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 대유행으로 가는 어떤 계산법, 개정판
배영익 지음 / 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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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북극해 인근에서 조업을 하던 한국 국적의 원양어선에서 모든 일은 시작되었다. 사고로 낡은 어창의 냉동장치가 망가지자 선장은 유빙을 깨어 넣어 잡은 명태의 신선도를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유빙 안에 있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선원들을 감염시키면서 150여 명에 달했던 선원 중 단 두 명만 제외하고는 모두 참혹한 모습으로 죽고 만다. 생존자 중 한 명인 ‘어기영’은 자신이 보균자라는 사실을 모른 채 돌아다니다 여러 사람들을 감염시키기 시작했고, 치사율 100%에 이르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서서히 전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질병관리본부 산하에 꾸려진 특별 팀에 사연 많은 윤규진 박사를 비롯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좀처럼 상황은 호전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치명적인 변종 바이러스까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전국은 바이러스의 공포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만다.

 

 

2. 감상평 。  

 

     영화계에도 잠시 몸을 담았던 작가라 그런지, 이야기를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아마도 처음부터 영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면서 소설을 쓴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변형이 일어나겠지만, 큰 틀은 꽤 흥미롭게 진행된다.

 

     작가가 무엇보다 공을 들인 것 가운데 하나는 캐릭터 구성이지 않았나 싶다. 특히 각각 이야기의 전후반을 이끌어 가는 인물들인 ‘어기영’과 ‘윤규진 박사’ 캐릭터는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다. 덕분에 전반부에서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 어기영을 보며 흥분하기도 하고, 후반부에는 윤규진을 따라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바이러스 치료제를 생각하며 초조해지기도 한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지속적으로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기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종종 전문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이야 정확하게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니, 잘 모르겠으면 대충 감으로 넘겨도 충분하다. 그리고 약간의 설명은 전체적인 내용을 좀 더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주석 정도로 보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영화화는 어떻게 되고 있는 걸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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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기독교가 과학이 과학의 시각에서 일시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세계의 틈새들을 찾는 일에만 몰두한다면,

기독교 본연의 가장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세계의 틈새들과 외직 구석에서 발견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주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이다.

오직 그분만이 어떤 것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실 수 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실 수 있다.

- 알리스터 맥그래스, 『우주의 의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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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신문들을 동원하여 딱 2주일만 공작을 벌이면

양과 같이 순한 대중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몇몇 정당들의 야비한 목적을 위해

유니폼을 입고 사람들을 죽이고

죽음을 당할 태세를 갖추게 된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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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독일군 장교로 복무하는 빌헬름과 그의 동생 프리드헬름, 빌헬름을 좋아하지만 말은 꺼내지 못하고 있는 샬롯, 유대인인 빅토르와 그의 연인이자 가수지망생인 그레타, 이 다섯 명의 친구들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함께 모여 조촐한 파티를 한다.

 

     장교인 빌헬름은 물론 그의 동생인 프리드헬름도 병사로, 샬롯은 야전병원 간호사로 지원해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고, 민간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애와 노인 할 것 없이 쏴 죽이는 전쟁의 비열함을 목격한 그들의 마음도 점점 망가지게 된다. 여기에 후방에 남아 있던 그레타는 자신의 연인인 빅토르를 독일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게쉬타포 소속의 장교와 부적절한 관계까지 맺게 된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파괴되어 가는 다섯 명의 친구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영화.

 

 

 

 

2. 감상평  

 

