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우리의 전신을 마사지합니다.

몸만이 아닙니다. 정신과 영혼도 매만집니다.

그 손길에는 영적 터치가 따라옵니다.

미디어는 내용을 담아 나르는 전달의 도구만이 아닙니다.

미디어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시각 중심의 멀티미디어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기본값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책이나 설교와는 매우 다른 전달 방식이며,

세계관의 형성 효과를 가집니다.


신국원, 『AI의 파도를 분별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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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15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위 글귀를 보니 갑자기 비디오드롬이란 오랜된 영화가 생각나네요.박찬욱감독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 83년도 컬처영화인데 시각매체인 비디오가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잘 보여준 작품이지요
 


비아토르에서 흥미로운 책이 나왔습니다.
미국 복음주의 교회들이 어떻게 정치에 삼켜졌는지,
그 결과 나타나는 파괴적인 결과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설명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게 먼 나라 일만은 아닌 것 같다는 불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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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각도를 토대로 상황을 복구하면,

누군가 바로 앞에서 죽어가고

소방당국과 의료진, 시민이 응급처치에 나서는 와중에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렌즈를 현장에 겨누고

녹화 버튼을 누르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10.29 참사 당시 촬영된 영상이 증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다름 아닌 구경꾼들의 존재.


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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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다 사람들을 향한 심판의 이유는

‘예배의 부족’이 아니라 ‘정의의 부족’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한국 교회도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 역시

종교적 예배의 부족이 아니라 사회적 정의의 부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 교회의 근본적 문제는

예배자의 사회적 삶 속에서 정의가 실천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해 봅니다.

이사야의 선포처럼 이스라엘의 희생제사, 기도, 절기 예식 등을

하나님이 확 뒤집어엎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시 유다와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정의로운 삶’이지 ‘경건한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 차준희, 『6개의 키워드로 읽는 이사야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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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다.

그 말은 자기 영역, 자기 공간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뜻이며

그 외의 공간은 원하지도 않는다는 것.

인간은 어떻더라.


소금툰, 『고양이가 지구를 구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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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0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선인들은 자그마한 초가집 한채면 만족했던 안빈낙도 안분지족의 삶을 즐겼는데 그후손인 우리는 너무 물질적인 삶에 집착하는거 같아요

노란가방 2025-05-07 21:35   좋아요 0 | URL
네 공감합니다.
끝없는 생산을 해야만 버티고 발전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한계인 것 같기도 하고요.
계속 만들어 내려면 또 계속 팔아먹어야 하고, 계속 필요한 것도 아닌데 사는 건 왜 이리 많아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