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그저 함께 있어 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일은 우리에게 상대방과 동일하게

상처받기 쉬운 상황으로 들어갈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함께 유약함 혹은 무력함을 경험하는 장소로

들어가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 속에 들어가 통제와 자기 결정권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 헨리 나우웬, 『긍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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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바이블
폴 임 지음 / 평단아가페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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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성경을 읽으면서 떠오를 수 있는 다양한 의문들을 백과사전식으로 대답하려는 의도로 쓰인 책이다. 총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 번째 장에서는 교리, 두 번째는 타 종교, 세 번째는 과학, 윤리와 같은 사회 이슈에 대한 관점, 네 번째는 고대 문명, 다섯 번째는 성경과 관련된 부수적인 이야기꺼리들을 다루고 있다.

 

 

  

 

 

 

 

2. 감상평 。。。。。。。                  

 

     어떤 책을 처음으로 읽기 시작하면 일단 별 세 개의 평점을 마음에 새기고 시작한다. 딱 절반은 두 개 반이겠지만, 책으로 펴내는 것 자체가 꽤나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조금 더 주고 시작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지만 초반 30여 페이지를 읽으면서 별 반 개가 사라졌고, 100여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는 나머지 반 개가 또 사라졌다. 책을 절반 정도 읽었을 때는 한 개가 남았고, 뒤로 가면 갈수록 나머지 한 개까지 빼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이기고 마지막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서술이 전해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부정적 관점을 한참 서술하더니 대뜸 다른 어떤 설명도 없이 급 긍정으로 선회한다. 그나마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딱히 ‘답변스러운’ 것도 아니다. 답을 내지 못하고 그냥 얼버무리고 있는 항목도 수두룩한데다 그나마 뭔가 답변을 한 항목도 무슨 근거로 그것을 대답이라고 하고 있는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성경을 참고할 수 있도록 달아 놓은 주석도 적절하지 않아서, cf.'와 같은 표시가 함께 들어있어야만 하는 데도 그냥 성경 구절만 적어놓은 부분도 보인다. 예정론과 숙명론의 혼란이나, 인용된 책의 내용과 반대되는 주장을 인용한 그 책을 근거로 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그 인용한 책을 내가 보지 못했다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읽었을 것이다) 167페이지의 ‘콘스탄티누스 대제’라고 표기된 인물은 사실은 그의 아버지인 ‘콘스탄티우스’인데 영어로는 제대로 써 놓고는 한글표기는 엉뚱하게 해 두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전혀 학문적이지 못한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언뜻 저자의 이력을 보니 30년 전쯤 종교 심리학으로 학위를 취득했다고 한다. 결국 체계적으로 성경을 배우고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말인데, 내용이 일관된 신학적 입장 아래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전혀 다른 출처에서 나온 전혀 다른 입장들이 뒤섞여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인 듯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데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책까지 내는 것은 아무래도 좀 무리일 듯싶다.(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책 본문에서 안식교를 비판하면서도, 그 안식교의 주장 - 생체 칩 이식이 요한계시록에 나온 ‘표’라는 -을 버젓이 박스로 인용하며 동의를 표하는 식이다.)

 

     책의 표지에는 ‘목회자들이 가르쳐주지 않은 성경 지식과 상식의 베일을 벗기다’라는 과장된 홍보문구가 붙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이 정도는 여느 목회자들도 충분히 (그리고 더 잘)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정도이다. 책은 너무 여러 가지를 다루려고 시도했다가, 결국 제대로 된 답변은 거의 못하고 말았다. 책의 뒷표지에 실린 문구처럼 ‘뒤죽박죽 지식을 명쾌 통쾌하게 정리해’주기는커녕 도리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지는 않을까 우려가 된다.

 

     물론 책의 내용 전체가 허무맹랑하다는 말은 아니다. 군데군데 나름 성의 있게 잘 요약해 놓은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이 섞여 있으니 문제다. 아무리 좋은 음식재료가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체계적이지 못한 조리법으로 좋지 않은 재료들과 뒤섞여 있다면 먹을 수 없는 이상한 요리가 나오지 않겠는가.

 

     적어도 이런 책을 보고 기독교에 대해 아느니, 배웠느니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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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아이 - 성경이 만드는 우리 아이 좋은 성품
박판기 지음 / 위즈덤로드(위즈덤하우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1. 요약 。。。。。。。                

 

     성품 훈련/교육을 하고 있는 저자가 자녀들을 신앙 안에서 양육하면서 깨닫게 된 것들과 그 실제 이야기들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자녀 양육에 관한 내용이 주가 되지만, 거기에 가정의 질서를 세우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함께 제시된다.

