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큰 물입니다.

바다가 물을 모으는 비결은

자신을 가장 낮은 곳에 두는 데에 있습니다.

 

- 신영복,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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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인간형 로봇 Q01은 어느 날 사랑하는 연인 ‘하루’를 잃은 충격으로 우울증에 빠진 ‘쿠루미’를 위해 ‘하루’가 되기로 한다. 처음엔 ‘하루와 똑같은 로봇은 필요 없다’며 거절했던 쿠루미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둘은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듯 했다. 하지만 하루의 친구인 ‘류’가 등장하면서 그들의 관계는 조금씩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진 진실.. 연인의 죽음으로 충격에 빠진 것은 다름 아닌 하루였고, 그는 자신이 로봇이라고 생각하는 망상에 빠졌던 것. 하지만 ‘쿠루미’로 분한 Q01으로 인해 그는 조금씩 이별을 받아들이고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2. 감상평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가까운 미래를 상정하고 있지만 현재와 크게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 특유의 문화들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장면들 - 특히 축제 장면이나 전통양식의 집들 -이 자주 보이고, 로봇 또한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으니까.

 

     로봇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로봇처럼 보이지 않는, 너무나 인간화된 로봇의 존재는 어쩌면 로봇과 인간이 완전히 융화된 어느 날을 내다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로봇과 감성을 융합시킬 수 있는 건, 확실히 현재까진 일본 문화계가 가장 앞서가고 있는 듯하다.

 

 

     사람의 치유를 위해 이미 많은 분야에서 로봇이 사용되고 있지만, 이 영화는 감정적인 부분을 치료하는데도 로봇이 유용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로봇이 감정까지 어떻게 할 수 있다면, 로봇과 인간의 차이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이 부분은 생명윤리적으로도 조금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

 

     감독은 확실히 따뜻한 한 시간짜리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그 이야기는 즐길 만했다. 여기에 ‘기묘한 이야기’에 나올 법한 클라이맥스 부분에서의 반전(처음엔 알아채기 어려웠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혹시’ 하는 생각까진 들었다)은 좀 쓴웃음을 짓게도 했지만, 나쁜 결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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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로 올라간 정치 - 10대가 말하는 유쾌한 정치 우리 청소년 교양 나ⓔ太 7
파트리스 파바로, 필리프 고다르 지음, 김혜영 옮김, 조선진 그림 / 우리교육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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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저자들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정치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물론 여기에서 ‘정치’란 단지 소수의 특권귀족들이 국회의사당 안에서 벌이는 이권다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들이 서로 대립되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정치다.

 

     책은 단순히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서술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련된 주제를 가지고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만들어서 부드럽게 접근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2. 감상평    


     자유, 평등, 박애를 국시로 하고 있는 나라답게, 프랑스에서는 이런 교육도 하나 싶은 느낌이 든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이 진리처럼 여겨지고, 고등학생이 학교 안에 안녕하지 못하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썼다고 학부모를 불러오라고 요구하는 조선시대 교육을 신조로 여기 듯한 한심한 교장들이 넘쳐나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 더 그렇게 느껴지나 보다.

 

     민주주의는 단지 다수결이 아니고,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 또한 아니다. 시민 대다수가 제대로 된 정치의식을 갖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이를 발휘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오직 선거만이 민주주의의 전부인 양 꾸며대는 건, 정치꾼들의 고도의 술책이다. 몇 년에 하루만 정치에 일반 시민들의 접근을 허용하고, 나머지 모든 시간 동안에는 이를 배제하겠다는 것이니까. 이런 차원에서 이 책처럼 학생들에게 정치의식을 갖도록 하려는 시도는 매우 적절하다.

