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란, 존재하는 자체만으로

집안 분위기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 에쿠니 가오리, 『마미야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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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랑할까요?
박수웅 지음 / 두란노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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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그리스도인 청년을 대상으로 한 성과 결혼에 관한 지침서. 데이트와 성, 관계에 있어서 상처의 치유법, 그리고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쉽지만 깊이 있게 써 놓았다.  

 

 

 

2. 감상평 。。。。。。。               

 

     누군가 교회에 두고 간 것을 우연히 들고 읽게 되었다. 당연히 큰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뜬 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강연과 그에 이어지는 상담 경험을 통해, 2, 30대 청년들이 실제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들과 부딪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를 정확히 안다면 그 책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 독자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솜씨를 가진 저자는 제기된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알기 쉽게 제시한다.

 

     물론 요즘엔 경제적 문제의 중요성이 상당히 대두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데이트와 연애, 결혼과 같은 주제들은 젊은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중요도에 비해 이 부분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기관이나 인물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대가족 제도 안에서 충분히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핵가족에 한 자녀가 일상적인 오늘날 가족제도 안에서 다른 이들이 하는 무엇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극히 어려워졌다. 여기에 가족이 포기한 교육의 기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학교는 ‘실용’이라는 정체불명의 가치관이 점령함으로써 각종 기술을 배우는 곳으로 전락해버렸으니 말이다. 텔레비전과 인터넷과 같은 대중매체들이 중요한 교육기능을 행사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철저하게 대중영합적인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으니 처음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할 리 만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대단히 훌륭한 조언을 담고 있다. 뻔한 내용들이 아니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겠지만, 그런 뻔한 대답조차도 제대로 해 주지 못했던 것이 이제까지의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이 책이 충분히 깊이 있는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사실 그건 이 책의 당초 목표도 아니었고), 이 책을 디딤돌로 해서 주제에 관한 발전된 이야기들이 나오게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교회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라온 청년들에게 이 정도의 책으로 성과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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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서 현행 신호등은 남자만 그려져 있어

남녀차별적 요소가 있으니

치마를 입은 여자가 함께 들어간 신호등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단다.

 

정권 내주기 전에 얼마나 더 해먹겠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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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4-29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 그런거에 신경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예요.

노란가방 2011-04-29 10:39   좋아요 0 | URL
오세훈 시장이 예산 없다면서 무의탁 노인 도시락 예산 50억을 삭감했던 일이 떠오르네요.. 사법고시 합격한 좋은 머리로 정말 제대로 챙기려나봅니다.

saint236 2011-04-29 14:07   좋아요 0 | URL
차별없는 신호등의 결정판이랍니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정말...끝내줍니다.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0&articleId=733703
 
네버 렛미고 - Never Let Me G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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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1. 줄거리 。。。。。。。                  

     영국에 있는 기숙학교인 헤일셤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영국식 기숙학교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곳에서 캐시와 루시, 토미가 만나게 된다. 캐시는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던 토미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친구였던 루시가 토미와 사귀게 되면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밝혀진 비밀. 아이들이 학교로만 알고 있었던 헤일셤은 사실 의학적 목적을 위해 복제인간을 길러내기 위한 기관이었고, 그렇다 다 자란 아이들은 서너 번의 장기이식을 하고는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 세 친구는 다른 이들이 정해놓은 이 충격적인 운명을 담담히 마주하면서 서로를 향한 사랑을 계속한다.

 

 

 

 

2. 감상평 。。。。。。。                 

     복제인간을 다룬 여러 영화들이 있었지만, 다들 그 소재가 주는 파괴력에 영화적 감성이 매몰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영화만큼은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서정적으로 그릴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수작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는 과도한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지도 않는다(개인적으로 그런 영화는 딱 질색이다). 감독은 배우들의 절제된 감정표현을 잘 이끌어 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것은 ‘의학혁명’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아름답지 못한 기술인 의료용 인간 복제라는 분야다.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과 수명을 위해 자신의 유전자와 동일한 복제인간을 ‘제조’해 놓고는 몸에 이상이 생길 때마다 그 ‘복제품’으로부터 필요한 부분을 잘라내 자신의 몸에 붙인다. 옛날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나왔던, 병에서 낫기 위해 시체의 다리를 잘라다 삶아 먹었다던 예의 없는 (그리고 비인간적인) 어떤 사람들과 딱히 다를 바가 없는 행위다. 여기엔 기본적으로 내 유전자로 내가 복제를 했으니,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내 것이라는 태도가 깔려 있다. 인간 배아를 가지고 의료용 장기를 만들겠다는 현금의 멋들어진 계획도, 사실은 이런 종류의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사고와 다르지 않다.


 

     영화 속 헤일셤의 교장은 복제된 아이들도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의 그림과 시들을 모아 미술관으로 보낸다. 하지만 이미 그 아이들을 팔 다리를 잘라내고 장기를 파내서 자기들의 건강을 위해 삶아 먹는 데 맛을 들인 사람들에게 그런 것들은 단지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자기들이 그 아이들이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아이들은 물건일 뿐이라는 태도는, 마치 400년 전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놓고 그들도 사람인가 동물인가를 논쟁했던 유럽의 법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여기엔 그들을 동물처럼 다뤄서 자기들의 이익을 얻으려했던 사람들의 욕심이 뒤에 있었다. 결국 인간은 욕심 때문에 스스로 인간됨을 포기하기에 이르게 된 것인데,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경향은 점점 더 강해지리라.

     사실 이미 지금도 이런 ‘복제 인간들’을 이용해 자신의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세상은 넘쳐난다. 비정규직원들은 고용의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일한 만큼의 대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착취당하고 있다. 뻔히 다 알면서도 하청의 재하청을 허용하는 대기업 총수들은 영화 속 ‘인간들’과 뭐가 다르다 하겠는가. 자신들이 착취하고 빼앗아가는 그들도 꿈을 꾸고 사랑을 하는 자기들과 같은 존재라는 기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한, 이런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이 봄날 보기에 괜찮은 로맨틱 드라마다. 아울러 영화를 보고 나올 때쯤이면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가지고 나오게 될 것 같다. 킬링 타임용 영화를 보는 것보단 이편이 좀 더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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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이루는 것은 

우리 믿음의 강함이 아니라 

그리스도 희생의 완전함이다!


우리 믿음의 강함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 어떤 것도 더할 수 없듯이

우리 믿음의 약함이

주님에게서 어떤 것도 빼앗을 수 없다.

- 호라티우스 보나

 

 

It is not the strength of our faith,
but the perfection of Christ's sacrifice
that saves!
The strength of our faith

can add nothing to it,
nor can the weakness of our faith
take anything from Him.
 

- Horatius Bo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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