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정요 (양장) - 리더십의 영원한 고전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1
오긍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폭정을 저지르고 있던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롭게 세워진 당나라의 일등공신은 초대황제인 고종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었던 이세민, 태종이었다. 그는 ‘정관’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는데, 이전 세대의 황제들과는 달리 ‘정관의 치세’라는 명칭이 생길 정도로 유능한 정치력을 보여주었다. (만년에 고구려 정복하겠다고 헛힘만 빼지 않았더라도 그의 치세는 더욱 빛났으리라)

 

    이 책은 그런 태종과 신하들이 남긴 통치의 모범에 관한 기록이다. 태종이 내린 지시사항, 신하들과의 토론, 현신(賢臣)들이 올린 각종 상소들 등이 주제별로 정리되어 실려 있다.

 

 

2. 감상평 。。。。。。。  

 

    고대로부터 제왕의 통치에 교과서처럼 사용되었던 책 가운데 하나다. 대부분 전제군주의 통치 같은 건 폐지된 요즘은 ‘리더십’에 관한 고전 정도로 인식되어 읽히는 것 같다. 원문의 구성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각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 읽기에 편했고, 가능하면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 번역되어 있어서 따분한 감은 없었다.

 

    많은 부분이 백성의 어려움을 살피고, 사치나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좋은 신하들을 선발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식의 기본적인 정도(正道)에 대한 관점들을 담고 있다. 사람들이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힘들고 때로 귀찮기 때문에 못하는 것들 말이다. 여러 신하들은 늘 고대의 성현들과 역사를 인용하며 바른 군주의 길에 대해 끊임없이 떠든다. 그 시대엔 황제 노릇 하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책을 읽어가면서 특별히 와 닿는 포인트는 역시 인재에 대한 태종의 사랑과 좋은 인물을 얻기 위해 늘 목말라 했던 그의 열정이다. 마치 삼국시대 조조를 보는 듯 하달까. 뿐만 아니라 그는 그렇게 모은 인재들의 건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때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날카로운 상소문을 보면서도 태종은 분노하기 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도리어 상을 내린다. 자신이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해 나가지 않으니 아랫사람들도 신이 나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왕을 도우려 한다. 뭐 이런 느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종이 모든 의견을 받아들인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어떤 신하가 거짓으로 아첨하는지 혹은 어진 신하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거짓으로 화를 내 보라는 한 신하의 건의에, 군주로서 신하들에게 정직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들의 정직을 바라겠느냐며 단숨에 물리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런 통치자라면 과연 진심으로 따를만 하지 않은가.

 

 

    자연히 오늘의 리더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국가 재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으면서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쁜 대통령과 자리보전이 전부인 정부의 고위공무원들, 국민의 삶 따위는 관심 없고 어떻게든 권력을 더 잡을까만 고민하는 잉여 국회의원들. 이런 사람들을 리더라고 뽑아 놓으니 나라꼴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법집행을 해야 할 경찰과 검찰은 권력자의 눈치 보기 바쁘고(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를 비롯한 각종 권력기관들은 도리어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나아가 위협하면서도 뭐가 잘못되었냐는 식의 적반하장이다.

 

    물론 대통령 하나 제대로 뽑는다고 해서 단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겠지만, (기득권자들의 온 힘을 다한 저항을 뚫고 나가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래도 좋은 리더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양지차가 아닐까. 우리에게도 태종과 같은 소통할 수 있는 리더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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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볼 때는 모든 교회의 ‘극단’ 분자들은 서로 가까운 반면,

 

각 교회의 자유주의적이고 ‘관대한’ 사람들은 서로 연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교리에 충실한 기독교 세계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들 수천 명이

 

계속 같은 얘기를 하는 곳입니다.

 

 

- C. S. 루이스, 『피고석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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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가족 모임을 위해 애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인 몰리(오브리 달러)는 공항에서 그가 유부남인 걸 알고 대성통곡을 한다. 우연히 만난 오빠 친구 조쉬(셰인 맥리)와 함께 동행하던 중, 조쉬의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죽기 전 아들의 신붓감을 볼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조쉬는 즉흥적으로 약혼녀와 함께 가고 있다고 대답을 해 버린다. 그렇게 시작된 가짜 약혼 소동.

