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의 가면 반덴베르크 역사스페셜 1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최상안 옮김 / 한길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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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줄거리 。。。。。。。                   

 

     멜처라는 이름의 독일 마인츠 출신의 거울세공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인쇄술을 이용한 음모가 이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제자인 겐스플라이슈의 함정에 빠져 많은 재산을 다 잃고 딸 에디타와 함께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한 그는, 그곳에서 중국인들의 점토활자기술을 접하고는 자신의 기술과 접목, 금속활자기술을 개발해낸다. 당시 극심한 정치싸움을 벌이면서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던 로마 교황청 내 인사들을 그에게 10만 장의 면죄부를 인쇄하도록 해 손쉽게 돈벌이를 하려고 한다.

 

    여기에 오해로 인해 헤어진 딸과 사랑하는 여인 시모네타, 베네치아, 로마 교황 자리를 둔 정쟁들, 나아가 비밀종교집단의 욕심까지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점점 복잡하게 얽혀간다. 

 

 

 

2. 감상평 。。。。。。。                   

 

 

     문서 하나를 작성하려면 모두 일일이 손으로 쓸 수밖에 없었던 시대. 인쇄술이라는 기술은 ‘악마의 힘을 빌어 일으키는 요술’과도 같았다. 탐욕스러운 인간은 그 새로운 기술로 더 많은 돈을 손쉽게 버는 방법을 궁리해냈고, 그렇게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사용되기 보다는 그저 소수의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데 더 먼저 사용된다. 결과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그 기술의 혜택을 입고 있는 게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일 년에 책 한두 권도 읽지 않는 게 이 나라에서, 오늘날 인쇄술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슨 유익을 얻고 있는가? 그에 반해 정치인들과 법률가들, 소수의 부유한 이들이 자기들의 이익에 맞춰 멋대로 써내려간 법률 몇 줄에 국가의 부는 그들의 금고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니 뭐 딱히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다.

 

     과학과 기술개발을 통한 인류의 진보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딱한 소리겠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새로운 장치들이 고안된다고 하더라도 인간들만 살아가는 세상은 딱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생활수준의 전반적인 향상 운운할 지도 모르지만, 해 뜨면 일어나서 밭에 나가 일하다가 해가 지면 들어와 자는 그 옛날의 생활방식과 해 뜨기 전부터 나가 일하기 시작해 해가 진 후에도 남아 일하는, 그것도 양부모 모두 그렇게 일을 하러 나가느라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 자체도 점차 약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생활방식이 딱히 발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2년 전쯤 이 책을 읽으려고 폈다가 중간쯤에서 덮고 다른 책들을 봤었는데, 이제 다시 집중해 읽고 보니 왜 그 때 중간에 책을 덮었었는지를 알 것 같다. 주인공의 성격은 너무나 우유부단해 딱히 매력을 찾기 어려우며,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은 지나치게 평면적인 성격이라 자신의 판단에 일체의 고민조차 하지 않으니 쉽게 감정이입이 되기 어렵다. 중세 서양 역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콘스탄티노플과 베네치아를 주요 무대로 한 이야기 전개 자체에 약간의 흥미를 느낄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책 제목인 ‘구텐베르크의 가면’은 딱히 내용과 연관이 없다. 물론 ‘구텐베르크’라는 인명을 ‘인쇄술’을 가리키는 수사적 표현으로 읽는다면, 인쇄술이 가지는 양면적 속성에 관한 부정적 의식(흔히 ‘가면’은 무엇인가 감추려는 것을 의미하니까)을 반영한 괜찮은 제목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책에는 구텐베르크가 등장해버리지 않는가.(주인공 멜처를 곤경에 빠뜨리는 제자 겐스플라이슈가 후에 구텐베르크로 알려진다는 내용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인쇄술의 두 얼굴’과 같은 제목을 붙였다면 좀 촌스러웠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책이 구텐베르크라는 인물과 ‘그의 인쇄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데도 그런 뉘앙스를 준다는 점은 분명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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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믿는 것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었다.

마틴에게 어떤 비난을 할지라도

그가 말을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든가

행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비난은 가당치 않다.

