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증거는 책이 아니라 삶이다.
기독교의 능력은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된 인생을 볼 때마다
예수님 부활의 증인을 만나는 것이다.
– 윌리엄 우드핀
 
      
The proof of Christianity is
not a book but a life.
The power of Christianity is
not a creed but a Christian character;
and wherever you see life
that has been transformed by the grace of God,
you see a witness to the resurrection of Jesus.
– William Wood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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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의 거울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 채 자신에게 치근대는 교장선생을 피해 도망쳐 나온 카산드라는 우연히 시립 쓰레기하치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들개들에게 쫓기던 중 오를랑도에게 구조된 그녀는, 쓰레기장을 터전삼아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이들과 조우하게 된다.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테러사건들을 미리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카산드라는, ‘대속 마을’(쓰레기장에 터를 잡고 있던) 주민들을 설득해 함께 테러를 막아내려는 어려운 일을 시작한다.

 

     조금씩 밝혀지는 카산드라의 과거와 쉴 새 없이 몰려오는 모험적 사건들이 두 권의 책 속에 현란하게 엉키며 펼쳐진다. 

 

 

 

2. 감상평 。。。。。。。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라는 게 있다.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 드물게 특정한 영역에 대한 비범한 재주를 나타내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요샌 이 이야기가 잘못 알려지다 보니 모든 자폐증을 가진 이들이 천재인 것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대단히 예외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이 책 『카산드라의 거울』은 자폐인들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폐를 좌뇌의 통제로부터 우뇌가 벗어난 것으로 설명하고, 이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초-능력’(염력이나 투시력 같은 이상능력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의미에서)을 소유한 이들처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적 상상력은 그 ‘초-능력’에 심지어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까지 습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는데, 소설을 흥미롭게 만드는 장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역시 문제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작가인 베르나르는 쓰레기장 속에 살고 있는 네 명의 노숙자들과 함께 인류의 미래를 바꾸어나가려는 십대의 여주인공 이야기를 써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현실의 부조리와 암울한 미래상들을 쉴 새 없이 페이지 사이에 끼워 넣는다. 그런데 한참 그렇게 이 노숙자 특공대의 활약상을 서술하다가, ‘과연 이 엄청난 규모로 벌려 놓은 사건을 도대체 어떻게 수습할 셈인가’ 하는 의문이 들 무렵, 덜컥 정리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을 내버려둔 채 이야기를 끝내버리고 만다. 연속 테러를 저지르는 대사관 직원들은 누구며, 파파다키스의 극단적인 성격 변화를 적절하게 설명하는 부분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열린 결말과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뭔가를 담아내려고 애쓰다가 수습에 실패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저자가 전작들부터 끊임없이 천착해오던 윤회와 명상, 선(禪)과 같은 주제들을 이전 작품에도 정신없이 쏟아내고 있다. 융(Carl Gustav Jung) 식의 집단 무의식 이론을 설파하기 위해 쓴 책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어떻게 보면 윤회와 집단 무의식을 조화시킴으로써 융의 이론이 가진 애매함을 해소해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모든 문제(심지어 미래의 변경까지도)는 의식 속으로 들어가 과거/전생의 자신과 만남으로써 해결해 낼 수 있다는 건데, 소설의 논리적 문제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했나보다.

 

 

     『신』에서 완전히 길을 잃은 베르베르는 여전히 탈출구를 찾아내지 못한 느낌이다. 주인공이 자폐아라는 설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책 전체에 걸쳐서 등장하는 끊임없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는 마치 파울로 코엘료의 늘 똑같은 소설들을 언뜻 떠올리게도 한다. 베르베르만의 독특함을 언제쯤이나 되찾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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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는 예수님을 따르는 실험을 포기함으로 외형적인 평안을 얻었습니다.  

자기 재산을 나누는 일도 없고 남을 신뢰하는 일도 없기 때문에, 

배신당할 일도 없고, 누구와 다툴 일도 없고, 용서할 일도 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지극히 평안해 보이지만, 이건 샬롬이 아닙니다. 

그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교를 나누는 친목 단체일 뿐입니다. 

영화관 관객 수준의 상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교회라고 뽐내고 있는 셈입니다.

 

- 김두식,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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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믿음의 글들 253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강영안 옮김 / 홍성사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기적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연주의자들의 생각에 담긴 모순을 지적하며, 기적도 충분히 (어떤 의미에서의)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풀어내는 책이다. 절정에 다다른 C. S. 루이스 특유의 변증적 논리전개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이 가진 난제를 지적하는 데 멈추지 않고, 기적의 발생으로 인해 자연세계의 구조가 무너지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하며, 나아가 성경에 등장하는 주요 기적들 - 성육신과 부활, 승천 -에 관한 루이스적인 변증에까지 이른다. 

