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 예승이와 함께 살고 있는 용구는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한 달 꼬박 일해 봐야 60여 만원을 받는 게 고작인 주차관리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딸이 좋아하는 세일러문 가방을 사줄 수 있게 되어 신이 난다.

 

     하지만 월급날, 세일러문을 살 수 있는 가게를 알려 주겠다며 앞장서는 꼬마를 따라 나섰다가 졸지에 그 꼬마를 유괴하고 성추행한 뒤 살해했다는 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어 버렸다. 심지어 그 꼬마는 현직 경찰총장의 딸이었으니..

 

     수사와 재판은 속전속결로 끝나고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후 들어가게 된 교도소 7번 방. 용구의 착한 천성은 곧 방의 재소자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그의 가장 큰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모두가 예승이를 교도소 안으로 들여오기 위한 작전을 시작한다.

 

 

 

2. 감상평 。。。。。。。   

 

     기본적으로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리숙한 아버지와 나이는 어리지만 똑 소리 나도록 영리하고 귀여운 딸이라는 구도를 통해 감동을 이끌어낸다는, 전통적인 공식에 충실한 영화다. 전작인 ‘챔프’에서도 비슷한 공식으로 괜찮은 반응을 얻었던 감독은 다시 한 번 같은 공식으로 승부수를 던졌다.(재미있는 건 두 영화에 등장하는 어린 딸의 이름이 모두 ‘예승’이라는 것. 감독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

 

     시나리오가 딱히 훌륭했던 건 아니었다. 일단 어린 아이를 교도소에 들여온다는 설정부터가 평범치는 않았는데, 그 과정 역시 어설프다. 극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관객의 감정을 격동시키기 위한 무리한 설정들이 맥을 탁탁 끊는다. ‘챔프’ 때에도 비슷한 감상을 느꼈었는데, 좀처럼 발전이 안 되고 있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건 논리적 전개를 중요하게 생각할 때 그렇다는 거고, 뭐 그냥 영화가 주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정서적 공감을 얻으려는 마음을 먹고 들어간 사람이라면 그 나름대로 괜찮게 즐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쉬운 시나리오를 만회하고 있는 건 주연 배우인 류승룡과 감칠맛 나는 조연 배우들이다. 사실 지능이 낮고 어리숙한 인물을 코미디가 아니라 정극에서 연기하는 게 쉽지 않은데(예를 들면 강풀 원작의 ‘바보’를 영화로 만들었을 때 차태현이 했던 연기를 보는 내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을 했었다), 류승룡은 그런 캐릭터를 가지고 주연을 맡아 한 편의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다만 가벼운 마음으로 웃고 즐기기엔 좀 불편한 부분이 보이는 영화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강압적이고 편파적인 수사를 하는 검사와 경찰, 개인적 분노로 재판을 앞둔 피고인을 구타하는 경찰총장이나, 그 눈치를 보며 변론을 포기해버리는 국선 변호인 등등. 이런 부분들을 정면으로 부각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예민한 사람이라면 아픔을 느낄 수도 있을 듯.

 

     이 밖에도 몇 가지 눈에 띄는 주제들이 잘 정돈되지 않은 채 뒤죽박죽 등장하고 있어서 주제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영화. 뭐 굳이 다 보지 말고 하나만이라도 잡아서 그걸 즐긴다면 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강추 까지는 아니지만, 볼 만한 다른 영화가 없다면 선택해도 괜찮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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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령 충만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찬탄을 하면서도

성령의 내주하심이

누구나 충만히 누릴 수 있는 선물임은 깨닫지 못한다.

 

- 마르바 던, 『언어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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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 줄거리 。。。。。。。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몇 편의 독립적인 단편을 모은 책. 자살한 친구의 여자친구와 만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반딧불이), 우연히 만난 여자와 잠시 애인이 되었던 나는 그녀의 새 남자친구로부터 자신이 정기적으로 헛간을 태운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매일처럼 집 주변의 헛간들을 체크하며 달린다는 이야기(헛간을 태우다), 코끼리를 만드는 공장에 다니는 주인공이 꿈속에서 환상적인 춤을 추는 난쟁이를 만난다는 이야기(춤추는 난쟁이) 등 일상과 환상의 세계가 묘하게 교차되는 세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 감상평 。。。。。。。   

 

     뭐 처음으로 읽어 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었는데, 특별히 감동적이거나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일단 짧은 단편들이었기에 좀 더 깊은 감동을 담아내는 데는 불리한 점이 있었다는 정도는 인정.

