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보통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인간은

이미 보통 사람이 아니다.

 

- 시오노 나나미, 『침묵하는 소수』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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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 Taipei Exchang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동생 창얼과 함께 꿈꾸던 자신의 카페를 열게 된 두얼. 두얼 카페의 개업 축하파티에 이전 직장의 동료들이 가져온 잡동사니 선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곤란해 하던 중, 창얼의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카페의 손님들이 가져온 물건들과 물물교환을 하기로 한다. 소문이 퍼져 타이페이의 명물이 된 두얼의 카페. 어느 날 자신이 가져 온 서른다섯 개의 비누를 놓고 각각의 비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내가 카페를 찾아온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두얼. 어느 날 사내가 비누와 그림을 가지고 사라지자 두얼은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 직접 떠나기로 한다. 

 

 

 

 

 

 

2. 감상평 。。。。。。。                  

 

     영화 ‘말할 수 없는 비’에서 주걸륜의 상대역인 신비한 소녀 역으로 나왔던 계륜미가 직접 내려주는 에스프레소와 그녀가 만든 티라미스의 맛은 어떨까.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조차도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쁜 영상이 가득한 영화다. 화려한 액션이나 특수효과가 없어도, 도저히 빠지면 안 될 것 같은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가 주가 되지 않는데도 감독은 색다른 소재와 아름다운 영상만으로도 괜찮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다만 두얼 카페에서 이야기의 대부분이 풀어진다는 점은, 약간 단조롭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고, 스토리 전개 자체가 좀 밋밋한 감이 없진 않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다 빵빵 터지고 부시고, 격정적인 사랑에 목을 매고 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두얼의 모습은 매력적이다. 얼마나, 어디로 달려야 하는지 생각조차 할 기회를 잃어버린 오늘날 젊은 세대들에게 감독은 그래도 뭔가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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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 행복의 중심
울리히 슈나벨 지음, 김희상 옮김 / 걷는나무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늘 뭔가에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고, 더 빨리 더 많이 과업을 수행해내는 것만이 좋은 것(나아가 옳은 것)이라는 효율성의 신화 속에서 허우적대는 현대인들에게 좀 쉬라고, 쉬어도 된다고 말하는 책. 더 좋은 가전제품이나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삶에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며, 의식적으로 그것을 선택할 때에야 진짜 쉼을 누릴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쉼이 주는 실제적 유익과 어떻게 하면 제대로 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 책. 

 

 

 

2. 감상평 。。。。。。。              

 

     현대는 과거보다 기술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분명 엄청난 발전을 해낸 시대다. 과거 몇 시간에 걸쳐서 해야만 했던 일들도 이제는 편리한 각종 전자제품들의 도움을 받아 훨씬 짧은 시간 만에 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그렇게 절약된 시간을 과연 현대인들은 어떻게 사용할까? 사람들은 더 여유롭게 되었는가? 분명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현대인들은 과거의 어떤 사람들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고 일한다. 기술의 발달로 얻은 시간을 또 다른 일을 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더 편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기술은 그 사람들을 더 바쁘고, 더 많은 일들을 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이거 괜찮은 걸까?

 

     문제는 그렇게 더 많은 과업을 해 낸다고 해서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거나, 더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현대인들은 그 어떤 시대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막상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끊임없이 뭔가 할 일을 찾아 나서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휴식의 가치와 잘 쉬는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주고 있는 이 책은 나름 의의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진화심리학에 근거한 사회학적 연구결과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나, 행동주의적 전제 아래 인간을 그저 자극에 대한 반응을 보이는 동물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는 듯한 몇몇 언급들은 수용하기 전 약간의 주의를 필요로 하겠지만 말이다.

