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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아이들 (양장) - 히로세 다카시 반핵평화소설, 개역개정판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30분. 지금의 우크라이나(당시에는 소련이라고 불렸던) 체르노빌에 위치했던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다. 발전소 인근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던 안드레이의 가족은 서둘러 피하려 하지만, 얼마 후 발전소 운영의 총괄 담당자였던 안드레이는 백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인원으로 차출되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다. 격리수용 된 병실에서 피폭 후유증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의 소식을 듣지 못해 애를 끓이는 타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2. 감상평 。。。。。。。
어린 시절 우리는 ‘원자력 기술’을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에너지를 생산해 낼 수 있으면서 화력발전과는 달리 대기 중으로 오염물질도 배출하지 않는 ‘깨끗한 꿈의 기술’이라고 배웠다. 게다가 석유나 석탄과 같은 화석 에너지는 매장량의 한계로 인해 수십 년이 지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으니,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첨단 에너지 기술을 늘려가야 한다는 주장이 곧 따라왔다.
물론 불안요소도 있었다. 이미 인류는 2차 세계대전에서 핵에너지가 얼마나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의 죽음과 그 몇 배나 되는 수의 상해를 입은 이들을 통해 분명히 보아왔다. 그럴 때마다 원자력주의자들은 핵무기와 핵 발전은 엄연히 다르며(사실 둘 사이에는 별로 차이가 없다. 단지 에너지 발생 속도가 급격한지 아닌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거의 유일한 예외라고 할 수 있는 발전소 파괴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명해왔다.
이 책에 실려 있기에는 원자력 발전소는 2만 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순수한 수학적 확률이 그렇다는 것이고, 그 ‘한 번’이 2만 년 가운데 언제 일어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쉽게 말해 당장 내일 사고가 발생하고 앞으로 2만년 동안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어쨌든 확률은 2만분의 1이다. 문제는 원자력 사고의 특성상 그 한 번의 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당장의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는 앞으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2만 년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안드레이와 타냐, 이반과 이네사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에 원자력이 애초부터 저렴한 에너지 생산 방식이라는 주장 자체도 거짓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다른 발전소에 비해 우선 몇 배의 비용이 더 들어간다. 물론 우라늄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발전 비용 자체는 상대적으로 쌀지 모르나, 이건 발전을 할 당시까지만 그렇다는 말이다. 에너지 생산 비용에는 발전 후 처리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 원자력 발전 후 남는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그저 물과 두꺼운 콘크리트로 차단시킨 채 무작정 쌓아놓을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물리적, 사회적 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 더구나 미래의 어느 날 사고라도 난다면 그 처리비용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니 원자력 발전은 미래의 후손들에게 부담을 떠넘겨 비용을 낮춘 방식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이렇게 대단히 위험하고, 사실 그리 저렴하지도 않은 발전방식인 원자력 발전을 계속 지속하며 늘려가야만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사실상 이와 관계된 대기업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그런 기업들의 로비에 넘어간 정부 관료들의 정책적 지원이 더해졌을 테고. 그렇게 안전하다면 원자력 발전소를 서울시청 앞에다 짓거나 청와대 앞마당에 지으면 될 텐데 또 그렇게는 안한다. 결국 사실 딱히 누구에게도, 환경에도 유익하거나 깨끗하지 못한 시설들은 어느 농촌 마을에 들어서게 되고, 결국 피해는 힘없는 이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힘없는 사람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어떻게 그들의 삶을 잃어버리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아직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이름의 극단적인 강압적 정치형태가 여전히 기능을 하고 있던 지역의 일이긴 하지만, 오늘날이라고 해서 딱히 달라진 것은 없지 않은가. 당시에는 공권력을 쥔 권력자들이 상황을 은폐하고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했다면, 오늘날에는 돈을 쥔 권력자들이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뿐. 역시 정보는 힘이다. 지역발전이니, 특별교부금이니 하는 회유책에 넘어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안전에 대한 신화와 장밋빛 미래상에 현혹되어 자신의 아들딸, 손자, 손녀들의 미래를 팔아먹는 짓을 하지 않으려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책은 딱히 극적이지 않다. 그저 사실적이고, 별다른 꾸밈이 없다. 그런데 더 슬프고, 더 무섭다. 환경운동의 고전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들을 붙여 놓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중고등학생 정도라면 충분히 권해줘도 괜찮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