 

    그래도 이 작가의 성향이나 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어떤 건지 정도는 좀 느낄 수 있었다. 에쿠니 가오리 류의 사랑중독증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간상과는 많이 거리가 있으면서도, 그렇게 가볍지만도 않은 주제와 인물들이었다. 책에 관한 설명을 보니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일종의 종자가 되어 좀 더 긴 소설들을 탄생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던데, 한 번 도서관에 가서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으면 성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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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대학원 교수 정민(천호진)의 가족. 하지만 정민 자신은 어린 대학원생 윤정(김효진)과 바람을 피고 있는 중이었고, 정민의 아내 혜경(이미숙)은 취미생활을 위해 배우던 사진 강사(상용)와 역시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여기에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의 딸은 약혼자를 제쳐두고 수시로 또 다른 애인과 호텔을 드나들고, 아들은 여자친구가 있으면서도 윤정에게 빠져 있는 상태. 이 콩가루 집안의 가족들이 짐짓 점잖은 체 하고 자기들끼리 속이는 이야기.

 

 

 

 

2. 감상평 。。。。。。。   

 

     영화 전체가 일정한 뼈대도, 설명도, 연결도 없는 졸작. 불륜 이야기, 바람 피는 이야기를 그릴 수는 있는 건데, 문제는 서사에 설명도 논리도 없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런 파편적인 설정을 일부러 가지고 들어간 것 같지도 않고 대충 스케치만 하고 이리저리 칠하다보니 유치원생이나 그릴 것 같은 작품이 나왔다고 하는 게 딱 맞을 듯.

 

 

 

     인물 캐릭터에 대한 묘사나, 주제의식 따위가 없으니 인물들은 딱 하나의 욕구, 즉 섹스만을 지상목표로 여기고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릴 뿐이다. 결국 인간성의 다양한 측면들은 오직 성욕 하나만 남기고 모두 뭉개져 버린다. 그냥 발정 난 개들처럼. 심지어 개들은 종족보전이란 거대한 존재론적 목표라도 있는데, 이 영화 속 인물들은 ‘그냥’ 이짓이다. 이런 건 인간에 대한 모욕이다.

 

 

 

 

 

 

     제법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주연급으로 출연했음에도 딱히 존재감을 보여주는 사람은 없고, 영화가 끝날 때 즈음은 배우들의 이름값에 속았다는 생각이 솟구쳐 올랐다. 다들 돈이 급했던 건지..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모든 게 발전하는 건 아니란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히 보여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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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폐허를 응시하라 -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거대한 지진이나 화재와 같은 재난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홉스의 이론 이래로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런 경우 극심한 혼란과 그에 이어지는 파괴와 살육, 약탈 같은 이미지들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레베카 솔닛은 북미 대륙에서 발생한 다섯 개의 광범위한 재난 현장에 관한 기록들을 실제로 조사하면서, 이런 통념들이 사실은 편견일 뿐이라고 결론 내린다. 오히려 저자는 그런 극심한 위기에 처할 경우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자신의 것을 나누는 등 공식적인 ‘질서’가 없이도 자발적인 질서를 수립해왔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기존의 공식적인 힘들을 소유한 엘리트들이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져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

 

     이런 현상 연구들을 바탕으로 저자는 일종의 아나키즘적인 이상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살짝 내다본다.

 

 

2. 감상평 。。。。。。。   

 

     꽤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재난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일반 시민들이라는 이미지는 기존의 언론이나 영화와 같은 대중매체들에서 끊임없이 떠들어대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으니까.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이런 이미지들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든 걸까?

 

     책 속에 언뜻 그 대답과 이유가 등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보다 재산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현재의 ‘질서’ 안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에 그런 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 또는 그냥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힌 멍청이들이 돈을 위해, 권력을 위해, 또는 인습적으로 생각 없이 이런 이미지들을 조장하고 거짓을 더해 확산시키고 있었다.

 

 

     일반 대중의 전변에 깔린 선의(善意)를 믿어보자는 저자의 요청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자발적인 선의에 의해 작동하는 세계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저자 자신도 인정하듯, 재난으로 인해 드러난 사람들의 선의는 일정 기간 동안만 폭발적으로 나타났을 뿐이고, 비상시에서 드러났던 선의는 평상시로 돌아오면서 점차 줄어들다가 결국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 또한 집고 넘어가야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평가의 기준이 달라지는 등의 발전적인 성숙도 있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만이 아니라 외상 후 성숙이라는 현상도 있다는 설명은 특히나 관심을 끄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역시 같은 재난 상황 아래서 그런 시민들을 통제하고 결과적으로 괴롭히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재난이 사람들의 선한 본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책 자체가 결론적으로 말하려는 게 무엇일까 살짝 헷갈리는 부분도 있다. 한참 아나키즘의 당위성이나 우수성을 주장하는 서술들이 보이다가 급히 마무리되기도 하고, 일종의 유토피아를 그려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저 사람들의 선의에만 의지할 뿐 딱히 어떻게 해야 할 것이라는 로드맵이 보이지는 않는다. 뭐 아나키스트들에겐 그런 로드맵조차 타파해야 할 무엇으로 보이는 건지도 모르지만..

 

     재난에 관한 뉴스를 좀 다르게 보도록 만들어 주는 책.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과 같이 읽으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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