 

- 『맬컴 엑스 VS. 마틴 루터 킹』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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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우리는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다.
당신의 보화가 이 땅에 있다면
이는 날마다 당신의 보화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랜디 알콘

 

Each day brings us closer to death. 
If your treasures are on earth,
that means each day brings you closer to losing your treasures.
-  Randy Alc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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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카피하다 - Certified Cop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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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1. 줄거리 。。。。。。。               

 

     자신의 책 ‘기막힌 복제품(Copie conforme)’을 홍보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온 제임스 밀러.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며 홀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엘르는 그의 책에 큰 관심을 갖고 하루 동안 토스카니 지방을 소개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우연히 들어간 커피숍에서 그들을 부부로 오해하는 일을 겪자 그들은 즉흥적으로 가상 부부인척 연기를 시작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둘은 진짜 부부인 것처럼 말하고, 다투고, 화해한다.

 

 

2. 감상평 。。。。。。。                 

     영화평을 봐도 영화를 보면서 대부분의 관객들이 서서히 혼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둘의 가상 부부 연기가 너무나 실감나서(어차피 영화이긴 하지만), 둘이 원래부터 무슨 관계에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엘르는 왜 그렇게 흥분을 하며, 밀러는 또 왜 그런 엘르를 받아주는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두 사람의 가상부부놀이다.

     아마도 이 꼬인 스토리를 풀어가는 열쇠는 영화 속 밀러가 썼다는 책의 내용이자 그의 인생관인 ‘가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있는 것 같다. 밀러는 아무리 멋진 오리지널이라고 하더라도 사실 그것은 원래 있었던 무엇을 모사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예컨대 모나리자라는 작품도 그 실제 인물이 있었고, 그렇다면 그 역시 실제의 모사일 뿐이라는 논리다. 물론 밀러는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이 그런 모사품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진품이니 모사품이니 하는 것을 굳이 구별할 필요 없이 그저 눈앞의 일들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결론으로 이어지는데, 참 속편한 인생관이다. 그런 밀러가 비록 자신이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가상부부 놀이에 기꺼이 참여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며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밀러와는 반대되는 성격을 표현하고 있는 엘르의 태도는 여전히 쉽게 이해되지 않긴 하지만.

 

  

     밀러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의 실재는 저 위에 있으며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그 모사일 뿐이라는 플라톤의 철학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고대 철학자와 영화 속 현대 학자의 인생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그 위대한 고대인은 그림자에 불과한 현세보다는 이상향의 세계에 더 집중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대의 철학자들은 그냥 지금을 즐기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부분이다. 같은 진단에 전혀 다른 처방인데, 요새 대세인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도 사실 이런 밀러 철학과 닿는 면이 있으니, 딱히 한 영화 속의 의견으로만 치부하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즉각적이면서 눈앞의 행복을 얻기 위해 ‘눈 한 번 딱 감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식의 태도까지 늘어나고 있다는 건데.. 그 대답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밀러의 마지막 대사는 이 ‘결혼놀이’가 ‘놀이’이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선언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은 그렇게 말하고 기차를 타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런 식으로 떠날 수는 없는 문제가 아닌가. 얼마든지 즐기다가 생각이 달라지면 헤어지거나 떠나면 된다는 식의 사고는 그냥 책임지기를 싫어하는 대단히 자기중심적 사고일 뿐이다.

 