 

     천하의 바람둥이 조쉬였지만, 그런 그와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썩 괜찮은 사람인 걸 알게 되는 몰리. 결말은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

 

 

2. 감상평 。。。。。。。   

 

    시종일관 유쾌하게 볼 수 있었던 영화다. 감독은 영화 곳곳에 개그코드들을 너무 튀지 않게 삽입해 놓았고, 무엇보다 주인공 두 사람의 상황과 캐릭터가 영화의 분위기를 흥겹게 만든다. 다행스러운 건 이 과정에 생뚱맞은 억지스러움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물론 장르 특성상 ‘우연’이 좀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고)

 

     반쯤은 장난처럼 시작된 연극이었지만, 두 남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랑한다는 것, 또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가게 된다. 나름 메시지도 담으려고 한 영화라는 말.

 

 

     하지만 뭐 그런 거 다 읽어내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한 영화다. 주인공 두 명의 알콩달콩한 연애기와 심리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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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닥터
랜스 댈리 감독, 타라지 P. 헨슨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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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레지던트 1년차로 일하고 있는 마틴(올랜도 블룸)은 어느 날 가벼운 염증으로 입원한 미모의 다이앤(라일리 코프)을 만나게 된다. 처음엔 순수하게 의사와 환자로서의 만남이었지만, 퇴근 후 별다른 취미도, 가깝게 지내던 사람도 없던 마틴에게 환한 미소와 미모까지 갖춘 다이앤의 친절은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이었다.

 

     퇴원 후 마틴에게 관심이 있던 다이앤의 언니의 초대로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마틴은 다이앤을 다시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하게 되고, 그녀의 약을 바꿔치기 하기로 한다. 계획대로 다이앤은 재입원을 하고, 마틴은 그녀의 퇴원을 늦추기 위해 점점 더 위험한 짓까지 하게 된다. 

 

 

 

 

2. 감상평 。。。。。。。  

 

 

     일단 소재 자체가 신선하다. 환자를 사랑(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여튼)하는 의사와 매려적인 환자. 의사라는 게 어딘가 아파야만 볼 수 있는 사람이니, 의사는 그녀를 계속해서 만나기 위해 치료를 지연시키고 방해하기까지 한다. 물론 그 자체로 의료인으로서의 윤리를 심각하게 어긴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랑에 눈이 먼 마틴에게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영화 속 마틴은 내향적인 성격에 별다른 가구도 없는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사교성도 별로 좋지 않고, 일이 생기면 혼자 속으로 삭히는 스타일로 자라면서 연애 같은 걸 제대로 해 봤나 싶은.. 감독은 다분히 마틴의 그런 심리적 미숙함에, 레지던트 1년차의 기술적 미비가 더해져 다이앤의 목숨까지 앗아가고 말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혼자 사는 의사를 주의해야 하는 걸까..;;;

 

 

     사랑이란 주고받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마틴은 같이 발걸음을 맞춰 나가야 하는 걸, 혼자 업고 뛰려고 했고 결국 파국을 맞는다. 더욱 아쉬운 건 다이앤 역시 마틴에게 아주 마음이 없는 게 아니었다는 점. 더 빨리 금을 얻기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다는 어리석은 농부 부부처럼, 상대를 더 빨리 독점하기 위한 마틴의 욕심은 상황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망쳐 놓는다.

 

     결국 중요한 건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의사의 자격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책상 앞에 앉아서 엄청난 양의 지식을 쌓았지만,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은 제로에 가까운 사람은 의료 기술자일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의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소중한 자녀들을 잃은 부모들이 시종일관 어리숙한 대처만 거듭하고 있는 정부를 향해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걸 보고 정몽준 의원의 아들이 SNS에 국민들이 미개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식으로 글을 올렸단다(원문을 몇 번이고 읽어봤지만 다른 식으로 읽을 여지는 전혀 없었다). 수십 조 재산에 20년 넘게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두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개해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공감능력이 떨어져 보인다. 흥분한 유가족을 국민을 선동하려는 외부세력이라며 비난했다는 권은희 의원이나, 이 와중에도 빨갱이 운운하는 한기호 의원 역시 마찬가지.

 

     소통의 능력이 메마르면 자연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나 조직은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살기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을 게다.

 

 

     감독은 이 소재를 가지고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제법 괜찮은 스릴러물을 만들어 냈다. 올랜드 블룸의 연기를 간만에 볼 수 있었던 것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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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건한”은 “미국의 명령을 잘 따르는”의 뜻을 가진 용어지요.

“미국의 명령을 잘 따르지 않는” 경우는 “과격한”이라고 하고요.

“과격한”은 좌파나 우파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극우 인사도 미국의 명령을 잘 따르지 않으면

“과격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 노암 촘스키,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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