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볼 때 우선순위의 왜곡도 일어난다.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에이즈로 죽어가는

많은 사람을 방치하면서도

서구에서는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 레이 모이니헌, 앨런 커셀스, 『질병판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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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 러브스토리
마이클 무어 감독 / 파라마운트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식코라는 영화로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점을 파헤치며 결국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이 이번에는 자본주의라는 경제 철학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감독 특유의 유머와 비꼬기 기법이 잔뜩 담겨 있는 다큐멘터리로,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하는 투자를 장려해 놓고는 개인투자자들이 파산을 당하자 집을 강제로 빼앗아 가는 은행들의 부도덕성으로 시작해, 직원들이 죽으면 고용주 앞으로 막대한 보험금이 배당되도록 해 놓은 ‘일명 죽은 일꾼(Dead peasant) 보험', 소년원마저 민영화 시킨 후 판사들을 매수해 수천 명의 아이들을 무조건 가둬놓고는 막대한 세금을 받아먹는 민간 기업, 수천 억 달러의 세금(공적자금)을 아무런 조건이나 규제도 없이 그저 은행들에게 쏟아 붓도록 만드는 대단한 로비력을 소유한 투기은행들의 만행 등을 차례로 그려낸다.

 

     결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자본주의’라고 표기되는 금권주의, 혹은 귀족정체를 무너뜨리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답일 것이라는 강렬한 주제를 던진다.

 

 

2. 감상평 。。。。。。。       

 

     툭하면 나오는 ‘자본주의’라는 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정의는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자본주의란 누가 무엇을 생산할지를 투표로 정하는 제도라고. 즉,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경제 영역에 구현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이 경제제도의 기본적인 법칙은 뭔가를 갖고 있는 사람이 다른 걸 얻기도 쉽다는 것. 때문에 이 제도의 맹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뭘 해도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조정하는, 일종의 역전현상이 일어난다.

 

     오늘날 전 세계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다. 돈은 얼마든지 정치인들을 지배하는 유효한 도구가 되었고, 이건 법과 원칙까지도 얼마든지 돈을 위해 봉사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말이고, 다시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악순환의 연속. 영화 속 시티그룹의 내부문서는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미국은 이미 상위 1%가 95%의 부를 독차지 하게 된, 금권주의 혹은 귀족정체로 전환 중이라는 것. 여기에는 딱 한 부분의 약점이 있는데 바로 투표권이라는 문제다. 여전히 99%의 표는 약자들이 가지고 있으니까.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것이 민주주의였듯이,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힘도 민주주의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위의 대다수들은 자신들도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면서 이 상황을 유지시키고 있으니..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한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1936년 미시건 주의 한 작은 도시에서 44일간의 공장점거가 있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경찰과 ‘구사대’라고 불리는 용역 깡패들이 난입해 유혈사태가 발생했고, 주지사는 당시 대통령인 루즈벨트의 재가 아래 주 방위군을 출동시켰다. 어디선가 자주 봐왔던 장면인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의 상황. 출동한 주 방위군은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그 자리를 지켰다는 것. 자본주의는 결코 민주주의와 동등한 선에 설 수 없으며, 후자에 의해 적절하게 통제되어야 하고 통제 될 수도 있다는 좋은 예.

 

 

 

     2009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에 뭔가 대단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보여주지만, 현실은 그동안 봐 온 것과 같이 막강한 로비력으로 무장한 돈의 힘이 이미 워싱턴 정가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면적인 개혁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상황이다. 좀 더 많은 사람이 깨어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분별하게 되고, 적절한 수단으로 돈의 지배에 저항할 때만이 문제 해결은 시작되겠지만, 허영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게 쉬울 것 같지 않다.

 

     식코와 함께 꼭 한 번 봐야할 영화. 대선을 앞둔 이즈음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한 번 개봉했으면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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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아들(안데르스)과 함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온 안나. 하지만 아무리 해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 그녀는 베이비 콜(일종의 무전기와 비슷한 기기)을 사기로 마음먹는다. 어느 날 밤, 갑자기 베이비 콜을 통해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잠을 깨 서둘러 달려갔지만, 다행히 아들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채널이 같아서 인근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섞여 들어온 것. 본능적인 불안감이 점점 안나를 집어삼키기 시작했고, 아동보호국 직원들은 끊임없이 그녀를 방문하고, 아들은 좀 수상한 친구와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안나와 안데르스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갖가지 이상한 일들의 비밀이 점차 밝혀져가기 시직한다.

 

 

 

2. 감상평 。。。。。。。        

 

     익숙한 공식이었다.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아들과 함께 도망쳐 나온 안나라고 소개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자이자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 여주인공인 안나 자신에게도 뭔가 편하지만은 않은 비밀이 있다는 것이 조금씩 드러난다. 영화 전체를 통해서 남편은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안나에게 불안감을 주는 요소로만 그려지고, 안데르스에게 생긴 새 친구는 말 그대로 신출귀몰, 그리고 안나는 기억상실증을 호소하기까지.. 나름 긴장감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긴 했는데, 환각과 유령이라는 소재로 마무리를 한 건 약간 흐지부지 끝난 듯한 느낌도 준다.

