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의 거듭되는 실패에는 무한한 자비를 베푸시겠지만,

계획적인 타협을 받아 주신다고 약속하신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은 그분 자신뿐이며

우리 영혼 안에서 자기주장의 의지가 물러나고

하나님께 자리를 내어드리는 만큼만 자신을 주실 수 있습니다.

 

 

- C. S. 루이스, 『영광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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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패배자 -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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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제목처럼 승리자,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패배한 사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패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저자는 그 중에서도 안타깝게 패배했거나,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가 몰락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중심으로 뽑아 책을 엮었다.

 

 

2. 감상평 。。。。。。。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승리자들의 뒤에는 그보다 몇 배는 많은 패배자들, 혹은 실패자들이 있었다. 당연히 그들 대부분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당연히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만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꿈을 꾸고, 종종 영웅시하기도 한다. 성공이 옳은 것이 되어버린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우선 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별로 남아 있지도 않고, 당연히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도 어려우니까. 이런 차원에서 패배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성공을 숭배하는 분별없는 가치판단을 한 번쯤은 재고해 볼 수 있게 해 주니까.

 

     다만 책이 그런 의도를 충분히 살려내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약간 회의적이다. 앞서 요약부분에서도 언급했듯이 어차피 모든 패배자들의 이야기를 담기에는 불가능한 이상 필연적으로 선별이 개입되었는데, 그 기준이라는 것도 얼마만큼 성공에 가깝게 다가갔었느냐 인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결국 패배자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성공주의적 가치관이 짙게 남아 있는 모양이다. 굳이 패배자를 들먹였던 이유가 뭔지. 책 속엔 딱히 ‘위대한’ 패배자의 이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 우선 ‘위대한 패배자’가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지도 불분명하고...

 

     의욕은 좋았지만, 먼저 서술과 선별에 있어서 저자 스스로의 분명한 판단 기준을 세우는 게 먼저였다. 이 부분이 잘 안 되니 갈수록 서술의 방향이 불분명해질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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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2018년 미국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흑인 우주인을 달로 보내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달에 도착하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통신은 끊어져버렸고, 우주인 제임스 워싱턴은 달의 ‘뒷편’에서 놀라운 인공구조물들과 함께 적대세력을 만나게 된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모두 나치가 사라진 줄 알았지만, 그들 중 일부가 달로 피신해 우주 나치 제국을 건설하고 있었던 것. 달탐사선을 미국이 보낸 첩보선으로 이해한 차기 총통후보 클라우스는 때가 왔음을 깨닫고 마침내 병력을 동원해 지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간만에 재미있는 B급 영화를 본다. 여기에서의 B급이라는 표현이 꼭 수준이 떨어지거나 허술하다는 의미는 아니고, 주류에서 벗어나 있다는 뜻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처음부터 대놓고 온갖 패러디와 (아마도) 오마쥬들이 섞여 있는 과장된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기에, 당연히 표면적인 의미구조와는 전혀 다른 진의를 가지고 진행되는 점이 영화의 포인트.

 

 

 

