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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줄거리 。。。。。。。
이야기는 복잡한 현실의 문제들 속에서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우치는 질문들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곧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판단과 결정들에는 이미 특정한 도덕적/철학적 판단이 전제되어 있음이 밝혀진다. 글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그러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정의라는 공리주의와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해주면 된다는 자유지상주의, 그리고 모든 일들은 그것의 본래 목적을 가장 잘 구현하는 이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는 정의에 대한 일종의 목적론적 관점이 소개된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각각의 관점은 일면 타당한 점도 있으나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지나치게 도식적인 주장들이다. 그러한 관점들은 가치중립적인 어떤 상태를 가정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이냐에 대한 가치 판단 없이 정의를 규정하려는 시도는 따라서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의 여러 분쟁 지점에 이런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내려놓으라는 억지를 포기하고(337), 오히려 권리와 정의의 문제에 ‘좋은 삶’에 대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개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349) 이를 위해 저자는 인간에 대한 서사적 이해(310)를 들고 나온다. 자신을 한 개인으서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 그것.
정의에 대한 좀 더 인간적이며 합당한 관점을 담고 있는 책.
2. 감상평 。。。。。。。
잔뜩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약간의 실망을 했다. 그리고 곧 이 책이 대학교 강의를 옮겨 놓은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다시 심기일전 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책의 결론부에 이르렀을 무렵, 나도 이 책에 열광하는 독자들 중 하나가 되었다. 책의 전반부는 정의에 관한 오랜 논쟁들을 소개하는 내용이라 약간의 지루함이 있었지만, 책의 후반부는 이전의 설명들과 분석들이 왜 필요했는가를 설명해 준다.
정의란 무엇을 위해 찾고, 묻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들이 좀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가 아닐까? 물론 세상에는 정의의 목적에 대한 이런 관점에 반대하는 주장들도 많다. 쾌락의 최대화가 정의의 목표라고 말하기도 하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문제는 바로 그런 주장들로 인해 역설적으로 인간이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
이 책의 가장 탁월한 측면은 정의에 관한 논의에서 다시 한 번 ‘인간성’이라는 가치를 회복시키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쾌락의 증가나 자유의 보장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결국 인간이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전의 주장들에는 인간을 객관화 시켜놓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고, 결국 그렇게 만들어진 결론은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충분히 설명하지도, 불합리를 보완하지도(도리어 불합리를 불합리라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어이없는 상황도 쉽게 볼 수 있다) 못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인간답게, 혹은 잘 사는 것이냐는 삶의 목적에 대해 말하는 도덕적, 종교적 전제를 애초부터 배제하고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사실 인간에게서 그런 영역들을 다 제거해야만 제대로 중립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도 단지 유물론이라는 하나의 사조에 근거한 ‘치우친 사고’에서 시작된 것인데 말이다.
저자가(그리고 저자와 함께 연구하고 있는 매킨타이어가) 주장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서사적 이해’가 합리적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더해지면 정의에 대한 보다 인간적이며 실제적인 논의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완전한 결론이라기보다는 과정에 대한 제안의 영역일 뿐이지만, 적어도 관성에 의해 모순들에 눈을 감고 계속 달려가는 것보다는 처음으로 되돌아가 균형을 잡고 재출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진리의 한 조각을 담고 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좋은 차를 사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번쩍이는 건물을 세우고,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해서 세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외형적 성장과 발전/진보를 제대로 구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정의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 하리라. 이 책이 좋은 안내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