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을 벗는 동안 뱀은 앞을 보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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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춤
윤기형 감독, 이용한 목소리 / 이오스엔터 / 2012년 4월
평점 :
일시품절


1. 줄거리   

 

     여행가 겸 시인과 CF 감독이 자신의 주변에서 발견한 길고양이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살아가고, 길에서 사랑하고, 길에서 죽는 녀석들의 삶을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귀찮고 불편하게만 생각했던 그들도 우리와 함께 이 공간에 살 자격이 있는 하나의 생명임을 깨닫게 된다.

 

 

2. 감상평    

 

     사람들은 흔히 그 녀석들을 ‘도둑고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녀석들이 뭘 훔쳐가고 빼앗아 가던가. 기껏해야 다 먹을 수도 없으면서 욕심껏 샀다가 버린, 혹은 먹을 수 없는 것이라 어차피 버리는 것들을 좀 가져가는 것뿐인데 말이다. 지번인지 도로명주소인지 붙여 놓고 니 땅 내 땅 가르는 거야 인간들 마음대로 그어놓은 선인데, 자기들끼리 그 계약을 지키고 말고 하는 거야 뭐라 하겠냐만은 그걸 동물들에게까지 지키라고 강요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웃기다. 고양이들이 뭘 그렇게 잘못해서 때리고, 쫓아내고, 괴롭히는가.

 

     전문적인 도구나 특수 장치가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주변의 일상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를 사용한 것이 오히려 더 잘 어울렸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고양이들도 그렇게 평범하고, 익숙한 모습의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녀석들이다. 한 시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감독은 인위적인 개입은 최소화시키고 그냥 그렇게 녀석들의 삶을 차분히 따라가는데도, 그 모습이 어느 작품 못지않게 예쁘고 귀엽다.

 

 

 

 

     생명을 묘사하고 담아내는 작품, 그리고 그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관점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이렇게 작은 경외감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준다. 영화 속 등장하는 눈을 찌푸려지게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 - 고양이들이 쓰레기 봉지를 찢는다고 다 죽여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나이 값 못하는 노인과 새끼 고양이를 ‘버리려고’ 나왔다가 친구가 갖고 싶다고 하니 돌변해서 돈 주고 사라는 싹수가 글러 먹은 어린 아이 -은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결여되어 있기에 참 추하다.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을 영화다. 생명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은 어린 시절부터 길러주는 게 더 큰 유익을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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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늘 ‘우리’, 즉 일반 대중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에 신물이 납니다.

조상이나 부모, 교육 시스템이나 다른 누군가를 탓할 뿐,

‘우리’ 자신을 탓하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특별대우죠.

늘 완벽하고 죄가 없다는 식입니다.

 

- C. S. 루이스, 『루이스가 메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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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각각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네 명의 수사관(사대명포)과 그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제갈정아(당연히 엄청난 고수다) 속한 신후부. 전작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이들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세력은 신후부의 수장인 제갈정아를 함정에 빠뜨리고, 결국 그는 또 다른 수사기관의 수장인 포신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갇히고 만다. 모든 증거가 제갈정아를 가리키는 것 같았고, 그는 뭔가를 알면서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

 

     한편 사대명포 중 한 명인 무정(무려 ‘유역비’다!!)은 가족을 죽인 암살자들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제갈정아를 친 피붙이처럼 여기고 의지하지만, 열두 명의 암살자들을 모두 죽였다는 제갈정아의 말과 달리 그 중 한 명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결국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와중에 사건은 어찌어찌 또 알아서 해결이 되어 간다.

 

 

 

 

2. 감상평    

 

 

     어렸을 때 무협지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느 친구들처럼 서너 작품은 중학생 시절 읽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검에서 기가 뿜어져 나오고, 맨손으로 수많은 적들을 물리치는 일종의 판타지는 그 또래 아이들에게 꽤나 인기가 많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딱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여러 사람들이 돌려보던 무협지의 시대는 가고 이제 이런 세련된 무협영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확실히 눈에 보이는 매체가 가진 힘은 대단하니까.