 

     안나 역의 누미 라파스는 밀레니엄 시리즈 세 편을 통해서 낯이 익은 배우라 반가웠다. 앞서봤던 영화들과도 한편으로는 비슷하면서도, 이번에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어머니라는 불안한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다. 배우의 연기와는 별도로 극에서 뭔가 부족함이 느껴지는 건 조금은 밋밋한 연출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나.

 

 

 

 

     덧.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서도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봤던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밀레니엄에서는 자신이 담당하는 여자를 강간하는 보호관찰관이 있었는가 하면, 이 영화에서도 역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안나를 성희롱 하는 아동보호국 직원이 나온다. 높은 국민소득을 바탕으로 복지사회를 지향하던 북유럽 국가들의 정책이, 자칫 공권력의 비대화와 그로 인한 개인의 인권유린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들이(실제 어떤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담겨 있는 것 같다. 국가가 국민들의 일상 전반의 안전과 편의를 보호하고 조정해야 한다는 건 역으로 그들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논리도 되니까. 복지사회를 지향해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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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VS 프로이트 C.S. 루이스 연구서
아맨드 M. 니콜라이 지음, 홍승기 옮김 / 홍성사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대표적인 유물론자인 프로이트와 회심 후 많은 강연과 책들을 통해서 영적 세계관을 설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C. S. 루이스의 책과 편지들을 바탕으로 두 세계관을 비교, 대조하는 작업이 담겨 있는 책이다. 하버드에서 실제로도 같은 주제를 놓고 오랫동안 강의를 해온 저자답게 양측의 주장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설명해내고 있다.

 

 

2. 감상평 。。。。。。。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 보통 이렇게 같은 책을 바로 반복해서 독서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모두 다 2박 3일 동안 데려다 놓고는 딱히 별로 할 일이 없어서 가지고 간 책 밖에 볼 수 없도록 만든 예비군 훈련 때문이다.;; 아무튼 뭐 덕분에 아주 제대로 정독을 할 수 있었으니까.

 

 

     다양한 세계관들이 있지만, 역시 크게 나눈다면 유물론적 세계관과 유신론적 세계관이 있다. 유물론적 세계관 위에 과학주의적 세계관을 비롯한 다양한 증거주의적, 또는 환원주의적 세계관들이 있고, 유신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는 여러 종교들의 세계관들이 꽃피우고 있다.(물론 이 책에서 루이스는 유신론적 세계관 중에서도 기독교 세계관의 입장에 서 있다) 문제를 늘 단순하게 해석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쪽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으로, 다른 쪽은 그저 신앙적이거나 맹신적인 것으로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뭐 그건 자신들이 사안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음을(혹은 그럴 능력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지 실제의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프로이트는 퍽이나 솔직한 유물론자였다. 그는 자신이 분명 어떤 입장을 ‘채택’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고, 자신이 선택한 세계관 안에서 모든 것을 끝까지 해석하려고 애썼던 인물이니까. 분명 그는 자신이 선택한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맹점들과 한계들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어느 지점(예컨대 ‘죽음’과 같은)에 이르러서는 ‘체념’밖에 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한편 C. S. 루이스야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기독교 세계관(그의 용어로는 ‘영적 세계관’)의 대표적인 옹호자이자 변증가다. 이 둘의 대결은 상상만으로도 상당한 지적 즐거움이 예상되는 논쟁인데, 이 책의 저자는 아쉽게도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이 대화를 상당한 정도로 재구성해 낸다. 책은 대체적으로 객관적인 입자에서 양쪽의 입장을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분위기는 루이스 쪽으로 약간 기우는 게 아닌가 싶다. 아마도 각자의 세계관에 충실하게 살았던 두 사람의 실제 삶의 모습이 한족은 깊은 우울감에 빠져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개인적인 성취감에 있어서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던 반면, 다른 쪽은 그가 가진 세계관으로 여러 고통과 아픔들을 이겨내고 삶은 점점 더 생기로 빛나며 주변사람들에게는 유익을, 자기 자신에게는 만족감을 주었으니까. 결국 가장 확실한 증거는 실제 삶의 모습 일 테니 말이다.

 

 

     이 책에서 언급된 C. S. 루이스의 책은 거의 다 읽어봤기에 익숙한 내용들이었고, 주제별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반면 프로이트의 책의 경우는 익숙하지 못했는데, 정신분석을 전공한 저자의 명쾌한 정리 덕분에 대략적인 이해를 얻는 데 도움이 되었다. 세계관에 대한 논의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면, 대조를 통해 서로 다른 세계관의 차이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책일 것이다.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읽고 나면 분명 얻는 바가 있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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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놀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유쾌함은

처음부터 서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나누는 유쾌함이어야 합니다.

 

- C. S. 루이스, 『영광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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