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은 세계 안에서도 사실 무언가 위안되는 것이 있었다.
살아 있는 것이 없는 데서는 위험도 없다.
모든 악은 살아 있는 것들에게서 나왔다.
여기 죽어 있는 것들은 평화로웠다.
 
- 『꿈꾸는 책들의 도시』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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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전 지구적 재앙.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 중의 일부는 다시 희망을 잃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아내를 잃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함께 남쪽의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남자.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렇게 끝없이 걸어간다.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자 식인까지도 서슴지 않는 약탈자들과 끊임없는 배고픔과 피곤함은 그들의 발걸음을 점점 늦추지만, 아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은 남자의 무거운 걸음을 계속 내딛게 하는 힘이었다.

 


 

2. 감상평 。。。。。。。

 

     모두가 사라지고 혼자 남게 되는 경험은 그야말로 끔찍함 그 자체다. 비단 물리적으로는 함께 있더라도 마음을 터놓고, 혹은 서로를 챙기고 염려해 줄 누군가가 전혀 없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보통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이 지나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막상 그들이 사라지면 세상이 얼마나 황량한 모습으로 변해버릴 지 영화는 잘 보여준다. 결국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극도의 이기주의를 보이고 있는 오늘날의 어떤 이들은 도대체 뭘 원하는 걸까? 그들은 정말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걸까?

     한편으로 정확히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한 없이 걷는 주인공의 모습 또한, 방향감각을 상실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만 같다. 단지 어디론가 걷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로 걷느냐도 그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할 텐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저 관성에 젖어 달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성공을 향해, 더 강한 권력과 더 많은 돈을 향해.
 

 

     감독은 모든 것이 남아 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사라진 새로운 세계를 잘 창조해 냈다. 최첨단의 기술력이 동원된 높은 다리와 깊고 검은 숲은 놀라운 대조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짙은 잿빛 구름으로 덮인 하늘은 인물들의 깊은 고민과 혼란한 감정을 적절히 보여준다. 틈틈이 환하게 빛나는 과거의 모습을 그리는 회상 장면은 현재의 고통을 더욱 짙게 드러낸다. 배우들도 노골적이지 않지만 깊은 슬픔을 꽤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 꼭 한 번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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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의 진실 - 조선 경제를 뒤흔든 화폐의 타락사
박준수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조선 말, 오랜 세도 정치로 인해 왕권은 약화되고 나라의 곳간은 비게 된데다, 잇따라 외국의 배들이 해안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며 무력시위를 벌이던 혼란의 시기. 대원군은 아들인 고종을 대신에 전권을 휘두르며 나라를 개혁하려고 하지만 상황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가 선택한 것은 대규모의 토목공사(경복궁 중건)를 통해 왕실의 위엄을 세우고 왕권을 강화한다는 것이었고, 대규모 토목공사라는 게 다 그렇듯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라의 재정은 말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백성들에게 더 많은 돈을 걷을 수도 없는 법. 고심 끝에 좌의정 김병학의 건의에 따라 당백전이라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기로 한다.

     당백전. 말 그대로 이 하나의 동전에 기존의 동전이 가지고 있던 액면가의 백 배를 부여한다는 무시무시한 고액전. 당시 정부에는 화폐 발행에 있어서 통화량과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 요소들을 고려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그런 이들이 찍어낸 당백전은 조선의 경제를 단번에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작가는 현금의 비중이 높았던 시전상인들과 현물의 비중이 높았던 송파장 상인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와 당백전의 발행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발생에 관한 매커니즘, 그리고 악화(惡貨)에 관한 경제학적 논의들을 이 역사 소설 안에 녹여내고 있다.