 

     좀 과한 CG가 눈에 보이긴 하지만, 확실히 영상은 예전 무협영화 같은 걸 떠올리면 안 될 정도로 세련되어 졌다. 여기에 중화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미녀 중 하나인 유역비가 주연급으로 딱 등장하시고, 엽문4에서 봤던 황추생의 중후한 연기와 무술솜씨까지 볼 수 있으니 확실히 눈은 즐거운 작품.

 

 

 

 

     다만 시나리오가 아쉽다. 시리즈물로 제작된 영화다 보니, 각각의 인물들의 성격에 대한 소개는 앞서 첫 번째 작품을 통해 되었을 거라는 정도는 감안하더라도, 주연인 ‘사대명포’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고, 제갈정아를 제거하려는 세력의 수장의 의도가 딱히 위협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얼굴만이 아니라 복장까지도) 변할 수 있는 수하까지 두었으면서 직접 황제를 공략해서 왕이 되는 것도 가능할 법 한데 굳이 멀리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제갈정아를 해치려는 복잡한 계획을 세우는 것에 비해 나라를 뒤엎을만한 엄청난 계획을 보여주지도 못한다. 악역이 그다지 매력이 없으니 이쪽에 힘이 실리지 않고, 결국 영화는 유역비의 과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전반적으로 뭔가 폼은 잡은 것 같은데,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느낌. 그래도 어느 정도 재미를 주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는 했다. 차기작에선 좀 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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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석의 하나님 믿음의 글들 291
C. S.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다양한 지면과 기회를 통해 기독교의 핵심적 가치들을 변론해 온 C. S. 루이스의 미출간 원고들을 모아 다시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편집자의 수고를 거쳐서 한 권으로 모아진 것.

 

     책의 첫 번째 부분은 교리적인 차원에서의 공격에 대한 반론을 시도하고 있으며, 두 번째 부분은 교회 안의 반 기독교 정서에 관해 보다 보편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 교리에 대한 변증을 한다. 세 번째 부분은 좀 더 개인적인 차원의 에세이들을 모은 부분이고, 마지막 네 번째 부분은 그의 편지들 중 변론적 성격을 가진 공개적인 서신들을 묶어놓았다.

 

 

2. 감상평     

 

     이런 식의 책들이 나오는 상황 자체가, 이제 루이스의 새로운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미 타계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워낙에 다양한 저작들을 써놓았던 저자인지라, 최근 몇 년 동안은 꽤나 풍성하고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봄날이 영원할 수는 없는 거니까.

 

 

     특별히 이 책에서 루이스는 이전의 다른 변증적 성격의 책들보다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반 기독교 정서를 상대하고 있다. 여기서 ‘반 기독교’란 단지 기독교에 반대하는 유물론자들이나 회의주의자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는 기독교를 오늘의 사회에 맞게 적응, 혹은 개량시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기독교의 모든 걸 변질, 훼손시키고 있는 현대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까지 포함한다.

 

     루이스는 현대인들이 하나님을 피고석에 앉혀두고 스스로 검사가 되어 이런저런 적대적인 질문들을 던진 후, 그분(혹은 교회)이 질문에 대해 나름 괜찮은 대답을 하면 그 존재를 허용해 주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적절하게 비유한다. 그리고 이 틀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점을 지적하면서 다양한 공세들에 대한 변증을 시도하는데, 이 과정 가운데 아름다운 설명들이 잔뜩 보인다.

 

 

     루이스의 변증 가운데 가장 깊이 있고 좋은 책은 『기적』이지만, 이 책도 그 못지않게 효과적인 대답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 루이스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은 일종의 보너스. 오늘의 우리만큼 기독교에 관해 적대적인 (단지 물리적인 공격만이 아니라 지적인 차원에서의 공격도 만만치 않은) 세계 안에서 자신이 믿는 바를 말과 행동으로 변호해냈던 루이스의 글을 읽어보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특히 다양한 글 쓸 재료들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도 좋은 책. 책 속에 갓 싹을 틔우고 있는 소재들(그것들 중 많은 것들은 아쉽게도 좀 더 깊은 내용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그 씨앗을 뿌린 사람이 생을 마감했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을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시켜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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