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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코이즈미 타카시 감독, 후카츠 에리 (Eri Fukatsu)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학생들은 새로운 수학선생님과의 첫 대면을 하게 된다. 그 선생의 별명은 수학 기호 중 하나인 ‘루트’. 그는 어떻게 해서 자신이 이 별명을 갖게 되었는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선생의 어머니(쿄코, 후카츠 에리)는 혼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었다. 많이 배우지 못했던 터라 여러 허드렛일이나 가사도우미를 하면서도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생활해 나가는 쿄코. 어느 날 최근 아홉 명이나 가사도우미를 바꿔버린 악명 높은(?) 집으로 일을 하러 가게 되고, 그곳에서 사고로 인해 최근 80분까지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박사’(테라오 아키라)를 만나게 된다.
수학을 전공했던 그는 세상을 수학이라는 도구로 이해하고 있었고, 사람을 만나면 늘 이름을 묻고 그와 관련된 숫자를 찾아 짤막한 이야기로 인사를 한다. 천성적으로 밝은 쿄코와는 금방 좋은 관계가 형성되었고, 쿄코에게 아들(현재의 수학선생)에게는 머리가 루트 기호처럼 납작하다며 ‘루트’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모든 숫자를 그 안에 담아낼 수 있는 루트라는 기호처럼 살라는 의미를 담아서.
선생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학생들에게 수학의 여러 개념들까지 함께 전달한다. 기가 막힌 수업 진행. 그 해 봄(산나물들이 나오는 걸로 봐서) 박사와 쿄코, 그리고 루트가 함께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2. 감상평 。。。。。。。
따뜻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영화다. 우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참 매력적이다. 80분밖에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세상 전체를 수학이라는 틀로 분석하고, 따뜻한 해석을 하는 박사나, 힘든 일을 하면서도 내색 없이 꿋꿋하게 중심을 잡아주며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쿄코, 그리고 나이는 어리지만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어린 루트까지. 박사 역의 테라오 아키라도 절묘했지만 특히나 쿄코 역의 후카츠 에리의 연기는 훌륭했다.
영화 제목처럼 박사는 어떤 수식을 사랑한다. 솔직히 문과에 인문학 관련 책들만 주로 보던 내가 완전히 이해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지만, 다행히 영화 속에 그 내용이 설명된다. 요컨대 무한한 것처럼 넓은 우주 속에서 한 사람의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그리고 비록 그렇게 작아보일지라도 저마다의 삶은 의미가 있다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론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이런 내용은 일본영화들에서 자주 발견되는 지나치게 과장스러운 수사의 남발처럼 느껴져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인간이 좀 더 큰 세상과의 접촉을 늘 떠올리고 희구하는 일이야 가능하다지만, 최근의 일본 영화에서는 그걸 오직 ‘말로만’ 표현해 내고 있다는 게 문제다. 평범한 일상의 대화를 하던 중 느닷없이 우주가 어떻고, 인생이 어떻고 하는 말을 하는 식이다. 그 정도로 큰 스케일의 무엇을 담아내려고 했다면, 처음부터 힘을 줬어야 했는데 꼭 후반부 끝날 즈음에 가서 대뜸 멋있는 말을 던져 놓고는 이 영화에 뭔가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일본의 경제사정이 안 좋아진 것도 충분히 이해는 하는데, 그냥 상황에 맞게 좀 검소하고, 소박하게 만들 수는 없는 걸까? 과도한 장식이 되어 있는 일본 요리를 먹는 듯하달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형편없다는 건 결코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 박사와 쿄코, 그의 아들인 루트가 그려내는 조화는 갈수록 분리되고 소외되어 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의미 있는 도전을 던져준다. 상대를 배려하고, 좀 덜 효율적이라고 하더라도 따뜻한 인간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영화평들도 칭찬 일색이다.
덧. 영화 속 등장하는 수학 선생처럼 가르치는 교사가 있다면 학생들에겐 참 좋을 것 같다. 지식만 전하는 교사가 아니라 삶을 이야기 하고, 지혜까지 아울러 전하는 참 교육. 물론 현실은 교과업무는 기본이고 끝없이 쏟아지는 교과 이외의 업무에, 학생관리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