 

 

     하지만 책의 각론으로 들어가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자주 보인다. 동성애와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같은 주제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그저 ‘자유’의 측면으로만 옹호하는 모습은 좀 불편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 대한 공격을 옹호하는 건 아니나, 다만 이런 식으로 가볍게 자연스러운 일인 양 치부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나 신념에 따른 음식 선택의 문제를 다룰 땐(12장) 이슬람교나 유대교에 속한 이들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종교의 자유를 다루는 것으로 보이는 7장에서는 한 학생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교실 안에서 표현하는 것을 비웃으며 ‘부유한 국가에서 사는 국민에게는 종교가 더 주요하단 것을 보여’주고 있다(110쪽)며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식의 편견을 보이는 건 일관성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여기에 낙태를 뭐 대단히 용기 있는 일인 것처럼 묘사하고 넘어가는 부분(234쪽)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 물론 어떤 의미로 그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용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모두 좋은 일은 아니지 않는가? 전쟁에서 적을 쏴 죽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건 가능하면 일어나서는 안 될 일로 여겨져야지 사람을 죽이는 걸 칭찬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물론 책은 빅 데이터의 문제라든지, 빈부의 격차, 가상현실 등 청소년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현실에서 가깝게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하지만 배경이 서로 다른 지나치게 여러 가지 주제를 관용이라는 바구니에 모두 담으려다보니, 각각의 문제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 무시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수는 무조건 옳고, 배려 받아야 한다는 식의 생각 역시 또 하나의 도그마가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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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as if you were to die tomorrow.

Learn as if you were to live forever.

- Mahatma Gandhi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음을 기억하며 사십시오.

그리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십시오.

- 마하트마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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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고졸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까지 됐지만, 학벌 따지고, 뭐 따지는 법원보다는 돈 버는 게 더 좋다며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온 송우석. 부동산 등기 업무를 하면서 끌어 모으던 그는, 자주 가던 국밥집 아주머니의 아들이 용공조작 사건에 얽혀 들어가면서 변호사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모두가 말리는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한 송우석. 고문으로 받아낸 거짓 진술서만으로 멀쩡한 청년들을 순식간에 국가전복을 꾀하는 범죄자로 만든 부당한 권력을 고발하면서,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려는 무모한 싸움을 시작한다.

 

 

2. 감상평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나서게 된 계기였던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다. 개봉 전부터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라고 입소문을 탔고, 그 덕분인지 며칠 만에 관람객 백만 명을 넘겼다는 뉴스와, 집단 예매 후 상영 직전에 취소하는 예매테러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동시에 들리기도 하는, 꽤나 핫(hot) 한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단지 노무현이라는 인물의 틀 안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다. 작품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조항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있는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모든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 물론 일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치료가 필요한 과대망상 환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주연을 맡은 송강호는 영화 내내 (약간 과잉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감정을 조절하지 않고 쏟아낸다. 특히 공판 중 고문의 주역이면서도 자신이 뭔가 대단한 애국이라도 하는 양 뻔뻔하게 나오는 차동영(그는 이 영화에서 비틀리고 추악한 국가권력의 상징이다)을 향해선, 모조리 태워버리겠다는 듯 불을 토해내는 듯했다. 좀처럼 반성도, 미안한 마음도 갖지 않고 변명과 회피로 일관하고 있는 현실 속의 독재세력과 그 후계, 추종자들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라고 하면 좀 확대해석일까.

 

     영화의 내용 중 ‘국가’가 무엇이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쉬워 보이는 질문이지만 차동영은 이에 대해서 딱히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송우석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 1조 2항을 들면서 국가란 바로 국민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쿠데타든 뭐든 일단 최고 권력자가 되면 그가 곧 국가라는 케케묵은 ‘국가주의’를 가지고 있었던 차동영은 이 명백한 헌법 조항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결코 극복할 수 없었으리라.

 

     당연히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부라 하더라도 그 정권 자체가 국가와 동일시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국가는 국민이니까. 하지만 정권과 국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왕조시대나 어울릴 가신(家臣)들이 넘쳐나는 오늘의 현상은 분명 정상적인 건 아니다. 영화는 이런 비정상적인 시대에 정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외치고 있고, 영화의 초반 흥행은 이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지 않을까.

 

 

     조조영화로 5천원만 내고 본 게 좀 미안해지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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