 

     그저 달려가는 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어디로 달려가는 지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달려가다가는 레밍처럼 다 같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버릴지도 모르는 법이다. 쉬지 않고 도끼질을 하는 나무꾼보다는 가끔씩 쉬면서 도끼의 날을 다시 벼리는 나무꾼이 더 많은 나무를 할 수 있다. 이런 가벼운 책을 읽으며 잠시 쉬면서 삶을 정돈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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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뇌 속에 갇히지 않는다 - 21세기를 대표하는 신경과학자의 대담한 신 존재 증명
마리오 뷰리가드 & 데니스 오리어리 지음, 김영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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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요약 。。。。。。。                 

 

     책을 통해 저자들은 인간을 일종의 기계로만 보는 유물론적 견해만을 고수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성을 획득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비유물론적 견해’가 현상을 좀 더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존의 유물론적 견해는 종교나 영성을 일종의 망상이나 착각 등으로 치부하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이 책에 나오는 ‘신 헬멧’과 같은) 뇌의 특정한 부분을 자극하면 사람들이 말하는 신적/영적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신’이 뇌의 일부분이라는 어떤 증거도 실험적으로 입증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물론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바꾸려 하지 않는데(심지어 언젠가는 유물론적으로 입증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반증을 무시하기까지 한다) 이는 유물론에 대한 헌신 때문이지 과학적인 자세는 아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들은 종교적, 영적, 신비적 경험을 하는 것이 악의적인 비방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에게 실제적으로도 유익하다고 주장한다. 플라시보 효과나 노시보 효과의 실험적으로 의미 있는 존재는 뇌가 정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역, 즉 정신이 뇌를 비롯한 물리적 신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제적인 예다. 나아가 카르멜 수녀원의 수녀들의 관상기도를 연구한 결과는 그들이 경험했다고 말하는 현상들이 단순한 조작이나 허풍이 아님을 증명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2. 감상평 。。。。。。。                

 

     인간에 관한 고전적인 이해는 정신(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합리주의가 지배적인 이념이 되고, 여기에 과학적 도구로 측정하고 설명 가능한 것만이 사실이고 진실이라는 완고한 과학주의가 더해지면서 이런 종래의 개념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쉽게 말해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정신이나 영혼과 같은 비물질적인 부분은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말 그대로 인간을 일종의 기계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종교는 부정되었고, 엄정한 실험과 관찰이 가능한 과학만이 최종적인 승리자로 남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으니 그 과학이라는 것을 진행할 수 있는 주체인 이성의 자리까지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또, 그것이 가진 강력한 결정론적 사고는 자유의지의 부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유물론적 세계관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설명하고 있는 자신이 사라져버리는 자기모순적 세계관임이 밝혀진 것이다. 자기가 올라가고 있는 사다리를 폭파시켜버리는 만화영화 속의 멍청한 주인공처럼 하고 있는 셈인데, 그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최근에는 인간을 유전자를 증식시키기 위한 덩어리로 생각하는 강력한 환원주의적 주장까지도 서슴없이 해대고 있다. 언젠간 자신들의 주장이 합리적인 증거로 증명될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 아래.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그런 유물론적 세계관이 가진 논리적, 그리고 증거적 허점을 잘 요약해, 그런 주장들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것인지, 실재를 설명하기 적절치 못한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증거에 의해 믿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종교적이고 영적인, 그리고 신비적인 경험들이 단순히 뇌의 특정한 반응에 의해서 발생되는 것이 아님을 학술적으로 증명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점도 높이 살만 하다.

 

    하지만 책은 신이 존재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특정한 종교의 우월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책에서 카르멜 수녀원의 수녀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것은 그들이 자신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는 것을 용납해주었기 때문일 뿐이다. 오히려 저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신비적인 경험들을 동일선상에 두고 내용을 진행하려는 듯한 느낌이다. 때문에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길을 가다보면 자칫 C.S. 루이스가 말했던 신비주의자의 항해에 따라나섰다가 난파당하는 경우를 맞닥뜨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학계가 유물론적 믿음을 가지고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만나 곤란해 하고 있음을 제대로 지적해내고 있다는 점만큼은 상당한 의의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분명 읽을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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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 사슬은
그것을 끊어버리기 힘들 만큼 강해질 때까지도
대개 너무나 약하게 느껴진다.

- 새뮤얼 존슨
 

 
The chains of habit
are generally too small to be felt
until they are too strong to be broken.
- Samuel Joh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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