2. 감상평 。。。。。。。

 

     대규모의 토목사업은 그 자체로 충분히 위험하다.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 사업은 국가의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재정이라는 게 무한한 것이 아니니 필연적으로 다른 부분에 있어서 사업 축소나 중단이 이루어진다. 특히나 대규모이기에 그 영향력도 커서 잘 되더라도 곧바로 수익을 얻을 수 없고, 실패하기라도 하면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다. 때문에 신중에 또 신중을 더해야 한다. 널리 의견을 수렴하고, 충분히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조선 말 경복궁 중건은 매우 즉흥적으로 시작된 면이 있었고, 그 목적이나 효과에 대한 계산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엄청난 재정 적자는 당백전의 발행을 초래했고, 이는 수많은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역사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은 아닌가 보다.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이 나라의 근현대사에 관해 매우 적은 지식의 양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편년체로 기록된 역사 교과서의 가장 뒷부분에 위치해 있기에 시험범위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그들이 뭘 제대로 알까. 더구나 이 나라를 그렇게 자랑스러워 한다는 사람들은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전락시켜버리기나 하니(개인적으로는 근현대사에 뭔가 감추고 싶은 게 기록되어 있다고밖에 볼 수 없지 않을까 싶다)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부족한 부분을 적당히 보충해 줄 수 있는 좋은 보조교과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 등장하는 조선 말의 경제 상황은 생각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경제와 역사를 접목시켜 보겠다는 취지는 매우 좋다. 두 가지 주제가 썩 괜찮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정치와 경제 상황에 대한 묘사도 꽤나 흥미롭다. 소설이라는 문학작품으로 봐도 당백전 발행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와 시전 상인과 송파 상인들 사이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인한 대립, 나아가 위조화폐 사건 등이 동시에 흥미롭게 진행된다. 다만 전업 작가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시작된 이야기들이 충분히 등장인물들에 의해 해소되지 못하고 좀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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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 이랜드 노동자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6
권성현 외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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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외국계 유통할인기업인 까르푸가 이랜드에게 매각되고 ‘홈에버’라는 이름으로 새단장 되었을 때,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많은 직원들은 나름 기대를 품기도 했다. 아무렴 외국 기업보다는 ‘윤리경영’을 표방하는 한국 기업이 대우도 더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었고, 때마침 시행된 비정규직보호법은 정규직 전환에 부담을 느낀 기업으로 하여금 편법을 쓰도록 만들었고, 매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여자직원들은 그 직격탄을 맞았다. 결국 노조라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었던 이들이 뭉치기 시작했고 1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바른 대가를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렇게 투쟁에 나선 이들을 인터뷰 한 글이다. 때로는 절망을, 혹은 삶의 무게가 주는 깊은 피로감을, 또는 작고 약한 희망을 얹어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2. 감상평 。。。。。。。

 

     8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있는 나라. 고용인구의 절반 이상이 안정적이지 못한 비정규직인 나라. 이게 G20 의장국이 되었다고 금방 무슨 선진국이나 된 것처럼 설레발 치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이다.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지 않으려는 기업들이, ‘자유시장’이니 ‘자유경쟁’이니 하는 신기루 같은 용어들을 주워섬기며 실제로는 무한한 탐욕과 다르지 않은 이익추구를 정당화하는 주장을 해대고, 사회는 또 그런 (결코 중립적이지 않은) 이데올로기적 주장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무거운 분위기에 젖어 있으니, 이런 나라에서 과연 힘없는 시민들이 할 일이라고는 안정이라고는 거리가 먼 불안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자리 뿐. 책은 그런 이들의 비명을 소리 없이 담아내고 있다. 

 

     여전히 이 나라의 가진 자들이 소유한 보수적 주류언론에서는 늘 파업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묘사하기 일쑤다. 물론 모든 파업을 일률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정말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이들이 왜 그렇게 물리적, 경제적, 또 정신적인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파업을 하는 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은 그런 언론 탓이 크리라. 이 책은 적어도 파업에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너무나 분명히 보여준다. 적어도 그들의 말도 들어보고 판단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은가.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된 책 자체가 재미있지는 않다. 사실 책에 실린 많은 인터뷰는 결국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내용의 다양성도 부족하다.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될 책이다. 뭐 재미있는 책 두 권을 읽었다면, 이런 책도 한 권 정도 읽어 두는 것이 정신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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