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쓸쓸함은 사랑을 약하게 만든다.
슬픔은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거기에 젊음이 더해지면 모든 것이 위태로워진다.
밝은 색을 잃어버린 화가가 그린 그림과 같았다.
- 츠지 히토나리, 『사랑 후에 오는 것들』
1. 요약 。。。。。。。
‘신’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서양의 지성사 전반을 읽어가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인간들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뮈토스(신화)’와 ‘로고스’라는 두 가지 방식을 사용하는데, 종교란 논리적이고 설명적인 로고스가 아니라 좀 더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뮈토스에 속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고전 시기에는 이 부분이 비교적 제대로 이해되었으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뮈토스인 종교를 로고스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것이 문제(충돌)를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의 무신론자들이나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똑같은 함정에 빠져있다. 전자는 로고스로 뮈토스를 한정지으려 하고 있고, 후자는 뮈토스를 로고스로 이해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둘 사이의 어리석은 충돌과 싸움에서 벗어나 보다 긍정적인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종교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뮈토스가 원래 가지고 있는 중요한 속성인 초월성과 신비, 그리고 이에 대한 겸손한 침묵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2. 감상평 。。。。。。。
사실 현재 종교가 처한 상황은 그리 밝지 못하다. 도킨스나 히친스 같은 전투적인 무신론자들은 연일 종교를 무슨 해로운 바이러스나 되는 양 때려대고 있고, 호킹과 같은 저명한 물리학자들은 과학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는 종교에 유죄판결을 내린다. 그런 행동들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물음은 뒤로 미루고서라도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의 저자인 카렌 암스트롱은 좀 다른 방식으로 신을 위한 ‘변론’을 시도한다. 그녀는 적대자들을 향해 ‘타당한가’를 묻는 대신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를 역으로 질문한다. 앞서 요약한대로, 과학, 혹은 이성이라는 기반 위에서 신을 공격하는 이들은 뮈토스와 로고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로고스의 입장에서 뮈토스의 가치없음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천문학자가 톨스토이의 작품이 비과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물론 여기에는 종교적 언명을 사실 그 자체로 여기려는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비판도 함께 수반된다.
언뜻 꽤나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보이지만, 서양 지성사 전반을 검토하는 지난한 작업 끝에 저자가 지켜낸 그 ‘종교’는 ‘예술’과 딱히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신의 초월성을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전제 때문에 결국 인간이 신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모든 다리는 끊어져버렸고, 결국 그렇게 신과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는 상태에서 남은 것은 막연한 감동(혹은 감정적/지성적 충동) 말고는 또 무엇이 있을까 싶다.
물론 신앙은 단지 특정한 언명에 대한 동의/부동의가 아니라, ‘헌신과 실제 삶의 문제’라는 저자의 진단은 곱씹어 볼만한 부분이다.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신앙이 그를 어떤 방식으로든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정통적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에 대한 전인적 헌신(행동이나 자세까지 포함하는)이 그것에 대한 인지적 헌신(믿음?)과 따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다.
또, 서양 지성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종교적 인물들의 주장들을 살피면서, ‘어느 시대나 종교적 삶은 각양각색이고 모순적’(233)이라고 해석하는 데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가 살펴본 주요 인물들은 백년에 한 번 꼴로 새로운 논설을 펼칠 수 있는 인텔리 계층이고 대다수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의 생각이 어땠는가를 바로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다. 또, 무엇인가 기록에 남는 것은 언제나 이전과는 다른 것을 주장할 때이다. 즉, 차이가 과대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정리를 하는 데는 유용할지 모르나, 실제가 어떠했는가는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토록 종교를 뮈토스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가 가지고 있는 성경관(JEDP 문서설)은 로고스의 방식으로 성경을 산산조각 내는 지극히 근대적 방식이 아닌가.
‘신’과 그에 대한 반응이라는 중심 테마로 서양 지성사 전반을 요약해냈다는 점에서 만큼은 그 공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책이다. 오늘날 종교가 자칫 잃어버린 것 같은 신의 초월성에 대한 인식의 환기는, 신의 뜻을 자신이 완전히 알고 있다는 교만에 대한 경고로 받을 수 있겠다. 그러나 결론적인 논지에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데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고,
그러기 위해 상당한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매일 수천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쓴다.
이것은 부도덕한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할까?
- 피터 싱어,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아내는 우리 편이 저렇게 많이 왔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겁이 났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밤마다 촛불을 들고 와서
나를 탄핵에서 구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게 무엇을 요구할까?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촛불 시민들의 함성에 실려 왔다.
- 노무현 재단, 『운명이다』
못 박히고 박는 관계,
어쩌면 이것이 피할 수 없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어리석게도 우리들은 그 못이라는 존재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 『100인의 책마을』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