 

 

 

2. 감상평 。。。。。。。               

 

 

     가장 먼저 읽은 C. S. 루이스의 책이 『순전한 기독교』였기 때문인지, 나에게 루이스라는 사람은 ‘작가’보다는 ‘변증가’로서 더 깊은 인상이 남아 있다. 당연히 여러 작품들을 읽으면서도 변증적인 틀로 이해해왔다. 『침묵의 행성 밖에서』나 『천국과 지옥의 이혼』 같은 환타지적 소설류도 그런 식으로 읽어왔다.(물론 이런 읽기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종종 탁월한 통찰들을 얻을 수 있기도 했지만, 정통적인 변증서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몇 년 전 ‘만들어진 신’이나 ‘신은 위대하지 않다’와 같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책을 팔았던 이들이 있었다. 나름 어떤 기대를 하며 책장을 넘겼지만, 사실 거기 담긴 것은 개인적인 경험과 그로 인해 쌓인 악감정의 토로, 그리고 선별적으로 뽑아낸 적대적 사례들의 나열뿐이었다. 여기에 치밀한 논리구조 대신 대담한 추측과 예단만 난무했다. 차라리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가 이런 책들보단 조금 더 논리적인 면이 있었는데, 사실상 앞의 두 책은 이 책의 아류 중에도 하급이다.

 

     아무튼 그런 책들이 종교에 관해 늘상 취하는 입장은, 자신들은 매우 합리적인데 종교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종교를 변호하려는 이들은 이런 주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루이스는 정면으로 그런 주장을 반박한다. 자연주의자들이야말로 대단히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으며, 인간이 이성(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이 ‘자연적이지 않은’(초자연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론 책 자체는 ‘기적’의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입증을 시도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저자인 루이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 신앙 체계가 갖는 합리성 전반에 대한 변증까지도 해내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저지르는 범죄나 물의들을 들어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그런 일들을 벌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지 그들이 믿는 신앙체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물론 그 신앙이 그들을 충분히 변화시키지 못했음을 지적할 수도 있겠으나, 신앙을 A를 넣으면 B를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기계쯤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그런 비논리쯤은 태연하게 넘어가는 것이 무신론을 변증하는 사람들과 책의 일반적인 특징인 것 같긴 하지만.

 

 

     한국에 소개된 십 수 권에 달하는 루이스의 책들 가운데 단연 최고 수준의 변증을 시도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논리전개를 보고 책이 형식논리에만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내 경우엔 기분 좋은 지적 자극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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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알싸한 프러포즈 일인시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사이시옷 지음 / 헤르츠나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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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다양한 이유로 일인시위를 했던 이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취재한 내용을 엮은 책. 대기업의 불법행위를 보고도 눈을 감는 국세청의 부패한 관료들에 대한 침묵의 시위도 있고, 두발자유를 위해 학교 안에서 용기 있게 나선 학생의 놀이와도 같은 시위도 있고, 부당한 해고나 아들의 죽음을 방조한 회사의 비열한 처사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위(공교롭게도 둘 다 삼성이 그 상대이다)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짚어 본다. 

 

 

 

2. 감상평 。。。。。。。               

 

 

     왜 이 사람들은 혼자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을까? 혼자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이 이야기에는 대단히 슬픈 배경이 깔려 있다. 우선 그/그녀는 ‘혼자’ 나와야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거리’에 그저 서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그는 다른 이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고립되어 있다. 특별한 목적 - 이를 테면 청혼이나 예술 공연과 같은 - 이 아니라면 일인시위는 그 자체로 공동체가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시위의 목적은 ‘억울함’이다. 그런데 그 억울함을 해소시킬 수 있는 힘이 없다.(뭐 힘이 있었다면 애초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지도 않겠지만) 하지만 그들이 당하고 있는 억울함은 절박하기에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선정(善政)’이란 ‘정직한 사람이 무참한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흔히 ‘오현제 시대’라며 로마 제정 최전성기로 여기는 시대를 서술하면서 쓴 말이다. 눈부신 승리와 영토 확장은 없었지만 견실하게 내실을 다져 전반적인 생활수준의 향상이 이루어졌던 시기가 오현제 시대였다.

 

     이 기준으로라면 정부에서 뭐라고 발표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일인시위를 위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지금은 ‘선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정부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또 모든 사람들이 불만이나 억울한 일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원만한 이해관계 조정이라고 할 때,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 비단 이번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라지만, 눈에 보이는 실적을 위해 힘없는 이들을 억울하게 만드는 정신 나간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큰일이다. 외적을 막겠다며 만리장성을 쌓던 진시황제에게서 경제를 발전시키겠다고 강바닥을 파고 있는 현 정부가 떠오르는 이유는 뭔지.

 

 

     아쉽게도 책에 실린 일인시위는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다행히 그 시위가 여론의 지지를 얻어 하나의 큰 힘을 형성해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으니 확률도 낫고 성공할 확률은 말 그대로 랜덤이다. 일인시위라는 게 대개 힘 없는 이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최후의 수단이기도 하니까. 때문에 책의 분위기는 내가 좋아하는 환한 노란색의 표지와는 달리 그리 밝지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읽기가 어려운 책은 아니다. 편하게 인터뷰를 하듯, 그들의 삶과 행동들을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투쟁의 이론을 지루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사실 그렇게 이론을 주워섬기기엔 너무나 급하고, 너무나 절박하고,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니까.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이 나와도, 그래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그렇게라도 혼자 거리로 나가 외쳤던 그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우리의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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