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하나의 약속
감독/김태윤 | 출연/박철민, 윤유선, 김규리, 박희정
1. 줄거리 。。。。。。。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동생 대학교 학비 벌고, 부모님에게 보탬이 되겠다고 취업에 나선 윤미.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진성전자에 들어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채 2년이 되지 못해 그녀는 백혈병에 걸려버렸고 그렇게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만다. 윤미의 아버지인 상구(박철민)는 딸 이외에서 같은 공정에 세 명 이상이 백혈병에 걸렸고, 그 이외에서 비슷한 암들이 놀랄 정도로 높은 비율로 발생하고 있음을 알고 노무사 난주(김규리)와 함께 산재인정을 거부하는 건보공단(그리고 그 뒤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진성그룹)에 대한 길고 힘든 싸움에 나선다.

2. 감상평 。。。。。。。
인물의 이름과 회사명은 가공의 것이지만, 내용 전체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영화 속 진성전자는 삼성전자를 가리킨다는 건 누구나 아는 부분이고, 영화 속 등장하는 회유와 감시, 적반하장식의 태도와 반성하지 않는 모습 역시 유사한 사건들이 있었을 때 실제로 그들이 보여주었던 반응이기도 하다. 국내 최저수준의 재해라는 거짓 신화의 뒤편에는,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퇴사를 종용하고 입막음을 하는 대기업의 비열한 행태가 있었다.
온통 하얀 작업장에, 일하는 사람들도 온몸을 가리는 하얀색 옷을 입고 있는 반도체 공장은 문외한들의 눈에는 말 그대로 청정지역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얀색의 방진복은 처음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옷이 아니라, 노동자들로부터 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을 외부의 유해성 물질로부터 보호하는 기능 따위는 전혀 없다는 뜻. 그리고 이건 그들이 노동자들을 보는 시선을 대변해준다. 인간보다 제품생산이 우선이 되는 공정.. 최첨단 산업이라는 반도체 공장의 실제 모습이다.
영화 속 등장하는 아버지는 이런 거짓된 현실에 맞서 싸우는 전사의 이미지는 아니다. 그는 그저 국민학교만 졸업한 ‘무식한 택시기사’일 뿐이고, 딸의 어이없는 죽음에도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고 돈 몇 푼으로 끝내려는 안이한 재벌그룹을 상대로 최소한의,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많이 배웠다는 대기업 간부들보다 훨씬 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가리켜 빨갱이물이 들었다느니, 데모쟁이라느니, 돈에 미쳤다느니 하며 손가락질을 하기 바쁘고, 가족조차 그런 그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사업에 영향이 있다는 이유로 비난한다. 여기에 자기가 몸을 관리 못해서 병에 걸린 것이라는 힐난까지.. 너무나 멍청해서, 그래서 자신들이 욕을 해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도 구별하지 못하는, 이 땅의 수많은 필부필부의 모습을 지나치리만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오히려 슬펐던 장면이다.

배우들은 열심히 연기했다. 그러나 제작비도 충분하지 못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장면들을 만들어내기엔 좀 힘에 부쳤던 느낌이다. 여기에 시나리오 상에도 뭔가 탁 치는 대사가 부족했던 점도 아쉽다. 하지만 이 모든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