    영화는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지만, 이게 좀 과해서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교육하려고 하는 건가 하는 느낌이 살짝 들 정도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감독은 영화 스토리에서 논리적 구조를 약화시키고 대단히 직관적인 구조만을 남겨두었고, 결과적으로 그다지 신선하지도, 또 의미가 깊지도 않은 주제를 빼버린다면 남는 건 이탈리아의 지방 소도시의 아름다운 풍경밖에 없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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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벽 1 - 거대한 슬픔
이시카와 다쓰조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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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일본의 S현에서 한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오자키 후미코는 어느 날 권고퇴직 요구를 받게 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 정부는(책의 배경은 1950년대) 곧 극심한 재정적 압박을 받게 되어 세금을 더 걷든지 지출을 줄이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자민당 정부는 표를 의식해 세금을 더 걷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저항이 적은 교육예산을 줄임으로써 문제를 피해가려는 꼼수를 쓰게 된다. 오자키 선생이 퇴직 권고를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방침에 그녀는 교원노조의 도움을 받아 권고를 거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동안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조합의 존재 이유와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전후 미국 군정이 실시한 신교육은 이전의 봉건적 체제를 유지, 강화시키기 위한 일본 전통 교육과는 달리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고, 민주주의와 평등에 대해 가르치려 했지만, 이는 보수적 지지세력 위에 서 있는 자민당 정권에 위기감을 주었다. 때문에 정권은 그런 민주교육을 실시하는 교사들을 약화시키기 위해 일교조(일본교원노동조합)과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매년 수많은 학생들이 늘어나는 데도 교사들의 수를 줄이고, 정기적인 승급도, 승진도, 호봉의 인상도 거부한 것. 결국 교육현장의 파행을 막기 위해 일교조와 오자키 선생은 승산이 적은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에 단지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교사들의 투쟁 이야기만 실려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어디까지나 오자키는 교사였고, 쉰 명이 넘는 아이들을 담임하고 있는 처지였다. 그녀의 투쟁은 조합과 함께 하는 대외적인 싸움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치기 위한 교실 안에서의 투쟁도 있었다. 작가는 그녀가 하고 있는 이 복잡하고 어려운 두 가지 투쟁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면서 참 교육을 막는 벽이 무엇인지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2. 감상평 。。。。。。。                

 

     그저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던 오자키를 막아선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장 눈앞의 어려움은 예산의 부족이었고, 이는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패전국이 된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이겼다면 제대로 된 교육은 더더욱 요원해졌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다른 민족들의 피와 땀을 짜내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겠다는 분별없는 군국주의자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도에 대해 어떤 비판도 없이 무조건적인 충성을 다한 일본국민들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전쟁이 끝났지만 이 두 가지 근원적인 문제 요소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데, 군국주의자들은 자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옷만 바꿔 입은 채 여전히 일본 정권을 틀어쥐고 있었고, (시민이 아닌) 신민 교육을 받아 천황에게 충성하던 이들은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다른 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그런 교육을 실시하는 교사들을 향해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참 교육을 막는 것은 이 책의 제목처럼 ‘인간이라는 이름의 벽’이었다.

 

     결국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은, 반항하지 않는 국민, 비판력을 상실한 서민들이다. 비판력을 상실한 시민들은 공포에 질려 있는 양떼처럼 손쉽게 이리저리 원하는 대로 몰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개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마련이지만, 문제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어려워지면 그냥 이전에 하던 대로 하는 데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쉽게 보수적인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때문에 그들은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는 교육을 경계한다. 책 속에 이런 사정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미군이 점령 기간 동안 차례로 실시한 일본 사회의 민주화 방책을 자민당 정부는 아주 증오했다. 그래서 조금씩, 착실하게 일본 사회를 전쟁 전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벽이 나타났다. 그 벽은 초등학생 1천227만 명과 중학생 588만 명이었다. 이 어린 학생들이 날마다 교실에 앉아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 자민당의 보수주의자들은 그 같은 현실을 확인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보수당 정부는 곧바로 일교조에 전쟁을 선포한다. 이 싸움은 운명이었다.

 

 

     1950년대에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 서글프다. 벌써부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교육감과 교육위원의 직선제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고, 국가권력은 온갖 꼬투리를 잡아 교조를 탄압하기에 바쁘고, 이 나라의 정치공작에서 빠질 수 없는 빨갱이 타령은 진작 등장했다. 일본의 자민당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이 땅의 보수정당은 영구집권을 꿈꾸며 일본에서 60년 전에 써먹었던 방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한 집단의 진로와 그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관한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할 때, 교육문제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는 정치인들이 정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어디 교육문제 뿐인가. 오늘 시장에 나가 반찬거리고 사 온 배추 한 통도 사실 정책적 지원에 따라 생산량이 정해지고 가격이 형성된다.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교육도 교실 안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정치투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에게 기계적인 정치적 중립을 강요하는 것은 그 자체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억압이라고 할 수 있다. 백번 양보해도 보수적 정치 참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진보적 정치세력에 참여하는 것은 눈에 불을 켜고 막으려고 하는 행패는 뭐라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없는데도 용케 허용하는 걸 보면 답답할 뿐이다.

 

 

     무엇을 써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좋은 작가다. 최근 들어 여러 권으로 구성된 책을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은데, 세 권을 합쳐서 1,3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여느 책과는 달리 전혀 지루한 감이 없이 단숨에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좋은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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