자를 듣고 지시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임무를 수행하던 중 목격자를 남기게 되고, 그를 죽이러 집으로 찾아갔다가 그의 딸을 만나게 된다. 도대체 왜 그러느냐는 물음을 뒤로 한 채 그녀 역시 에머슨의 동료에 의해 제거되고 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일에 회의감이 생긴 에머슨. 위에서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겸 그를 잉글랜드의 방송국(으로 위장된 암호화된 숫자를 단파 라디오 주파수에 맞춰 방송하는 기지)으로 보낸다.
방송국에서 암호방송을 담당하는 캐서린을 경호하며 기지를 지키던 에머슨은 어느 날 캐서린과 함께 기지로 돌아오던 중 갑작스런 총격을 받는다. 누군가 기지에 들어가 앞선 근무자를 위협해 CIA의 주요 요인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보낸 것. 가까스로 들어간 기지 속에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두 사람.

2. 감상평 。。。。。。。
오프닝 자막에 주연으로 ‘존 쿠색’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걸 보면서 이 영화의 규모가 짐작이 됐다. 일단 그 이름 자체가 약간은 비주류의 느낌이랄까,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엄청난 감동을 주거나, 무릎을 탁 치는 치밀함을 보여주는 건 아니었으니까. 살짝은 마이너 정서도 있고, 딱 그 정도 수준의 짜임새를 가진, 종종 주변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과장된 연기까지.. 전형적인 B급영화지만, ‘나쁜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나름의 매력이 있는 그런 영화.
이 영화는 그래도 나름 괜찮은 시작을 가지고 있었다. 암호화 된 지령을 받고 목표인물을 살해하는 CIA 요원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양심적 가책, 회의감을 갖게 된다는 설정은 나름 다음 전개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습격당한 기지까지는, 정말로 괜찮았다.
하지만 그 이후 에머슨과 캐서린은 그 기지에 갇히더니 별다른 걸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기지를 공격하기 위해 나온 세 명은 너무 적었고(제작비 때문이었을까..;;), 그들이 일으킬 수 있는 일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겨우 그 정도로는 존 쿠삭 특유의 허세가 작렬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조직의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일이 정당한가라는 질문,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일해오던 동료마저 죽이라는 명령과 갈등처럼 제법 묵직한 소재들이 있었지만, 그걸 긴장감 있게 엮어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나보다.

정부의 명령이라고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지명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영화 속 정보국 요원들을 보면서. 상관의 명령이라고 인터넷 상을 돌아다니며 여당 후보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실어 나르고, 그러면서도 막상 일이 발각되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국정원, 기무사 요원들이 문득 떠올랐다. 자신들이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은 그들이 지켜야 할 사람들을 도리어 위협하고, 조작하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환각제와도 같다. ‘국가’와 특정 성향의 ‘정권’을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시 해버리는 최소한의 분별력도 없는 인간들이 권력을 손에 넣으면 결국 그 나라는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증거를 조작해 한 탈북자를 간첩으로 몰고 가려고 했던 국정원의 시도가 들통 나자, 관련된 중간관리자가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도 있었다. 요원씩이나 돼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죽는지도 제대로 숙지가 안 됐는지 용케 살아났지만, 곧 그 충격으로 단기적인 기억상실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절묘한 주치의의 소견이 덧붙여지면서 존 쿠색도 차마 쓰지 못할 유치한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7, 80년대에나 통할 어이없는 설명을 뻔뻔스럽게 내는 것도 우습지만,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 잘난 정부는 한심한 수준이다. 존 쿠색의 영화보다 더 우스워지는 현실이라니.. 이거 웃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