     궁극의 무기인 괴터대머룽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우주 나치의 컴퓨터가 여전히 진공관이나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듯한 거대한 컴퓨터만을 알고 있는 것도, 그래서 결국 클라우스가 지구에 내려와 가지고 돌아간 태블릿 컴퓨터 하나로 거대한 우주요새가 움직이게 된다는 것 등은 작은 웃음 요소에 불과하다. 영화 내내 실제 나치에서 깊이 연구했고 오늘날에도 일부 정신 나간 집단에서 숭배하는 시답잖은 우생학적 사고를 우스갯거리로 표현하고, 지난 미국 대선 때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섰던 페일린 전 주지사를 꼭 닮은 영화 속 현직 미국 대통령(역시나 무식하고 충동적으로 그려진다)에 관한 여러 요소들(이를 테면 ‘Yes, We Can'이라는 지난 대선 오바마의 선거 구호를 풍자한 ’Yes, She Can'이라는 구호 등)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꼬는 데 중요한 요소다. 현실세계에 있어서 강대국이란 늘 말로 떠드는 것처럼 세계 평화나 인류 공영이라는 고상한 목표보다는 최고 지도자의 영달이나 국가의 지배층들의 부를 위해 종종 무모한 일까지 벌이는 집단이기도 하다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만큼 영상이 얼마나 받쳐 줄 수 있느냐도 관건이었는데, 헐리웃의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것도 아닌데 제법 볼만한 그림이었다. 미국 영화의 전형적인 코드나 구성을 따라가지 않았으면서도 나름의 재미를 보여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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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잘 나가는 CF 감독인 상희. 성공을 위해서 결혼을 하고, 뇌물을 주는 건 딱히 그에게 큰일도 아니었다. 여기에 또 하나, 대단한 여성편력까지... 어찌됐건 그의 작전은 성공해 마침내 장인으로부터 대기업 후계자의 자리를 물려받기 직전의 자리에 오른다.

 

    대망의 후계자 지명을 하루 앞두고 온 문자 한 통. 알고 지내던 감독이 보낸 성접대로 알고 단 한 시간 동안의 일탈로 생각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의 섹스 동영상이 촬영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걸려온 여자의 전화. 앞으로 90분 동안 자신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동영상을 장인에게 보내겠다는 협박. 일을 무마시키기 위해 상희는 90분 동안 정신없이 뛰어다니지만, 과연 결과가 좋을까?

 

 

2. 감상평 。。。。。。。       

 

     인생을 그렇게 거리낌 없이 방만하게 살아 온 남자가 한 여자에게 잘못 걸려 된통 당하는 이야기. 그럼 이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 걸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에게 걸려온 전화에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상희에게 이입하기엔, 캐릭터 자체가 딱히 불쌍하지도, 그렇다고 절박함도 잘 느껴지지 않고, 그런 상희를 종용하는 혜리의 편이 되기엔 그녀에 관한 정보가 너무 적다. 영화는 그렇게 누구 편에 서기도 어정쩡한 상태로 계속 흘러가는데, 당연히 몰입도가 떨어진다.

 

     여기에 문제는 혜리가 시키는 미션들마저 그다지 진지하지도, 의미가 깊은 것도 아니라는 점. 그녀의 말을 통해서 성상납을 요구하는 남자들이나 그렇게 해서라도 성공하고 싶어 하는 여자들 모두에 대한 냉소를 약간 읽어낼 수는 있지만, 그냥 상희를 고생시키려는 것 말고는 딱히 뭘 위해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영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는 모든 사태 뒤에 있는 배경이 드러나는 부분이었을 텐데, 영화는 그 기회마저 내차버린다. 아예 모든 걸 알고 있던 상희의 부인이 남편의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꾸민 것이라는 식이었다면, 그리고 이 사실을 오직 관객과 그녀만 알고 있었다면, 그녀를 이용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상희에 대한 일종의 통쾌한 복수로 읽어낼 수도 있었을 텐데, 고작...

 

     뜨는 배우 주상욱의 연기는 딱 그 정도였는데, 영화 속 캐릭터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기 보단, 그냥 주상욱이라는 느낌만 준다. 장미인애의 경우는 뭐.. 열심히 운동은 했는데 연기력은 그닥..

 

     영화가 90분에 끝난 게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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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처럼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정상이라 생각하며 안주하고 있다.

삶은 본래 이런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이가 가난에 허덕이지만

현대사회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소비재가 넘쳐나는 것도 정상이다.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 경제성장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것,

주말을 위해 사는 것, 쓰고 버리는 사회,

탐욕으로 인한 급속한 자원 고갈도 정상적인 것이라고 말이다.

 

- 브라이언 왈쉬, 『세상을 뒤집는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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