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이고 유쾌한 대화 상대를 자주 만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상대의 말에 정확히 대답할 생각보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뜻대로 대화를 끌어간다면

상대에게 대화의 즐거움을 줄 수도 없고

상대를 설득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생각지 않을 뿐 아니라,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잘 대답하는 것이

가장 완벽한 대화법이라는 사실을 생각지도 않은 것이다.

 

- 라 로슈푸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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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과 인간의 존엄
유석성 지음 / 한들출판사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1. 요약 。。。。。。。                

 

     사형제 폐지의 입장에 서 있는 저자가 자신의 생각의 정당함을 논하고 있는 책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긴 하지만, 핵심은 사형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이며, 사형을 통해 딱히 실제적인 이익(극악 범죄의 감소 같은)이 발생한다는 근거도 없고, 오판의 가능성이 있으며 그럴 경우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책의 두 번째 부분은 저자를 포함한 다섯 명의 사람들이 나눈 좌담을 글로 옮기 것으로, 앞부분의 내용과 크게 차이는 없다. 

 

 

 

2. 감상평 。。。。。。。              

 

     사형이 가지고 있는 비인간성에 대한 지적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어떤 사유에서든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죽인다는 것을 주저하고,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렇지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문제다) 문제는 이것이 ‘범죄에 대한 형벌’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형을 당할 만큼 무거운 범죄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폐지론자들은 아마도 ‘없다’고 대답해야 할 텐데,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사실관계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된다. 즉, 애초부터 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다.

 

     저자는 형벌을 ‘교육’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으며 더 이상 교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는 사형은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만, 벌로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대단히 비교육적이지 않은가. 여전히 형벌에는 징벌과 응보의 개념이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가 저지른 일에 상응하는 대가를 그가 가진 것으로 치르는 것이 형벌이고, 그렇게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그만큼의 책임을 지는 것이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정의가 아닐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이 그토록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를 보여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결국 사형의 폐지는 어떤 쪽이든 사적 복수를 조장하는 결과로 마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사형제도의 존치에 대해 찬성한다. 물론 여기에는 어떤 개인의 양심에 관한 문제(당연히 단순 정치범에 대한 사형도 포함된다)로 사형이 시행되어서는 안 되며, 현저한 강력범죄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그리고 성경을 근거로 사형 폐지를 주장하는 저자의 논거도 대단히 빈약해 보인다.(사형을 명령하는 구절은 모조리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부정하고, ‘사랑’만 주장하는 식이다)

 

     어느 쪽의 입장이든, 이 주제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본다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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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신학과
흐트러진 도덕성은
절대 섞일 수 없다.

- C.H. 스펄젼



A pure theology
and a loose morality
will never mix.
- C.H. Spurg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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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말을 들었다.

 

즉 성년에 도달한 인류는

구시대적이거나 과학적 사고방식에는 맞지 않는 원시적인 사고방식이

근대 과학에 의해서 허점이 증명되었으며

역사의 진행 과정 또는 이제 저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왜 이런 주장들을 믿어야 하나?

이것은 단지 하나의 주장에 불과한 게 아닌가?

 

- 앨빈 플라팅가(Alvin Plantinga), 노틀담대학교 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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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싱 - Vanishin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누구도 예상치 못한 때 발생한 대정전, 그리고 잠시 후 불이 켜졌을 때 사람들은 그들이 입고 있던 옷과 신발들만을 남겨둔 채 사라지고 없었다. 그 정전 때 나름의 이유로 불을 켜고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은 살아남았지만 불이 꺼지고 어둠이 내리면 여지없이 사라지고 만다. 결국 사람들은 불이 켜진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자가 발전기가 돌아가는 한 술집에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서서히 한 사람씩 어둠 속으로 이끌려나가게 되고 그렇게 사라져간다.

 

 

 

 

2. 감상평 。。。。。。。                

 

     영화는 온통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 빛과 어둠의 대결, 빛으로 모이고, 또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은 오래된 이원론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여기에 종교적 상징물(교회와 남녀 두 아이, 사과)들은 의도적으로 강조되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과감하게(?) 열린 결말부는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영화를 해석할 여지를 남겨준다.

 

    하지만 영화는 좀 다른 데서 이슈가 될 것 같다. 이 영화의 리뷰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제목은 ‘밑도 끝도 없는 영화’였는데, 이 제목을 읽고 한참을 웃었다. 영화는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어둠이 오더니 사람들이 사라졌고, 이유는 모르고, 어디론가는 가야겠고, 그곳이 시카고라는 언뜻 서로 연결되지 않는 장면들만을 늘어놓고는 그냥 끝나버린다. 사실 이와 비슷한 구성은 ‘더 로드’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그리래도 그 영화는 부성애와 ‘생명’, ‘소망’ 등의 강조점이 비교적 잘 드러났다. 하지만 이 영화는 뭔가 많이 던져놓기는 했는데 도무지 무엇을 강조하려는 것인지 쉽게 손에 잡히지 않기에 이런 비판이 나오는 것 같다. 마치 간만의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라고 생각하고 힘껏 물었는데 알고 보니 플라스틱 루어였음을 깨달은 옥돔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이 정신 산만한 상징들과 딱히 논리적 연결성이 부족한 구성은 포스트모던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렇다면 영화의 주제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그저 본 사람이 뭔가를 느끼면 그것이 주제라는 식으로 감독이 마무리를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는 여전히 서론과 본론, 결론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내러티브를 원하는 관객들이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아무리 생각해도 포스트모던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인위적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영화가 재미있느냐? 뭐 그런대로 긴장감 자체를 즐기려 한다면 나쁜 편은 아니지만, 뭔가 완결된 이야기를 보고자 한다면 좋다고 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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