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보면 이 책 역시 비슷한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구약의 여러 율법 규정들 속에 인권 개념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고 (이게 비유적인 표현인지는 확실치 않다)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인권” 개념의 핵심에는 인간의 자유와 생명에 대한 존중, 적절한 휴식과 노동 사이의 조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신분에 따른 차별 배제 등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물론 성경의 율법 속에서도 이런 개념들의 초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어차피 인간을 오랜 진화의 산물로, 단순한 원소들 사이의 복잡한 결합 따위로 여기는 현대의 유물론적 세계관 속에서 인간의 특별함을 주장하는 건 논리적인 모순이라고 생각한다(그러다보니 최근에는 동물에게도 정치적 권리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유물론에 따르면 이를 반박할 근거가 별로 없어 보인다). 인권 개념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특별함을 지지해주는 근본적인 사상이 필요할 텐데, 이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피조물로 보는 관점 이상 가는 게 없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저자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근대의 발명품인 “인권 개념”을 별다른 설명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건 혼동의 여지를 주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책의 구성 역시 근대적 인권 개념에서 언급하는 것들을 가져와 그 틀로 구약을 설명하는 식이다. 나중에 나온 개념으로 이전에 나온 문서를 해석하는 셈인데, 일단은 사건의 선후가 뒤집힌 방식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구약의 본문을 현대적 개념으로 재정립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기독교를 현대인들에게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소개하기 위해서 그 개념을 당대의 틀에 맞춰 변형시키는 것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오랜 작업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저자가 현대적 인권 개념이 담겨 있다고 보는 구약 율법 규정들은 정확히 일치되지 않는 면들이 있다. 예를 들면 고대에는 노예와 자유민 같은 분명한 신분제도가 있었고, 남녀 사이의 구분도 분명했다. 많은 장 말미에 저자는 이런 부분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코멘트를 덧붙이는데, 다른 말로 하면 현대에 받아들일 수 있는 구절과 그렇지 않은 구절을 오늘날의 기준으로 판단해 선택, 제거한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되면 우리가 따르는 게 구약의 말씀인지, 현대의 윤리인지부터가 좀 애매해진다.
이 모든 과정에서 문서설을 적극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저자는 구약의 본문들을 자유자재로 재단하고 그 순서를 재배열해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매끄러운 역사 모델을 구축한다. 이렇게 보면 저자는 구약 전반을 임의적으로 선별하고, 편집해서, 주장을 이끌어 내고 있다. 물론 이런 관행이 신학계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알고 보면 ‘확실’한 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