 

  

 

2. 감상평 。。。。。。。              

 

     자녀를 양육한다는 일은 어렵다. 아이들도 하나의 인격을 가진 인간이기에, 어지간한 사례집들을 보아도 내 아이와는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복잡하고 다양한 특성을 가진 아이들을 어떤 공식에 대입할 수 있을까. 여기에 신앙적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싶다는 목적이 더해지면 이야기는 훨씬 더 힘들어진다. 아니, 나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누굴 또 가르친다는 걸까.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부모/예비 부모들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저지는 이 지극히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우선은 원칙과 목표를 제대로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한 적절한 방법들을 사용한다. 물론 때로 회초리를 들거나 반성문을 쓰게 하고, 여러 과제들을 내주거나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 대화를 하는 것 등 그 방법에 있어서는 아주 새롭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배워야 할 부분은 그런 방법적인 차원보다는 저자가 말하는 자녀양육의 목표와 비전부분이다. 세속적 세계관에 물든 부모들이 길러내는 파괴적 성향의 자녀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을 가까이에서 봤다면, 자녀양육에 관한 좋은 비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이 책은 좋은 관점을 제시해준다.

 

     책의 짜임새가 탄탄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책의 어느 부분을 읽어도 바로 이해가 될 만한 그리 길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연속적으로 배열된 구조이기 때문이다.(사실 에피소드들도 좀 비슷비슷한 느낌인 것들이 보인다.) 여기에 성경적 양육원리의 소개인지, 아니면 그 원리를 실제로 적용한 사례의 소개인지 초점을 잘 잡지 못한 감이 있어서, 목차는 있지만 내용을 읽으면서 전체적인 구조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성이 그렇다는 것이지 내용까지 허술하다는 말은 아니다.

 

     진지하게 신앙으로 자녀 양육을 하고자 하는 부모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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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칸 - My Name Is Kh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자폐증을 갖고 태어난 칸은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건강한 마음으로 자란 인도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동생이 있는 미국에 온 그는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던 중 만난 만디라에게 푹 빠져버린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 아들까지 낳았지만 결국 이혼을 한 전력이 있었던 만디라는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지만, 결국 칸의 마음을 받아들여 둘은 결혼에 이른다.

    그렇게 행복한 날들이 계속될 줄로만 알았지만, 2001년 9월 11일의 테러가 일어난 후 폭발한 미국 내 무슬림에 대한 극심한 편견은 결국 만디라의 아들인 샘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만다. 극심한 슬픔 속에서 칸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만디라. 그녀는 칸에게 꺼져버리라며, 대통령을 만나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말라는 얼토당토않은 독설을 쏟아내고 만다.

     다른 이들이 표현한 것만을 알아들을 수 있었던 칸은, 사랑하는 만디라의 말에 따라 대통령을 만나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한다. 


 

2. 감상평 。。。。。。。                  

 

     케이블 텔레비전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대충의 줄거리를 미리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영화의 결말이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내용상 충분히 예상이 되었던 영화였다.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소재이기도 했지만, 감독은 헐리웃 영화와는 좀 다른 인도 영화 특유의 기법들 - 노래하는 듯한 대사들과 자주 사용되는 인상적인 배경음악들, 그리고 이 지방 특유의 악센트들 -을 적절하게 사용해 영화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압권이어서, 발연기가 일상화된 아이돌 배우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

  

      주인공 칸은 단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자신과 그의 아들인 샘을 증오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는 그가 다른 사람들이 표현하는 것만을 알아들을 수 있는 자폐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배운 대로 기억하고 살아가려고 하는 칸에게는 너무나 이율배반적인 일이었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인종과 종교, 사상에 따라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수없이 배우지만, 막상 감당할 수 없는 일이 터지자 희생양을 찾아서 욕하고 조롱하며 폭력을 가하는 모습은 마땅히 이상하게 보아야 하는 것, 즉 잘못된 일이었다. 문제는 이런 이상한 일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지, 칸이 아니었다.

     그런 조롱과 저주가 일상화된 사회는 그저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말이 하고 싶었을 뿐인 칸을 가두고, 고문하며, 그에게 소리쳐 댈 뿐이었다. 하지만 칸은 적어도 도망가거나 숨으려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인물이었고, 결국 이 용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도록 만드는 이유가 된다. 영화는 문제는 감추고 미룬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대면하고 해야 할 일들을 해 나갈 때 풀려나간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아주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상영시간은 조금 긴 듯하지만(대체적으로 인도 영화가 좀 길고 감정선이 늘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가 주는 감동을 느끼기에는 이 정도 시간은 충분히 할애할 만하다.  

  “당신의 목표로 가는 길을 멈출 정도로

   두려움을 키워서는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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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때, 


구원 받은 자는 지금까지 천국에서 살았다고 말할 것이고  


구원 받지 못한 자는 항상 지옥에 살고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 C. 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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