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 코드 - Source Cod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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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뇌에 남은 8분간의 잔상을 이용해 과거 어느 시점의 누군가의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술인 소스 코드. 러틀리지 박사는 이 기술을 이용해 콜터 대위를 열차폭파 사고가 일어나기 전 8분으로 보내 연쇄테러를 사전에 막으려고 한다. 콜터는 이미 전쟁에서 큰 상처를 입고 뇌신경의 일부만 남은 상태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 수차례의 시공간 여행을 통해 마침내 테러범을 찾아 낸 콜터는, 늘 자신의 앞에 앉아 있던 크리스티나를 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소스코드 안으로 들어간다. 

 

 

2. 감상평 。。。。。。。                

 

     한 사람의 의식을 완벽히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는 기술의 존재라는 가정은 예로부터 여러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의 소재였다. 이 영화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시점 속의 인물에게도 이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로 인해 새롭게 알아낸 정보로 다가올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 영화 속에서 콜터 대위는 과거로 돌아가 테러범의 정체를 밝혀내고, 연쇄테러를 막아낸다. 영화의 영상 자체는 그저 액션 추격물에 가까웠지만, 이런 상상력은 이 영화를 SF물로 바꾸어 놓는다.(인셉션이나 아바타에서와 같은 화려한 최첨단 영상기술까지는 아니다) 

 

     아쉬운 점은 기술에 대한 정확하지 못한 이해가 영화의 논리적 구조를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실제 콜트 대위는 부상으로 신체기능이 대부분 정지된 채 뇌기능의 일부만 남아 있는, 사실상 정신으로만 존재하는 인물이다. 소스코드는 그런 그의 의식에 새로운 정보를 주입해 일단 몸까지 갖춘 온전한 인간으로 재생시킨다. 여기까지는 ‘가상현실’로 소개하는 영화의 설명이 맞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재생된 콜터가 ‘과거’의 어떤 인물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부분이다. 러틀리지 박사는 이를 ‘복잡한 양자역학적 기술’로 설명하면서 평행우주 이론을 언뜻 대입시키는 것 같다. 하지만 러틀리지 박사가 말한 대로 소스 코드가 평행우주 사이를 넘나들게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영화의 감동적인 결말은 불가능하다. 콜터가 과거에 개입해 사건을 바꾸는 순간 새로운 평행우주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가 그 새로운 세계에서 아무리 문자 메시지를 보내도 원래의 세계에 있는 굿윈 대위가 그 메시지를 받을 리 만무하다.(평행우주이론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사토 가츠히코가 쓴『양자론이 뭐야?』나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같은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두 권 다 약간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라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여기에 러틀리지 박사가 콜터를 계속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저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들어가 그 인물의 의식을 잠시 공유하는 것뿐이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괜히 쓸 데 없는 말을 덧붙여서 스토리 구조가 비틀렸다.

 

     그래도 스토리는 지루하지 않게 신속하게 전개된다. 마무리는 빠질 수 없는 애정라인으로 적절하게 맺어지고 있는데, 정작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간 콜터 대위가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그리고 콜터로 의식이 완전히 바뀐 숀이라는 인물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건지 하는 부분은 대충 얼버무려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특이한 소재로 흥미를 끄는 데는 성공했으나 세밀한 마무리는 좀 부족하다. 그러나 영화가 재미있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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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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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작가가 쓴 몇 편의 단편 소설들을 모은 책. 9급 공무원 시험의 응시자격연령을 딱 한 해 앞두고 있으면서도 여지껏 합격하지 못하면서 우연히 읽기 시작한 책을 누군가에게 읽어주겠다고 도서관에서 나와 방황하는 사람, 이런저런 시대적 상황에 어설프게 끼어 흙을 먹으며 살아온 어떤 인물, 국기게양대에 걸린 태극기를 떼어 팔려다가 게양대와 사랑에 빠진 사람을 만난 이야기, 산 속에 들어가 소설을 쓰다가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나라가 망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사내의 이야기 등 뭔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은 주인공들이 등장해 때로는 실소(失笑)를 자아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묘한 울림을 일으킨다. 