    독일은 전범국이다. 그리고 이건 단지 히틀러와 그의 측근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그 무모하고 비열한 전쟁에 의문을 품지 않은 채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수많은 독일 국민들 모두의 책임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후 독일은 철저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끊임 없이 국민들에게 재교육하고 있다. 처음에는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이 작품 역시 크게 보면 그 일환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네오 나치’니 하는 정신병자들도 설치고 있다는 소식도 있지만, 적어도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망발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계속해서 전쟁책임을 부인하고, 아시아의 번영을 위해 일본이 나섰다느니 하며 여전히 자아도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력이 정부를 장악하기까지 하고 있으니,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만년 2류 국가의 처지를 벗어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영화는 전쟁이 일으키는 여러 부작용들을 너무 자극적인 영상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실감나게 그린다. 자신들이 침략군이면서도 협조하지 않는 민간인들을 살해하는 잔혹함, 근거 없는 우생학으로 유태인들을 학살하는 것은 물론, 그런 쓸모없는 전쟁에 어린 학생들까지도 동원하는 (뭣도 모르는 것들이 전쟁에 나가 영웅이 되겠다고 설쳐대는 현상이 늘어나는 건 그 나라에 가망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다) 모습 등이 과장되지 않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아직도 전쟁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관찰되는 이 나라에, 또 전쟁을 게임으로 배우는 게 전부인 어린 세대들에게 한 번쯤 권해줄 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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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그만두는 방법 - 국가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과 문화
니시카와 나가오 지음, 윤해동 외 옮김 / 역사비평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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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흔히 ‘문화’라고 하면 정치나 무력, 경제적인 요소로부터 자유로운, 좀 더 평화적이고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만한 무엇 정도로 느끼곤 한다. ‘민족’이라는 단어 역시 막연히 어떤 혈통을 따라 정의되는 한 무리의 사람들 정도의 ‘매우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니시카와 나가오는 이 두 가지 개념이 왕정 이후의 국민국가를 수립하는 가운데 그 구성원들을 통합시킬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창안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문화와 문명, 민족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발전해 온 역사적인 과정을 추적한다.

 

 

2. 감상평   

 

     문화나 문명이라는 개념, 나아가 민족이라는 개념까지도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이 새롭다. 이제까지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꽤나 합리적인 증거와 논리로 뒷받침 된 채) 부정될 때 느껴지는 당혹감이랄까.

 

     하지만 책 전체를 두고 보면, 이 간단한 주장은 너무 일찍 나와 버린 반면, 그것을 보충하고 주석하는 과정은 좀 길고 산만하다는 느낌이다. 저자 자신이 일본인인지라 일본에서 나온 저작들과 저자들이 자주 인용되는 것이야 어느 정도 감안하더라도 이 책은 확실히 일본 국내 독자들을 향해 있다 싶을 정도로 그런 부분이 많은 느낌. 일본 역사나 사상계에 관한 조예가 부족한 나 같은 독자들에겐 좀 와 닿지 않는 부분들이다.

 

     물론 저자의 주장을 통해서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일본의 팽창주의나 안하무인적인 태도 등의 원인을 짐작해 볼 수도 있었다. 자국의 문화와 민족이 아시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지극히 유아독존적인 사고방식은, 전후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의 사이클 속의 조증(躁症)의 시기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또 울증(鬱症)으로 변할지도..

 

 

     국민국가로 전환된 이후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국민’이니 ‘민족’이니 하는 개념들을 강조해왔다. 오늘날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세력들이 대부분 보수나 우파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민족’이라는 게 어디 무 자르듯 금을 그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생각하면 애국심이란 건 보수 우파가 손쉽게 자기들의 권력구조를 강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입만 열면 반만년 단일민족 어쩌구 하지만, 우리가 정말 단일민족인가? 고대 국가 시절만 해도 북방계와 남방계가 확연히 구분되고, 역사상 수많은 주변 민족들과 교류와 통혼을 해 왔을 게 분명한데.)

 

     요즘은 문화, 민족문화라는 것이 예전의 ‘민족’의 자리를 보완, 대체해내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역시 정확히 정의하기도, 구분하기도 어려운 개념임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김치가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의 한 모습이라고 할 때,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김치를 사랑하고 많이 먹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다. ‘우리의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인가? 그런 식으로 나가는 극단이 일본의 극우파들, 군국주의자들, 전범추종세력들 아니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게 맞다. 이 책의 제목처럼 어쩌면 ‘국민을 그만두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책 속에서는 이 부분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다. 현상을 분석하기는 했지만 좀처럼 어떤 미래의 주장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달까.

 

     핵심적인 개념, 주장만 포착하면 굳이 모든 내용을 정독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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