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사색 믿음의 글들
C. S.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줄거리 。。。。。。。

 

     영문학자로서의 루이스가 시편을 읽으며 느꼈던 난제들에 대해 찬찬히 풀어놓는다. 책은 1편부터 150편까지 차근차근 순서대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으며, 대신 심판, 저주, 죽음 등 시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몇 가지 주요 주제들을 중심으로 시를 읽어나가는 방법을 고민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는 ‘알레고리적 해석’이라고 불리는 ‘두 번째 의미’에 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데 할애된다. 문학전공자로서의 루이스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책.

 



2. 감상평 。。。。。。。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체계적인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영문학자가 성경의 한 책을 읽어나가며 들었던 감상들과 의문들에 대해 영문학자로서 대답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체계적이며 전문적인 신학교육은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고, 사고의 낭비를 막아주는 유익이 있지만, 한편으로 이미 나 있는 길로만 걷게 만드는 면도 있다. 그래서 루이스의 글을 읽으면 가끔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어찌 보면 엉뚱하기까지 한, 하지만 깊은) 측면을 볼 수가 있어서 좋다. 이 책 역시 이런 매력이 물씬 느껴지는 책이다. ‘어 그랬었나?’ 하는 뭔가 특별한 발상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시편과 신약의 여러 사건들 - 특히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관성 -을 연결시키는 해석에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부여하려고 애쓴다. 저자에 따르면 적어도 그런 해석의 방식은 ‘문학적으로’ 볼 때 반드시 틀린 해석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풍유적인 해석의 한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책 후반부에 자주 등장하는 저자의 성경관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루이스는 다양한 전승과 출처를 가진 문서들이 ‘들어 올려져’ 신비한 권위를 지닌 책이 되었다고 믿는 것 같지만(그래서 종종 이교적 내용들이나, 야만적인 생각들이 담겨있기도 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래서는 그 책의 권위에 어떻게 의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점들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독특한 발상과 지적은 시편을 읽는 기본적인 입문서로서의 이 책의 가치를 썩 괜찮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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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태양이 떠오른 것을 믿듯 기독교를 믿습니다.

그것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서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 C.S. 루이스, 『영광의 무게』中

 

I believe in Christianity
as I believe that the sun has risen,
not only because I see it,
but because by it
I see everything else.

- C.S.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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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쉐프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통신회사 직원, 자동차 회사 정비사, 시립병원에서 파견 나온 의사, 연구소 소속의 대기학자와 빙하학자, 기상청 소속의 기상학자, 그리고 해양경찰 소속의 요리사.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여덟 명의 남자가 남극 한 가운데 있는 기지에서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저마다 다른 사정과 일들로, 또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족과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들어질 때도 있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버텨나가는 대원들. 그들의 이야기가 니시무라의 시각으로 요리와 함께 풀려나온다.


 

2. 감상평 。。。。。。。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다. 평균 기온 영하 45도라는 극한의 조건에서, 각각의 사정도, 취향도 다른 그들을 한 자리로 자연스럽게 불러 모을 수 있는 것은 매일 아침 비디오를 보며 다같이 하는 체조시간과 식사시간마다 모이는 식탁뿐이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먹었고, 축하하고 격려하기 위해서도 먹었으며, 잊어버리고 또 기억하기 위해서 먹었다. 이 모든 것이 식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밥의 힘’이라고 할까.

     요리사인 니시무라는, 그 자신도 뭔가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런 그들을 위해 정성껏 매 식사 때마다 8인분의 음식을 준비한다. 마치 음식으로 그 모든 것을 치료하고, 안고 가겠다는 마음을 품은 것처럼 그는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먹이고, 그렇게 먹고 있는 대원들을 보며 기뻐한다. 요리를 만드는 그의 손끝은 거룩함 마저 느껴진다.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를 먹인다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도덕적/윤리적 행위이고, 누군가를 초대해 함께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건 매우 깊은 사교적인 의도를 보여주는 일이다. 기독교에서는 먹는 행위를 하나님과 인간의 합일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상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감독이 이 모든 것을 알고 연출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먹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의 주인공은 여덟 명의 대원이나 쉐프인 니시무라만이 아니다. 영화 내내 쏟아져 나오는 찬란한 빛깔의 음식들도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 할만하다. 일급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요리들부터 명란젓을 넣은 주먹밥까지, 쉴 새 없이 등장하는 갖가지 음식은 눈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그런데 원래 저런 데 있는 대원들은 이렇게 잘 먹고 사는 건가?)

     다만 주연을 맡은 사카이 마사토는 시종일관 눈웃음만 지을 뿐, 나름 복잡한 주인공의 심리를 딱히 잘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꽤나 오랫동안 연기를 한 것 같은데 최근에 봤던 ‘골든 슬럼버’에서도 이런 ‘어색함’은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이게 한계인 것인가.

     충격적인 사건이나 급박한 전개는 없다. 대신 천천히 요리하고,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느끼기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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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꽃을 피게 해주는 건 남자의 일이고, 


여자는 그 꽃을 보고 기뻐하는 존재, 

그렇죠. 대디? 

<아사다 지로, '장미도둑'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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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사랑은 감추려 해도 오랫동안 감출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사랑하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사랑하는 체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라로슈푸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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