 

 

2. 감상평 。。。。。。。                

 

     딱히 인상적이지 못한 표지 때문에 오랫동안 책장에서 대기 중이었던 책이다. 드디어 차례가 돌아와서 읽게 되었는데 아, 이런 책을 왜 아직까지 책장에만 꽂아두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 이상으로(어쩌면 애초에 너무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재미있었고, 그래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다양한 문학적 상상력이 발휘된 단편소설집이야 꼭 이 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나무』와 『파라다이스』 등의 책들을 통해 상상력으로 사람을 즐겁게 하는 방식을 보여주었고, 우리나라 작가로는 『인간과 사물의 기원』이라는 재미난 작품을 쓴 김진송도 있다. 다들 재미라는 부분은 충분히 구현해 냈지만 그 다음이 좀 다른데, 베르나르는 늘 인간성이라는 주제를 아울러 다루면서 때로는 긍정적이고, 또 때로는 부정적인 전망들을 함께 제시해 생각하게 만든다면, 이 책은 재미와 함께 ‘문학 자체’를 또 다른 축으로 삼고 있다. 문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작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하는 것들인데, 이런 주제를 다룬 작업은 꽤 오랜만에 읽어서인지 역시 또 색다른 맛이 있다.

 

     적절하게 무게감 있는 주제(‘문학’)에 재미까지 주니 순수하게 문학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목적이라면 과감하게 손에 들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에 관한 문인의 통찰력까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지만, 또 다른 작품이 기대가 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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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서 방송사에 보냈다는 문건.

"도로를 점거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촛불집회'가 아닌 '불법집회'로 사용하라는 지침.

 

 사실은...

 모든 국민은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가 있고(헌법),

 도로의 점유라고 하더라도 사전에 신고하면 무방.(법률)

 경찰은 그냥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존재하는 게 싫을 뿐.

 이 논리라면 월드컵 응원한다고 길거리로 나온 사람들 모두 범죄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2조 (교통 소통을 위한 제한)
①관할경찰관서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교통 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도로를 행진하는 경우에는 제1항에 따른 금지를 할 수 없다. 다만, 해당 도로와 주변 도로의 교통 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있으면 제1항에 따른 금지를 할 수 있다.
  
 
제15조 (적용의 배제)
학문, 예술, 체육, 종교, 의식, 친목, 오락, 관혼상제(冠婚喪祭) 및 국경행사(國慶行事)에 관한 집회에는 제6조부터 제12조까지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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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자반 (반양장) 믿음의 글들 129
이재철 지음 / 홍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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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기독교인으로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내용들을 잘 정리해 둔 책이다. 일종의 캐터키즘 해설서라고도 볼 수 있겠다. 우선은 삼위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내용에서 시작해, 성경과 기도, 교회와 예배,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관한 교리를 설명하는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2. 감상평 。。。。。。。                

 

     감정에 중독된 시대. 결국 순간적인 자극에 대한 반응만 남게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경향은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그 결과가 신학, 특히 조직신학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이다. 흔히 교리를 연구하는 신학으로도 알려진 조직신학을 분열의 원인으로, 또 차가운 지식놀이 쯤으로 여기고 감정의 고양을 성령의 감동으로 착각하는 신앙생활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지극히 충동적인 헌신과 즉응적인 성경해석과 적용으로 인해 신앙생활의 굳건한 뿌리가 사라지자,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 신앙’,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고 하면 이것저것 재보지도 못하고 그저 따라가는 ‘유행 신앙’들이 늘어났고, 그런 신앙태도는 사람들을 결코 신앙적으로 건강하게 성장시킬 수 없었다.

 

     적어도 기독교적 의미에서 성숙한 신앙은, 어느 날 갑자기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기초적인 부분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갈 때에야 도달할 수 있는 무엇이다. 하지만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실용주의가 신앙생활에도 파고들면서 대형 교회에서 하는 것이면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신 것’이라는 어이없는 판단도 무시 못 할 주장이 되어가는 슬픈 현실에서, 한국 교계에 의미 있는 울림을 주고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이런 교리 해설서를 집필하고, 또 그 책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일이다.

 

     책은 보수신앙을 담고 있으면서도, 문자 자체에만 치우치지 않는 건전한 성경해석법에 기반해 쓰였다. 여기 담겨 있는 내용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당연히 독자를 재미있게 할 만한 내용도 별로 없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를 어제 봤다고 해서 오늘 그것이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의 빛나는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차분히 정리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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