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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고선지 - 상
황인경 지음 / 솔지미디어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고구려가 망한 후 유민이 되어 당나라에서 군인이 되기로 한 고선지의 아버지는 아들을 조상의 땅으로 보내 수련을 하도록 한다. 이윽고 모든 수련을 마친 선지는 당나라로 돌아와 아버지의 빽으로 군무에 뛰어들고, 타고난 성실함과 뛰어난 재능으로 곧 두각을 나타낸다. 당나라의 서쪽 변방을 지키는 안서도호부의 말단 장수로 시작한 그는 여러 차례 공을 세워 마침내 안서도호부의 수장에 이르지만, 사라센 제국과의 무리한 전투에 나섰다가 크게 패하고 수도로 돌아와 절치부심. 마침 일어난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되지만 그를 시기하던 무리에 의해 모함을 받고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2. 감상평 。。。。。。。
일단 책 소개와는 달리 전혀 박진감이 없다. 애초부터 사료에 그다지 많은 내용이 남아 있지 않은 고선지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다루려다 보니 지나치게 많은 상상력이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이렇게 빈약한 내용과 개연성, 전개를 가지고 세 권짜리 책을(다 더하면 무려 900페이지에 이른다) 써 낼 수 있었던 저자의 용기가 대단하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좀처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지 않고,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작위적인 느낌이다. 심지어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거의 융합되지도, 나아가 메인 스토리의 전개에 딱히 필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부용은 부용대로, 무치와 여노는 또 그들대로, 뜬금없이 나타난 울토는 또 제멋대로 움직일 뿐이다.
무엇보다 미심쩍은 부분은 책의 상당 부분을 정말로 작가 자신이 썼나 하는 점이다. 책에는 지나치게 잦은 현대적 관점에서의 개입이 보이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분이 평소에 하는 말과 지나치게 흡사하다. 심지어 그 내용마저도. 그분이 이 책의 내용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 일수도 있겠으나, 몇 년 전 그분과 이 책의 작가가 서로 밀접하게 교류하고 있었고, 실제로 많은 부분에 조언(종종 그 이상까지?)을 해주었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터라, 좀처럼 의심을 거두기 힘들다. 그나마 그런 식의 개입이 전체적인 흐름을 툭툭 끊고 있으니 이건 뭐 말 다 했다.
책 전체를 통해 작가 자신의 통찰력은 전혀 엿볼 수 없고, 심지어 상식에 관한 무지마저도 보여 실소를 자아낸다. 이를 테면 고선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그가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것처럼 서술하는 부분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 용어는 마오쩌뚱이 펼쳤던 정치권력 투쟁과 관련된 약간은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말이다. 이걸 무슨 동서양 문명의 교류나 문화적 발전이라는 의미로 차용해서 사용하는 건 도대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건지. 더구나 ‘문화’라는 말과 ‘혁명’이라는 말이 어디 어울리는 조합이란 말인가? ‘문화혁명’이라는 말처럼 반(反) 문화적인 말이 또 있을까.
아마도 참고 문헌 중 지배선 교수가 쓴 책에서 이런 식의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데(그나마 고선지라는 인물 한 명을 놓고 제법 길게 쓴 책은 우리나라에 지 교수의 책이 유일할 것이다), 그 책에 관한 서평에서도 썼듯이, 고선지라는 인물은 고구려 부흥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그냥 평생을 당나라의 장수로 살다가 죽은 사람일 뿐이다. 그가 실제로 고구려를 위해 한 일은 전혀 없는데도, 그냥 당시 세계 최강대국 중 하나인 당나라에 고구려 출신의 장군이 꽤나 높은 지위에 올라갔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를 애국자로,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건 어지간히 낯간지러운 일이다. 이건 뭐 아버지 때 미국으로 이민 가서, 그곳에서 시민권 받고 미국인이 된 걸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던 사람이 돈 좀 벌었다고, 당장에 우리나라로 데려와 한 자리 시키겠다고 하는 거랑 뭐가 다른지..
백 번 양보해서, 고선지가 동서교류사에 일정한 역할을 감당했다는(물론 이 땐 주로 중앙아시아의 여러 소국들과 전투를 벌였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한 건 그다지 없다) 것까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우리의 ‘영웅’까지 될 수 있는 레벨인지는 분명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역사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딱히 볼 게 없는 그저 그런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