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갈증은 일주일을,
허기는 이 주일을 참을 수 있고,
집 없이 몇 년을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외로움은 참아낼 수 없다.
그것은 최악의 고문,
최악의 고통이다.

- 파울로 코엘료,『11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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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흔히 서양 철학 하면 떠올리는 인물인 소크라테스 이전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각들을 하며 살고 있었을까. 이 책은 바로 그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을 다루고 있다. 만물의 근원(아르케)은 물이라고 주장했던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부터, 오늘날에는 수학자로 더 잘 알려진 신비주의자이자 하나의 종교를 창시하기도 했던 피타고라스, 원소설의 주창자인 데모크리토스 등 고대 철학자들의 사상과 주장을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원문들을 통해 세심하게 분석하는 책이다.




2. 감상평 。。。。。。。

 

     대학 고중세 철학 시간에 들었던 여러 인물들의 이름을 오랜만에 들으니 나름 반갑기도 했다. 당시는 예닐곱 시간에 걸쳐서 간단히 들었던 인물들의 사상을 이 방대한 책은 매우 세심하게, 그리고 애정을 담아 다룬다. 먼저 그 학문적 열의와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그런 방대한 작업과는 별개로 저자인 밤바카스는 고대의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해 지나치게 현대적인 주석을 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책 안에서 수차례 언급되어 있듯이, 고대 철학자들이 남긴 글은 매우 짧은 단편들만 존재하기에 그 전체적인 윤곽을 살피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의 사상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종종 과도한 상상력으로 시간과 공간의 빈자리를 과감하게 메우려는 시도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들의 사상의 훌륭함은, 그것이 현대의 철학과 과학이 설명하는 것들과 얼마나 맞아 들어가는 가로 결정되는 듯한, 매우 시대착오적 기준이 적용된다.(자연히 고대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던 신화적 사고는 축소되고 제거되는 일종의 윤색이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

     또, 고대 철학자들의 위대함만을 강조하며 마치 그들이 세상을 바꾼 것처럼 묘사하는 영웅사관적 관점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어떤 생각이나 기술 등을 처음으로 창안하는 것은 치하해 마땅한 일이긴 하나, 한 사람의 주장이 곧 그 시대의 사상 전반을 지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환상이다. 그래서 돌턴이 데모크리토스로부터 원자론을 배웠고, 아인슈타인이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상대성원리를 이끌어냈다는 말인가? 어쩌면 단지 우연히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다작(多作)을 했던 철학자들에 의해 그들의 주장이 오늘날까지 전해졌을 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원래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더 크게 보이는 법이다.

     결정적으로 저자가 가지고 있는 역사관에도 문제가 있다. 저자는 마치 고대의 철학과 사고가 바로 근대의 계몽주의 시대로 이어진 것과 같다는 식의 르네상스 시대의 우쭐한 학자들이나 주장했을 것 같은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인류의 사상과 철학이 중세 천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무슨 냉동실이라도 들어갔다 나왔다는 말인가. 게다가 르네상스 시기의 학자들이 꺼낸 고대 철학은 엄밀히 말하면 중세 말, 혹은 근대 초 사람들에 의해 재해석된 고대 철학이지, 고대 철학 그 자체는 아니었다. 요컨대 사상의 연속성과 연구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음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여기에 고대 철학을 논하면서도 인간의 영성이나 정신적 영역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좀 아이러니하다.

 

     학문적으로 보자면 이런 책 한 권 정도는 꼭 나와야 할 책이다. 고대 철학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책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대 철학자들에 대한 과도한 현대적 해석은 이 책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이다. 바로 그 점이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내용을 통해 그 주장이 충분히 입증된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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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서로를 그대로 받아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사명을 이루도록
힘쓰기도 하겠지만,
하나님 나라는 둘이 이루는 가정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서로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받고
평생을 존경하며 사랑으로 살아갈 때에,
무슨 대단한 사명을 이루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가정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일부가 될 것이다.


- 신국원, 기독교인의 생활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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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뒤에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허망함이 찾아오고,
패배 뒤에는 언제나 새로운 열정이 솟아나면서
위안이 찾아온다.

그것은 왜 그런가?
아마도
승리가 우리로 하여금
똑같은 행동을 지속하도록 부추기는 반면
패배는 방향 전환의 전주곡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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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슬픔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줄거리 。。。。。。。

 

     거의 평생을 혼자 살아오다 늦은 나이에 만난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 루이스. 하지만 이미 그의 연인이자 아내는 암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었고,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 책은 그렇게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했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난 후의 격정적인 슬픔에 관한 기록이다.

 


 

2. 감상평 。。。。。。。

 

     이 터져버릴 것 같은 감정적 언어로 가득 채워져 있는 책은 C. S. 루이스가 그의 아내인 조이가 죽은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점에 남긴 기록들을 엮은 것이다. 나에게 루이스의 이미지는 ‘사랑’이라는 감정마저도 깨알같이 차근차근 따져 분석하는 분석가(『네 가지 사랑』), 그리고 기독교의 진실성을 믿어 의심치 않고 당당히 주장하는 변증가(『순전한 기독교』) 등이었다. 그런데 그 동안 읽었던 루이스의 책이 열권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통해 그에 관해 갖고 있었던 이미지가 상당부분 무너질 뻔 했다.

     이 책은 루이스도 슬픔에 대해 분석하기에 앞서 슬픔을 느끼는 사람임을 보여주었고, 그의 논쟁가적 기질은 기독교가 확고한 진리임을 변증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가 믿는 믿음이 진실인지를 고통스러울 정도로 회의하는 방향으로 표출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물론 초기의 격정적인 몇 날들이 지난 후 그의 심경은 점차 안정기로 접어들고 이전의 모습들을 점차 회복하기는 하지만 말이다.(그렇다고 그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며칠 만에 잊어버렸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전보다 훨씬 더 짙게 그리움을 느낀다)

 
     공교롭게도 알고 지내던 분의 사모님이 돌아가셔서 그 장례식장에 가며 이 책을 들고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이 책을 다 읽었다. 그래서 그런 지 이 책에 담겨 있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더 깊게 와 닿는다. 고통은 삶의 의미를 묻도록 만든다. 그래서 성경의 책들 중 인생의 의미, 세상의 본질에 대해 가장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욥기다. 때문에 아내의 죽음을 마주하며 남긴 이 책은 삶과 죽음, 그리고 특별히 결혼 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 기록을 읽을 때는 루이스의 주장을 너무 성급하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는 지금 아내를 잃은 한 명의 남자로 이 기록을 남기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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